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에 열병식을 거행한 것은 미국 정보당국을 교란시키면서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심야에 거행하는 행사라고 미국이 북한의 동태를 모를 리 없고, 결국 녹화방송까지 한 것을 보면 오히려 미국 등 세간의 관심을 끌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연설에서 김정은은 미국을 직접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세력이든 북한의 안전을 위협한다면 가장 강력하고 공격적인 힘을 선제적으로 총동원하겠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또 경제제재와 코로나19, 수해 등으로 불만에 차 있을 북한 주민을 의식해 "미안하다. 고맙다"를 연발하는 감성정치도 연출하고 "북과 남이 손을 맞잡는 날"이 오길 기원한다는 대남 유화 메시지도 날렸다.
그러나 이번 열병식의 본질은 제재 해제 그리고 체제 안전보장 및 미·북 관계 개선과 핵보유국 지위를 원하는 북한의 기존 입장 관철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북한의 핵 무력을 ‘자기방어’로 규정했지만, 이는 국제적인 압박과 미국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핵무기 강국으로 진화했음을 확실히 알아달라는 과시이기도 하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 위협을 통제함으로써 대북외교가 성공했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미사일 발전을 전혀 포기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 북한이 확고한 핵 능력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향후 협상력을 제고하려는 의도도 있다.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이 이번 열병식에서 공개한 신형 ICBM은 이동식 ICBM 중 세계 최대급으로, 최대 규모의 도로 이동식 액체연료 미사일이라고 한다. 혹시 상단 로켓 또는 후추진체(PBV, Post Boost Vehicle) 기술을 확보한 다탄두 탑재형 미사일이라면 복수 지역 동시 공격도 가능하다. 이 미사일은 기존 화성-15형을 운반한 이동식 발사차량(TLE)보다 대형인 11축 22바퀴 이동식 발사차량에 실려 보다 대형화된 모습을 드러냈다. 또 2016년 시험발사에 성공한 SLBM도 개량을 거친 '북극성-4A'형이 공개됐다. 종래의 SLBM보다 작아 잠수함 탑재가 가능하고, 상당한 사거리를 확보해 미군 핵심기지가 있는 괌 기지 타격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미국의 압박과 견제에 아랑곳하지 않는 정면 돌파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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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이지만 일정한 불가역성이 있다. 미국은 남북관계는 비핵화와 불가분이라며 대북 압박 지속을 강조해 종전선언에 대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이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관계 복원 언급을 감성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보유 의지는 전혀 변하지 않았고 9·19 남북 군사합의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종전선언을 하더라도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는 정전협정이 유효한 상황에서 미국·중국·일본 등 주변국의 지지도 필요하다. 종전 선언이 북한 비핵화를 결정적으로 추동할 수 있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종전선언 추진은 오히려 우리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보다 정교한 논리 구축과 대 국민 설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