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금융에 밀착 연계되면서 고객의 금융생활은 물론 금융권 종사자의 업무 패턴까지 변화하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도입 단계에 불과했던 은행 모바일뱅킹의 '챗봇(채팅 로봇)'은 현재 일상어까지 알아듣고, 며칠이 소요되던 직원의 업무 속도는 분 단위로 크게 축소됐다. 각종 금융 서비스와 업무 프로세스에 AI 기술이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다.
◆챗봇에 가맹점주 위한 착한 앱까지
# 서울 관악구에서 요식업을 하는 B씨(48)는 코로나19 사태가 절정이었던 지난 2~3월 매출에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매장 이용 가능성이 높은 고객을 선별해 매장을 홍보해주는 카드사 앱을 적절히 활용한 덕이다. B씨는 배달을 주문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쿠폰제를 도입하고, 특정 시간대에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에게는 5%를 할인해준다는 내용을 앱에 등록했다. 그 결과 배달 매출은 15%가량 증가하고, 매장 매출은 매장 내 운영 테이블을 7개에서 3개로 줄였음에도 큰 감소를 피할 수 있었다. B씨는 "진행한 프로모션별로 어느 연령대의 고객이 얼마나 유입됐는지 등을 매달 앱에서 보고서로도 받아볼 수 있어 잘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와 B씨가 활용한 서비스의 공통점은 AI 기술이 기반이라는 점이다. 현재 챗봇은 일상어까지 습득해 알아듣는다. 과거에는 정확한 문장을 입력해야 했지만, 지금은 비문이어도 문맥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부분 은행이 이 같은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카드사와 보험사도 속속 도입하고 있다.
가맹점주를 위한 카드사 앱은 '착한 앱'으로 통한다. 홍보 역량이 부족한 영세 자영업자를 위해 앱이 고객을 유치해주기 때문이다. AI는 고객의 소비패턴을 분석하고 매장 방문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고객군에게 해당 가맹점을 홍보해준다. 과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전단지를 돌리거나 인터넷 광고를 해야 했던 자영업자들은 홍보 비용을 줄임과 동시에 효과도 톡톡히 누릴 수 있다. 대표적으로 AI를 기반으로 한 삼성카드의 '링크(LINK) 비즈파트너'가 있으며, 신한·KB국민·비씨카드 등이 빅데이터 분석이 바탕으로 이 같은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3일 걸리던 업무가 3분 안에
# KB국민은행 한 지점 대출창구에서 일하는 C씨는 "대출고객 상담 시간이 대폭 줄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이 '퀵윈(Quick-win) 과제'로 올해 도입한 AI 기반의 행내 검색 기능 덕이다. 당국의 대출 정책이 수시로 바뀌고 고객마다 대출 관련 경우의 수가 워낙 많은 탓에, 기존에는 담당 부서를 직접 찾아 전화해야 했다. 부서를 찾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AI가 해당 부서를 정확히 안내하고, 일부 내용을 알려주기도 한다.
# IBK기업은행에서 대출업무를 담당하는 D씨 역시 고객 상담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이 최근 부동산담보대출 상담 과정에 AI 기반의 심사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D씨는 "아파트가 아닌 경우 시세 감정을 의뢰하고 답변을 받는 데까지 최장 2~3일이 걸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 과정이 3분 이내로 줄었다"고 전했다.
AI는 금융권 종사자의 업무패턴까지 획기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특히 은행들은 영업점 직원들의 업무 신속성과 정확성을 높이는 데 AI를 활용하고 나섰다. 일일이 수기로 입력해야 했던 일들을 AI로 자동 기입 시스템을 구축하는가 하면, 고객의 음성 상담내용을 텍스트로 자동 변환해 빅데이터 분석까지 하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최근에는 AI가 인사를 내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국민은행은 하반기 들어 'AI 알고리즘 기반 인사 시스템'을 활용해 인사를 단행했다. '거주지에서 영업점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한 출퇴근 시간이 1시간 이내' 등과 같은 30여개 규칙에 따라 AI가 직원을 배치하고, 인사 담당자가 최종 점검해 인사 발령을 낸 것이다.
구태훈 국민은행 AI혁신센터장은 "전 세계적으로 금융회사들은 아마존이나 구글과 같은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IT기업으로 혁신을 거듭하고 있으며, 국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며 "핵심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AI 역량 고도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