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6일 업무상 재해로 숨진 A씨의 유족 등이 현대·기아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 측은 A씨의 유족을 채용하고 동시에 채용이 미뤄지면서 받지 못한 임금도 지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A씨는 현대·기아차에서 근무하던 중 화학물질인 벤젠에 노출돼 2008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산재 노동자다. 당시 현대·기아차는 단체협약으로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숨질 경우 그 유족을 특별채용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갖고 있었다. 산재보험금이 실질적인 보상수준에 이르지 못했고, 유가족들의 생계 안정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만 한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A씨의 유족은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특별채용 한다'는 단체협약 규정에 따라 자녀의 채용을 요구했다.
1·2심 재판부는 A씨의 유족에게 위자료 등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했지만 단체협약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단체협약의 규정이 취업기회 제공의 평등에 반하고 생계보장은 금전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이 규정은 민법103조에서 정하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산재노동자 유족에 대한 보상은 금전으로 충분하며 일자리 제공은 평등원칙에 반한다는 것이 하급심 판단이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턱없이 부족한 산재보상을 도외시한 판결'이자 '산재피해자에 대한 보호를 어떻게 평등이라는 문제로 접근할 수 있느냐'라고 분개했다.
하급심의 판단은 결국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산재로 사망한 직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는 것이 구직 희망자의 채용 기회에 중대한 영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단체협약 조항은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 협약은 사측과 노동자가 스스로 의사에 따라 합의한 것이고 회사가 이미 여러 차례 산재 유족을 채용해 왔다는 것이다. 또 현대·기아차의 규모에 비해 특별채용되는 유족은 적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회사 측이 부담해야 하는 업무상 재해 보상책임을 보충하는 것으로 유족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라며 "위 조항이 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질서를 위반해 무효하다고 본 원심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기택·민효숙 대법관은 "단체협약의 산재노동자 자녀 특별채용 조항이 구직희망자의 희생에 기반한 것으로 위법하다"며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6월 공개변론을 열어 사측과 산재유족 측은 물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