<애국가> 말고 물이 산보다 먼저 나오는 우리나라 말과 글이 있는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산으로 바다로', '산수', '산하', '산천' 등등,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어법에 산이 나오지 바다나 물이 먼저 나오지 않는다. 제아무리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산과 바다’라 하지 ‘바다와 산’이라 하지 않는다.
한·중 양국에서는 산수(山水), 산천(山川), 산하(山河)라 하지 수산(水山), ‘천산(川山)’ ‘하산(河山)’이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일본은 정반대다. 물(바다, 강)이 뭍(산)을 압도하고 있다.
사자성어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산전수전(山戰水戰)'에 해당하는 '해천산천(海千山千)'을 비롯해 '하산대려(河山帯礪)', '수촌산곽(水村山郭)', '만수천산(万水千山)', '유수고산(流水高山)', '수성산색(水聲山色)', '수자산명(水紫山明)' 등 물이 산보다 먼저 나오는 일본의 상용 사자성어는 무수히 많다.
그런데 이를 물(바다, 강)을 뭍(산)보다 우선시하는 해양국가 일본 특유의 어법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에는 곤란한 일본만의 사자성어가 있다.
‘수궁산진(水窮山尽)’은 물이 마르고 산도 닳은 지경으로 헤쳐 나올 수 없는 절망적 처지를,
‘잉수잔산(剰水残山)’은 마른 물과 닳은 산처럼 전쟁 후 남겨진 황량한 산하, 망한 나라의 처량한 풍경을 뜻한다.
위 두 일본만의 고유한 사자성어와 애국가 첫 소절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은 왜 이토록 닮았는가?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우리는 보통 애국가 4절까지 부르지 않는다. 애국가 1절(후렴 포함)만 부른다. 그런데 애국가 1절(후렴 포함) 52개 글자 16개 낱말의 짧은 노랫말에 ‘물’이 ‘산’보다 두 번이나 먼저 나온다. 앞에서 말한 동해 ‘물’이 백두‘산’보다 먼저, 후렴의 화려‘강산’의 ‘강’이 ‘산’보다 먼저 나온다.
◆‘강산’은 ‘정치적 자치권이 없거나 취약한 영지(領地)’라는 뜻
우리나라에서 ‘강산(江山)’의 사전적 의미는 ① 강과 산이라는 뜻으로, 자연의 경치를 이르는 말, ② 나라의 영토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강산’을 중국 출판 『자전』이나 『中英辭典』에서 찾아보니 “강산은 주로 정치적 자치권에 의해 구별되는 영지(領地) 多指以政治自治权区别出来的领地, Mostly refers to territories distinguished by political autonomy를 의미한다”고 적혀있다. (1)*
즉 ‘강산’은 정치적 자치권이 없거나 취약한 지역을 뜻한다. 일대 충격이다. 반면에 정치적 자치권이 있는 나라, 즉 정상적인 나라의 국토는 산하(山河), 산천(山川)을 쓴다.(2)*
일례로 중국에서 ‘금수산하(錦繡山河)’는 주로 전체 중국 영토를 의미하고, ‘금수강산(錦繡江山)’은 구이린이나 윈나성의 리장 같은 강과 산이 어울어진 풍경이 아름다운 특정 지역을 지칭할 때 쓰고 있다.
한국 양대 정사(正史)에 ‘강산’은 없고 ‘산하’와 ‘산천’은 있다.
옛날 우리나라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나라 영토라는 뜻으로서의 ‘강산(江山)’을 전혀 쓰지 않았다. 한국의 양대 정사(正史) 「삼국사기」와 「고려사」엔 '강산(江山)'이란 낱말 자체가 전혀 없다. 조선후기 이전 문헌에도 ‘강산’이란 글자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 옛 선조들은 우리나라 영토를 일컫는 낱말로 산하(山河), 산천(山川), 강토(疆土), 강역(疆域)을 사용했다. 1895년 갑오경장(한국의 모든 문·사·철·법과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일본식으로 개조) 이전 우리나라 모든 문헌에는 ‘화려강산’은 물론 ‘금수강산’ 조차도 전혀 없다.
조선 시대 영조와 대한민국임시의정원과 독립운동단체 기관지 『한민』도 ‘금수강산’을 쓰지 않고 완전무결한 주권독립국가의 영토를 의미하는 '금수산하(錦繡山河)'를 사용했다.
*영조; (한 나라의 수도로서) 어떻게 평양이 한양과 같은가?
신하; 평양이든 송도든 함흥이든 큰 기세를 가지고 있지만 한양에 비할 수 없습니다.
