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 대사는 올해 1월 부임 이후 한국에서 잇단 광폭 스킨십 행보를 걷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재계, 학계 등 주요인사들을 연이어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민간단체 행사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간 소극적인 공개 활동을 펼치던 역대 중국대사들과 비교된다. 특히 그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도 하는데, 이는 싱 대사의 특별한 ‘한국 사랑’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날 명동 대형 화장품 매장을 방문한 싱 대사는 연신 이같이 말하면서 여러 제품을 구매했다. 화장품 매장에 이어 의류매장에서 쇼핑을 하고 인근 삼계탕집을 찾아 식사도 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상인들과 만나 소통하고 응원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이뤄진 명동 방문이었다. 들른 가게마다 중국 중추절(中秋節·추석) 전통 음식인 월병을 선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실 중국 대사가 명절 연휴 직전 한국인과 스킨십 행보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역대 중국 대사들은 공개 활동에 적극적인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싱 대사는 중국 대사로는 처음으로 직접 지역 상권 상인들을 찾아가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왕퉁(王桐) 중국대사관 경제상무참사는 “중국대사가 명절을 앞두고 명동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며 “싱 대사는 스스로를 중구 주민으로 소개하기도 하면서, 중국대사관이 위치한 명동에 응원을 전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이는 싱 대사의 붙임성 있고 활달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중 관계가 개선되고 있다는 뚜렷한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얼어붙었던 한·중 관계는 올해 초 5000명 규모의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한꺼번에 방한하면서 해빙 무드에 들어섰다. 게다가 중국 외교가의 대표 '지한파(知韓派)'로 알려진 싱 대사가 지난 1월 말 중국대사로 부임하면서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중국의 의지도 확인됐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로 양국 관계 교류에 차질을 빚게 되자, 싱 대사가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싱 대사는 부임 이후 왕성하게 활동했다. 정·재계 굵직한 주요 인물들을 직접 대면했는데,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수성 전 총리, 문희상 전 국회의장, 박병석 국회의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이인영 통일부장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김명수 대법원장 등을 만났다. 기업인 중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손경식 CJ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김원경 삼성전자 부사장, 지성규 하나은행장, 최창수 KB국민은행 글로벌사업그룹 대표이사 등을 두루 만났다.
언론사와의 교류도 잦았다. KBS, SBS, MBC 등 주요 방송사 사장들과 만났다. 각종 단체, 학계 주요 행사도 자주 찾았다.
이 같은 활동은 역대 중국대사들에 비하면 ‘파격적인’ 수준이다. 중국대사의 공식 활동을 파악할 수 있는 주한중국대사관 홈페이지의 대사관 동정 소식란을 살펴본 결과, 지난 한 해 공문 발표 등을 포함한 추궈훙(邱國洪) 전 중국대사의 공식 활동은 총 18건이었다. 반면, 싱 대사의 공식 활동은 올해 1월 30일 부임 후 지난달까지 총 115건에 달한다.
추 전 대사가 한국에 부임한 해의 활동과도 차이가 크다. 추 전 대사는 2014년 2월 부임 후 그해 공식 활동이 58차례 있었다. 당시는 한·중 관계가 매우 가까웠던 시기였는데도, 싱 대사 활동량에 비하면 한참 뒤처진다.
◆코로나19 확산 심각할 땐, 마스크·구호물품 기부도 수차례
싱 대사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그는 한국에 부임하자마자 닷새 만에 기자회견을 열었다. 신임장 제정식도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신임 대사가 기자 회견을 여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한국의 코로나19 지원에 대한 감사를 표하면서도 당시 한국의 중국인 입국 제한 조치에 대해선 아쉬움을 표했다.
이후 한국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졌을 땐, 한국 내 민간단체나 지방자치단체 등에 마스크나 구호물품을 기부하고, 당국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등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한·중의 코로나19 협력 가교 역할도 톡톡히 했다. 한국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만나 코로나19 대응협력을 논의했으며, 중국에서 한국으로 수출할 마스크 확보를 위해 중국 당국과 긴밀히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
싱 대사가 이토록 다방면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건 그간 한국과 맺어온 깊은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싱 대사는 1992년 8월 한·중 수교 직후 서울에 부임한 첫번째 중국대사관원 가운데 하나다. 그는 1995년까지 서울에서 3년 근무한 후, 2003년 다시 서울에 부임해 참사관으로 3년간 일했다. 이후 2008~2011년 공사급 참사관으로 서울에서 세번째 임무를 마쳤다. 이번 서울 부임이 무려 네번째다.
그는 평양에서도 두 차례 근무를 했다. 34년간의 외교관 생활 가운데 본부 근무 5년과 주몽골 대사 근무 4년여를 제외한 25년을 한반도에서 활동했다. 외교가에서 싱 대사를 한국 사정에 밝은 ‘코리안 스쿨’ 대사, 지한파라고 부르는 이유다.
한국어 구사 능력도 상당하다. 공식 석상에서 그의 유창한 한국어는 매번 화제가 되곤 했다. 특히 그는 서울 말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최초의 중국 대사다. 역대 중국 대사 중 초대 대사인 장팅옌(張庭延) 전 대사와 3대 리빈(李濱) 전 대사, 4대 닝푸쿠이(寧賦魁) 대사는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지만 모두 평양 말투가 짙었다.
그가 처음부터 서울말에 능숙했던 건 아니다. 북한 근무를 오래했던 터라, 첫 한국 부임 당시에는 평양 말투가 배어 있었다. 그런데 2008년 한국에 부임해 3년간 서울 말투를 익혀 이후부터는 완전히 서울 말을 구사하게 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