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정치인이라면 진압 경찰과 관련된 얘깃거리가 많다. 짱돌과 최루탄으로 상징되는 각박한 시절에도 경찰과 총학생회 사이에 비둘기는 오갔다. 양측은 어디까지 진출할지, 몇 차례 밀고 당길지 등을 사전 조율했다. 불필요한 사상자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타협이었다. 시위가 과열되면 어쩔 수 없지만 대화 창구를 열어놓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경찰 고위 간부 K도 비슷한 경험을 들려줬다. 시위 도중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으로 다른 학생에게 불이 붙었다. 즉시 진압을 중단하고 불 끄는 데 경찰을 투입했다는 것이다. 또 많은 학생을 현장에서 풀어줬다고 덧붙였다. 물론 이런 미담으로 1980년대 폭압적 진압을 덮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랄탄과 화염병이 오갔던 시절에도 이 정도 아량은 있었음을 엿보게 한다.
요즘 여의도 정치판은 삭막하다. 주고받는 말마다 날이 서 있다. 상대에 대한 배려도, 예의도 없다. 예전에는 여의도 정치판에도 신사도라는 게 있었다. 비록 싸울지라도 밥도 먹고 술자리도 같이하며 물밑에서는 활발하게 대화했다. 여야 중진 의원들은 창구를 맡아 타협을 이끌어냈다. 한데 타협의 정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떠올린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정치판은 우리 정치가 얼마나 각박하게 변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검찰청 국감과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탈당을 둘러싼 공방에서 보듯 치열한 내전을 방불케 했다. 심하게 말하자면 상대를 존중하는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말꼬리 잡고 극단적인 말로 공격하느라 급급했다. 그러다 자신들이 뱉은 말과 행동마저 부정하는 희극을 연출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당시 윤석열을 엄호하고 한껏 치켜세웠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총구를 돌려 난사했다. 그동안 달라진 게 있다면 대통령 말씀을 좇아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 것뿐이다. 박범계 의원은 “자세를 똑바로 하라”고 호통 쳤지만 말은 권위를 잃었다. 여당 의원들의 고압적인 언행은 본말이 전도됐다. 태도가 아니라 내용을 파고들어야 했다.
윤 총장은 국회를 경시했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윤 총장을 감쌌다. 장제원 의원은 추미애 장관에 빗대 잘하고 있다고 두둔했다. 1년 전, 윤 총장에게 날을 세웠던 것을 생각하면 역시 자기부정이다.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깔아뭉개기가 일상화된 게 오늘날 여의도 정치다. 정치 혐오와 무당층이 갈수록 늘어나는 건 당연한 결과다.
과방위 국감은 여의도 정치가 복원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민주당 이원욱 위원장과 국민의힘 박성중 간사는 볼썽사납게 충돌했다. 피감기관 공무원을 앞에 두고 “한대 칠까. 나이도 어린 새끼”라는 욕설, 그리고 의사봉을 내팽개치는 낯 뜨거운 추태를 보였다. 질문 시간을 놓고 감정 조절도 못할 만큼 여의도 정치는 형편없이 망가졌다.
금태섭에게 쏟아진 비난을 지켜보기 민망했다는 이들도 많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한 울타리에서 활동했던 동료에 대한 애정은 눈곱만큼도 찾기 어려웠다. 그저 조롱하고 비난에 열을 올렸다. 정청래 의원은 “민주당에는 잘된 일, 외로운 철수형 도와주라”며 조롱했다. 김남국 의원은 “이익을 좇는 철새 정치인”이라고 했다. 왜 탈당을 하게 됐는지 성숙한 고민은 없었다.
금태섭은 탈당하면서 “민주당은 예전의 유연함과 겸손함, 소통의 문화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고 했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공감하는 대목이다. 언제부터인지 민주당은 편 가르고 낙인 찍고 배척하는 데 익숙하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많은 진보 지식인들도 잇따라 등을 돌리고 있다. 지지자들은 겸손하고 따뜻했던 민주당을 기억하고 있다. 변화로써 답해야 한다.
자기편에는 관대하고 상대에는 가혹한 진영논리로는 협치를 열 수 없다. 건강한 내부 비판을 봉쇄한다면 더 이상 외연을 넓히기 어렵다. 586정치인들은 한때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독재와 맞섰던 이들이다. 그런 민주당이 내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지독한 자기모순이다. 상식 있는 이들은 야당과도 대화하고, 내부 비판이 활발한 민주당을 바라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군사정부 시절에도 대화했다. 여당과 야당이 대화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여야가 정쟁에 매몰된 이 순간에도 인천화재와 같은 사각지대가 있다. 미국 대선 이후와, 포스트 삼성을 놓고도 고민해야 한다. 언제까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라며 망상에 가까운 주문만 되뇌고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