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4일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에서 한 발언이다. 당시 그는 "나는 부림사건을 조사하는 검사였고 그 사건은 공산주의 운동이었다"면서 "이를 변호한 문재인 후보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그는 공산주의자고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라고 말했다.
또한 "문재인은 나를 비토(veto, 거부권)하는 사람이었다"라며 "내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것에 불만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들과 명예훼손 사건...재판 쟁점은 사실여부와 의도
형사법 전문가는 "명예훼손 성립요건 중 가장 먼저 판단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사실(허위사실 포함)인지 의견인지 여부"라며 "사실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이어 "공연성이 인정되는지, 발언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피해를 줬는지 여부 등을 고려한다"며 "만약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면 비방의도를 파악하기도 쉽다"고 말했다.
고 전 이사장의 1심 재판부는 "사회적으로 이론의 여지없이 받아들일 만한 자유민주주의 혹은 공산주의 개념이 있는지 의문이고, 이 표현이 부정적 의미를 갖는 사실적시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악의적으로 모함하거나 인격적 모멸감을 주려는 의도도 보이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사실이나 허위사실을 적시한 게 아니므로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판결에 대해 형사법 전문가는 "개개인의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 재판부가 '의견'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재판부는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이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봤다. 공산주의자는 것의 근거로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으며 잘못된 근거에서 논리를 비약시켰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 "단순히 피해자가 부림사건의 변호인이었다는 적시만으로는 사회적 평가를 저해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 사실이 공산주의자임을 논증하는 근거로 사용되면 다르게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부림사건의 변호인이 아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림사건을 맡았었고 문 대통령은 30년 뒤 부림사건의 재심을 맡았을 뿐이다.
재판부는 "동족상잔과 이념 갈등 등에 비춰 보면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은 다른 어떤 표현보다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표현"이라고 밝혔다. 사실이 틀렸을 뿐만 아니라 비방목적이 충분하기도 본 것이다.
비방목적이 없다며 무죄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명예훼손 재판에서다.
기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지국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당시 정윤회씨와 만나고 있었다는 의심을 받는다'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재판부는 "기사에 기재된 소문 내용이 허위라는 점이 정씨의 당일 통신내역과 청와대 출입기록 등에 의해 충분히 인정된다"면서도 "보도에 부적절한 측면이 있으나 공인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거나 비방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기토 전 지국장 측은 항소하지 않았다. 검찰도 "비방 목적을 부인해 무죄 선고를 한 것은 법리상 다퉈볼 만 한 여지가 있다"면서도 "기사가 허위임은 인정됐고 외교부의 '한일관계 발전'이라는 대승적 요청을 고려해 항소하지 않는다"고 밝혀 판결이 확정됐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방한 인물이 명예훼손 혐의로 유죄확정 받은 사례도 있다.
김경재 전 총재는 2016년 11월과 2017년 2월 보수단체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면서 "2006년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8000억원을 걷었고, 이해찬 전 총리가 이를 주도했다"는 내용의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법원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청중을 상대로 사실관계를 왜곡했다"며 "마치 피해자들이 개인적 이익을 취득한 것처럼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유죄를 선고했다.
또한 "바로 발언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는 등 허위사실임을 인식하고 있어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명예훼손과 모욕의 차이는?…표현의 자유 중요하지만 모욕은 처벌
비방이라고 해도 그 내용이 의견이라면 사실적시에 해당하지 않아 명예훼손으로 처벌되지 않는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모욕죄로 처벌될 가능성은 있다.
대법원은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상 권리로서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고 판시한다. 그러나 예외적 사정 있으면 위법하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한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모욕적인 언사로 비방을 당한 경험이 있다. 이른바 '공업용 미싱사건'이라고 알려진 사건이다. 다만, 피의자는 명예훼손이 아닌 모욕죄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김 전 대통령을 비방한 발언은 사실과 관계없는 모욕이라는 것이다.
김홍신 전 한나라당의원은 1998년 5월26일 한나라당 정당연설회에서 "(김 전 대통령이)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서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야 한다"는 말로 김 대통령을 비방해 기소됐다.
당시 대법원은 ""공업용 미싱" 발언은 정치적 비판의 한계를 넘어섰다며 김 전 의원에게 형법상 모욕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