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본부가 오는 12일부터 독립기관인 ‘질병관리청(질병청)’으로 출범한다. 질병관리본부 출범 16년8개월여 만이다. 감염병 조사는 물론 연구와 정책까지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명실상부 ‘감염병 컨트롤타워’로 자리매김한다. 또 권역별 질병대응센터를 둬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 속에 방역체계를 강화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역별 체계적인 감염병 대응이 필요하단 인식이 높아지면서다.
다만 방역의 ‘손발’이 되는 지역 보건소와 협력 문제는 질병청이 컨트롤타워로 발돋음하는 데 관건이 될 전망이다. 실제 현장에 투입되는 질병대응센터의 인력 수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며, 감염병 대응에 있어 질병청과 지자체간 역할이 불분명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감염병 대응 손실 보상에 대한 권한은 보건복지부에 남아 있어 ‘알맹이’가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행정안전부는 질병청의 승격과 복지부 보건 전담 차관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8일 밝혔다. 앞으론 질병청이 조직과 인사, 예산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며, 국립보건연구원과 국립감염병연구소, 질병대응센터, 국립결핵병원, 국립검역소 등의 소속기관을 갖추게 된다. 초대 청장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임명됐다.
이번 조직개편의 핵심은 감염병 관리와 예방의 일원화다. 현재 감염병 감시와 대응, 조사 업무는 질병관리본부가 복지부로부터 위임을 받아 수행한다. 코로나19의 경우 정부가 방역에 대해선 질병관리본부에 전권을 주다시피 해 대응하고 있지만 원칙적으로 정책과 집행의 권한은 복지부에 있다.
하지만 앞으론 감염병의 감시 단계부터 대처, 감염병 예방을 위한 연구와 백신 개발 지원까지 질병청 산하에서 모두 이뤄진다. 감염병예방법 등 법률을 직접 소관하는 등 감염병 관련 정책과 집행까지 질병청에게 업무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다.
◇기존 정원의 42% 늘어난 1476명으로 출범
우선 몸집부터 커졌다. 질병청은 5개국과 3관 1476명이 몸을 담는 조직으로 출범한다. 코로나19과 같은 신종 감염병 대응을 위해 기존 정원의 42%를 보강했다. 보강한 인력은 총 569명으로 재배치를 뺀 순수한 증원은 384명이다.
청장 산하에 종합상황실을 설치해 전체 컨트롤타워처럼 감염병의 발생 동향을 24시간 감시한다. 위기대응분석관과 건강위해대응관, 의료안전예방국도 신설했다. 위기대응분석관에선 역학 정보 등 감염병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감염병 유행 예측 기능과 역학조사관 교육·관리까지 이뤄진다. 건강위해대응관은 원인불명의 질병이 발생하는 경우 이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한 조직으로 예방사업까지 함께 담당할 예정이다. 의료안전예방국에선 백신 수급 및 안전 관리, 의료감염 감시 등 일상적인 감염병 예방 기능을 강화한다.
기존 감염병관리센터는 감염병정책국으로 재편돼 연구뿐 아니라 감염병예방법 등 관련 법령과 정책, 제도를 총괄한다. 감염병 치료 병상 및 비축 물자 확보 등도 감염병정책국을 통해 질병청에서 관리한다.
◇국립보건연구원 질병청 산하에···전국 5곳에 질병대응센터 설립
당초 질병청 승격안이 발표됐을 당시 논란이 됐던 국립보건연구원은 복지부로 넘기지 않고 질병청 산하로 남게 됐다. 국립보건연구원엔 연구기획조정부를 신설해 의료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바이오·빅데이터 등의 미래 의료분야와 맞춤형 질환 연구를 강화한다.
또 국립보건연구원 아래에 있던 감염병연구센터를 국립감염병연구소로 확대 개편해 연구 기능을 넓혔다. 국립감염병연구소는 3센터 12과 100명 규모로 만들어지며, 임상 연구와 백신 개발 지원 기능까지 할 방침이다.
질병대응센터도 전국 5곳에 세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알 수 있듯 감염병 관리는 중앙 조직만으론 대응에 한계가 있어서다. 수도권과 충청·호남·경북·경남 5곳에 센터를 두고, 제주에는 별도 출장소를 둔다.
서울·대전·광주·대구·부산에 사무소를 두고 총 155명 규모로 운영한다. 이와 연계해 지자체에 감염병 대응 인력 1066명을 보강, 감염병 위기상황 발생 시 보건소 인력 중심으로 대응해 나간다.
◇출범 초기 과제 산적···손실 보상 권한은 빠져
그러나 정책 집행에 있어 출범 초기 풀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독립된 중앙행정기관으로서 행정 업무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 입원치료병상 등 의료대응체계 업무를 그동안 복지부가 국립중앙의료원과 전국 의료기관 등을 통해 관리해 왔기 때문에 질병청이 독립적으로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데 출범 초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 백신 개발과 임상연구 등도 병원 등 의료기관이나 제약회사 등 기업과 협조 체계를 구축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일각에선 지방조직인 권역별 질병대응센터의 실효성을 두고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질병청이 각 지역 감염병 대응 현장을 총괄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원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5개의 지역에 30명씩 인력이 배정되면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인력은 몇 안되는 셈”이라면서 “전국 보건소는 250여 곳에 이른다. 질병청이 보건소와 같은 지방조직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 지역에서 이어지는 소규모 집단감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지자체장에게 보건소 관리 권한이 있어 질병청이 현장 대응을 총괄하는 방식도 어렵고, 더 나아가 보건소의 한 기능인 방역업무를 떼어내 독립적인 기능을 하도록 하는 것은 조직적으로 상당히 어렵다”고 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질병청 승격을 환영하면서도 신종 감염병 대응을 위해 질병청과 지자체간의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자분류지침이 안 만들어져서 대구에서 혼란이 있었다. 이는 중앙이 역할을 제때 못한 것이다. 또 각 지자체별로 보건소 운영 등에 편차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각자의 역할이 명확하지 않다. (앞으로) 정부는 지침을 만들고 지방이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감염병 대응 손실 보상 등 감염병예방법에 관련한 핵심 권한이 복지부에 남아 있어 독립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손실보상, 내성균 관리대책 등 일부 권한은 복지부에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보상에 관한 법률은 복지부가 아직 쥐고 있다. 알짜 권한은 빼고 준 것이다. 보상을 다른 데서 하는데 청장 말을 (얼마나) 잘 듣겠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기존 감염병예방법에서도 대부분 권한은 질병관리본부에 위임이 돼 있었다. 그 기준을 갖고 업무를 분장했다”고 답했다.
한편, 복지부엔 보건분야 전담 차관이 새롭게 생겨난다. 신설하는 2차관에 강도태 복지부 기획조정실장을 발탁했다. 2차관 밑으로는 ‘1실 3국 6관 30과’ 298명을 두게 된다. 지금보다 1관 3과 44명을 보강하는 셈이다. 보건의료정책실과 건강보험정책국·건강정책국·보건산업정책국이 해당한다. 특히 보건의료정책실엔 의료인력정책과가 새롭게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