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한바퀴]① 아날로그 감성 물씬...경춘선 숲길

2020-10-01 06:00
  • 글자크기 설정
어릴 적 살았던 아파트 뒤에는 좁다란 골목길이 하나 있었다. 집을 빠져나와 울창한 벚나무가 드리우는 그늘 속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나오는 작은 골목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평범한 길목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공기놀이와 고무줄 놀이, 숨바꼭질하며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19 확산에 가까운 여행지로 떠나는 일조차 꺼려지니, 골목을 거닐며 뛰놀던 그때가 더없이 그립다.
우리 동네 구석구석을 걸으며 추억에 잠겨보는 이 시간, 그저 동네 골목길일 뿐인데 여행지에 온 것처럼 가슴 한편이 벅차오른다. 
추석 연휴에는 호젓하게 우리 동네 골목길을 여행하는 것은 어떨까. 쉽게, 바로 지금 떠날 수 있는 골목길로 가자. 
 

경춘선 숲길 3구간[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아날로그 감성을 품은 '동네 철길'이 있다. 서울 노원구 경춘선 숲길이다. 옛 경춘선이 오가던 철로를 단장해 낭만을 소환하고 향수로 채운 경춘선 숲길에서는 옛 기차역을 둘러보고, 철길이 가로지르는 서울 변두리 동네와 학교 옆, 철교 위도 걸을 수 있다.

카페가 옹기종기 들어선 공릉동 철길 주변은 '공트럴파크'로 불린다. 쓰레기와 불법 주차로 시달리던 폐선 철로가 뉴트로 명소로 변신했다. 

경춘선은 1939년 민족자본으로 처음 개설한 철도다. MT나 첫 데이트로 설레는 청춘을 실어 나르던 경춘선은 2010년 복선 전철이 개통하며 광운대역(옛 성북역)-서울시계 구간 운행을 중단했다. 녹슨 철로는 2015년부터 도시 재생 사업을 거쳤고, 행복주택공릉지구 구간(0.4km)까지 모두 개통하며 총 6km 경춘선 숲길이 완성됐다.

서울시와 구리시 경계인 담터마을에서 월계동 녹천중학교까지 이르는 경춘선 숲길을 모두 걷는 데는 2시간 남짓 걸린다. 완주를 목표로 하는 도보 코스가 아니라, 골목을 기웃거리고 철로 옆 찻집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삶과 그리움을 반추하는 길이다. 도심 속 예상 밖의 풍경과 여유가 함께하면 반나절 금세 흐른다. 투박한 벽화, 건널목 이정표도 벗이 되어 걷기를 함께 한다. 

세 구간으로 나뉜 공간마다 철길에는 다른 향취가 묻어난다. 옛 기차역과 탁 트인 경치가 펼쳐지는 곳은 옛 화랑대역(화랑대역사관)에서 구리시 경계까지 이어지는 3구간(2.5km)이다.

옛 화랑대역은 예전 서울여대생들이 강촌, 대성리 일대로 MT 갈 때 이용한 추억의 공간이다. 국가등록문화재 300호로 지정된 역사 주변에 증기기관차, 협궤 열차 등이 전시돼 운치를 더한다.

철길 좌우로 도심 빌딩 대신 시원한 풍광과 태릉, 육군사관학교 등이 나란히 흐른다. 코스 중간까지 나무 데크가 이어져 사색하며 걷기 좋다.

경춘선 숲길 시작점은 담터마을이지만, 지하철과 연계된 옛 화랑대역을 포인트 삼아 3구간을 둘러보고 나머지 구간을 걷는 게 조금은 편하다.

옛 화랑대역에서 도심 방면으로 향하면 육사삼거리부터 행복주택공릉지구까지 2구간(1.9km)이 이어진다. 경춘선 숲길을 화제에 오르게 한 공트럴파크가 담긴 길이다. 2구간 철길은 단독주택, 빌라 등 삶의 현장을 가로지른다. 담장에 벽화가 있고, 주민들이 가꾼 도심 정원도 곳곳에 자리한다.