영조; 한양이야말로 ‘금수산하錦繡山河’이다(3)*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제의안 : “열조열종이 자자손손으로 나려 전하여주시든 우리 ‘금수산하錦繡山河’를 하루아침에 왜적의 검극마제에 짓밢히여셔” -대한민국 24년(1942년)10월 28일(4)*
*제2차 세계대전을 이용하여 일장의 혈전으로써 우리의 삼천리 ‘금수산하錦繡山河’를 탈환하고 자유복리를 회복하자." - 한국국민당 『한민』 창간호(1936. 3. 15) 창간사
◆옛 선조들은 우리영토를 가리켜 ‘고려산천’이라 했다
‘금수산하’ 외에도 우리 선조들은 우리나라 영토를 가리켜 고려산천(高麗山川), ‘삼한산천(三韓山川)(5)*, 종묘산천(宗廟山川), 사직산천(社稷山川) 조선산천(朝鮮山川)(6)*이라 일컬었다.
그중에서도 ‘고려산천’은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를 비롯 『신동국여지승람』 『중경지』 『송도지』 『연려실기술』등 주요 옛 주요 사서와 지리지 등에 자주 나온다.
“고려산천(高麗山川)은 숲이 10분의 7이 되므로”
-『고려사』 제105권 열전 18권 제신
*홍무 3년에 황제가 도사 서사호를 보내어 고려산천(高麗山川)에 제사지내게 했다. (중략) 태조 황제가 처음에 고려산천(高麗山川)을 부·주·현의 의식으로 치제한 것은 아니었다.(7)*
-『세종실록』 제83권, 세종 20년(1438년) 12월 19일 己巳 3번째기사
◆『표준국어대사전』 이 정상인가? <애국가>가 정상인가?
<애국가>속에만 있는 3대 일본식 단어 : 화려강산, 바람서리, 공활
기실 아득한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 없다. 2020년 11월 지금 현재 대한민국 최고 권위 국어사전인 국립국어교육원 출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화려강산’이 없다. 온라인 『표준국어대사전』에 '화려강산'을 입력하면 ‘해당단어로 시작하는 검색어가 없습니다'가 뜬다.
금수강산·팔도강산을 비롯해(8)*적막강산·만고강산·생면강산·절벽강산·제일강산·반벽강산·초면강산·와유강산·대관관산 등 무려 23개의 '강산' 이 친절하게 설명돼 나오는데... 대한민국 국가격이자 대표 노랫말 '애국가'가사 중 최다 빈출어, 4절까지 부르면 4회나 불러야 하는 후렴 ‘화려강산’이 대한민국 대표 국어사전 국립국어교육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이게 예사로 넘어가도 될 사항인가? 화려강산, 바람서리, 공활 등등 애국가 속에만 나오고 자기 나라 일상생활 속에 없는 단어가 이토록 많이 빈출하는 동서고금 세계 다른 나라 애국가가 또 있을까?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상인가? <애국가>가 정상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 몹시.
(1)*『 晋 郭璞《江赋》:“芦人渔子,摈落江山。https://baike.baidu.com/item/%E6%B1%9F%E5%B1%B1/2340?fr=aladdin 中英词典大全』
(2)*山河: 指大山大河,自然景胜,疆,国土。 锦绣山河, 大好~。《史记·孙子吴起列传》:“美哉乎山河之固,此魏国之宝也。”
*山川: 指山岳、江河。如:祖国壮丽的山川。
(3)*○ 上曰 俄臨彰義宮, 往見南北山, 則果淸明異常, 予乃歎息曰, 錦繡山河, 今將如此云矣。 승정원일기 1154책 (탈초본 64책) 영조 34년 3월 9일 을미 21/21 기사 1758년 규장각 원본 ○ 上曰 俄臨彰義宮, 往見南北山, 則果淸明異常, 予乃歎息曰, 錦繡山河, 今將如此云矣。 승정원일기 1154책 (탈초본 64책) 영조 34년 3월 9일 을미 21/21 기사 1758년 규장각 원본
(4)*대한민국임시정부 자료집 제5권, 임시의정원 4
(5)*고려 태조 왕건등 고려시대 초기에 ‘삼한산천’용어를 많이 사용했다. 『고려사』 세가 제2권 943년 4월 (음)
(6)*『정조실록』 19권, 정조 9년 3월 1일 庚戌 2번째기사 1785년
(7)*洪武三年, 帝遣道士徐師昊, 祀高麗山川。 師昊至國, 設壇城南, 引大華嶽神及諸山之神、大南海神及諸水之神以祭。 然則太祖皇帝初不以高麗山川爲府州縣儀而致祭,
(8)*금수강산 錦繡江山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산천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산천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팔도강산 八道江山 : 팔도의 강산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전체의 강산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