주택가와 연결된 카페, 식당 등 분주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면 공트럴파크가 시작된다. 공릉동과 뉴욕 센트럴파크를 아우르는 이 공간에는 숲길을 비롯해 카페, 베이커리, 책방 등 수십 곳이 들어섰다. 이곳은 청춘들에게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았다. 인기에 힘입어 카페와 맛집 등을 안내하는 지도도 마련됐다.

공트럴파크 인근은 옛 경춘선이 서는 신공덕역이 있던 곳이다. 곳곳에서 만나는 건널목의 흔적이 기찻길이었음을 묵묵히 대변한다. 토박이 주민은 공트럴파크 일대가 최근 1~2년 사이 급작스럽게 번잡해졌다고 전한다. 가옥을 개조한 카페와 술집 등은 계속 변신 중이다.

지난해 개통한 행복주택공릉지구와 이어지는 ​경춘선 숲길 2구간은 지하철 6·7호선 태릉입구역, 7호선 공릉역과도 가깝다.
 

공트럴파크 모던카페[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경춘선 숲길 1구간(1.2km)은 아파트가 솟은 서울의 일상과 경춘철교를 담아낸 길이다. 완만한 곡선으로 흐르는 철로에 카페 대신 텃밭과 대합실이 떠오르는 쉼터가 공간을 채운다.

철길 따라 미루나무와 잣나무가 늘어서 아늑한 숲을 이룬다. 1구간 중간에 무궁화호 객차 2량으로 꾸민 경춘선 숲길방문자센터가 숲길 산책을 돕는다. 방문자센터 옆 하계어린이공원은 높이 15m '자이언트 나무 놀이대'로 유명하다.

1구간 하이라이트는 경춘철교다.

1939년 설치해 72년간 중랑천을 잇는 철길로 사용된 경춘철교는 보행자 전용 다리로 재탄생했다. 경춘철교에서 바라보는 서울 풍광이 멋스러우며, 원형이 복원된 철로 바닥에서 흐르는 중랑천을 감상할 수 있다.

경춘철교 지나 월계동 녹천중학교에서 숲길 산책로가 마무리된다. 경춘선 숲길은 자전거도로가 잘 갖춰졌으며 녹천중학교에서 지하철 1호선 월계역, 옛 화랑대역에서 6호선 화랑대역이 가깝다. 서울-구리 경계선은 인적이 드물고 대중교통 연결이 쉽지 않아, 해가 진 뒤 이곳에서 산책을 마무리하는 일정은 피하는 게 좋다.

경춘선 숲길 인근에는 함께 둘러볼 관광지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삼육대 입구에 자리한 '강릉'은 조선 명종과 인순왕후를 모신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 왕릉'으로, 태릉보다는 덜 알려졌다. 명종은 12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탓에 어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했다. 

문정왕후는 태릉에 묻혔다. 태릉은 문정왕후의 위세를 방증하듯 석물이 강릉보다 1.5~2배 크다. 강릉에서 태릉까지 굴참나무 숲길이 이어지며, 해마다 5~6월과 10~11월에 별도 개방한다.

서울 태릉과 강릉은 사적 201호로 지정·보호되고, 태릉에는 운치 있는 솔숲과 조선왕릉전시관도 있다.
 

공릉동 국수[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동네 길을 걸어도 허기는 진다. 공릉동 국수거리를 찾아 따끈한 국물 한 사발 들이키고 싶다.

1980년대 후반 공릉동 복개천 일대에 벽돌 공장이 많았는데, 인근 국숫집에서 공장 인부들에게 멸치로 우린 국물이 시원한 국수를 내놓았다.

이후 택시 기사들이 단골로 드나들며 입소문이 났으며, 태릉입구역 1번 출구에서 서울 공릉초등학교 뒷길 따라 공릉역 일대까지 국수 전문점 10여 곳이 그 맛을 이어가고 있다. 식당에서는 추억의 멸치국수 외에 비빔국수, 김치국수 등을 선보인다.

국수 한 그릇 배불리 먹은 후에는 향수를 부르는 공간 공릉동도깨비시장으로 간다. 노원구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도깨비방망이처럼 무엇이든 만들어낸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시장 골목이 완만한 오르막길에 자리해 시골 장터 분위기가 난다. 일대 자취생에게는 주전부리의 성지로 알려졌으며, 족발과 칼국수, 닭강정, 꽈배기 등이 저렴하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