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시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유례없는 위기 속에서 사상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는 새 이정표를 세웠다. 사실상 기술 거인들이 '멱살 잡고 이끈 랠리'라는 분석이다. 오름세가 일부에 집중된 데다 경제 현실과의 괴리가 크다는 점은 추가 상승의 걸림돌로 꼽힌다.
18일(현지시간) 뉴욕증시 간판 S&P500지수는 0.23% 오른 3389.79에 마감, 2월 19일에 기록한 종전 최고치인 3386.15를 넘어섰다. 이로써 뉴욕증시는 약 5개월 만에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상실분을 완전히 만회하게 됐다. S&P500지수는 3월 23일 바닥을 찍은 뒤 54% 넘게 뛰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제 위기 속에서도 증시가 전례없는 랠리를 펼친 배경에는 정책 당국의 대대적인 부양책이 있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코로나19 사태가 닥치자마자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끌어내렸고 무제한 양적완화에 돌입했다. 미국 의회는 수조 달러를 들여 실업 지원금을 제공하는 등 미국 경제의 주춧돌인 소비가 무너지지 않도록 뒷받침했다.
천문학적인 유동성이 쏟아지는 가운데 돈은 높은 수익률을 쫓아 위험자산인 증시로 몰려갔다. 대규모 부양책에 힘입어 경제가 빠르게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증시를 떠받쳤다.
그러나 업종별로 고르지 못한 흐름은 이번 랠리의 한계로 꼽힌다. 미국 대표 기술 거인들은 코로나19 수혜주로 각광받으며 승승장구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경제 불확실성 속에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이런 특징은 간밤 장세에서도 두드러졌다. 주식 대부분이 하락했으나 아마존과 알파벳 주가가 급등하면서 S&P500지수를 끌어올렸다.
TD아메리트레이드의 션 크루즈 매니저는 CNBC에 "기술적으로 우리는 폭락장 이전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당시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기업들이 수두룩하다"면서 "포트폴리오에 다양한 종목을 담은 투자자라면 여전히 마이너스인 종목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번 랠리 동안 아마존, 알파벳,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등 미국 5대 IT 거인들이 S&P500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넘어섰다. 3월 말부터 시작된 랠리에서 이들 5개 기업의 기여분이 4분의 1에 이른다. 반면 2월 19일 전고점 당시 주가를 회복한 S&P500 기업은 40%가 채 되지 않는다.
뉴욕 펀드매니징회사 앨거의 브래드 뉴먼 전략가는 "월스트리트가 메인스트리트를 비추는 거울은 아니다"라면서 "이번 시장 랠리는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뚜렷했다. 대형 기술주들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시장 내 비중이 커지는 동안 유통, 호텔, 항공 등 코로나19 직격탄을 입은 업종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망한 일부 업종에 집중된 증시가 암울한 경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미국 경제는 올해 2분기에 연율 -32.9% 성장률이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냈고 기업 수익은 급감했다. 실업률은 여전히 두 자릿수고 수천만 명이 실업수당에 의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펀더멘털을 반영하지 못한 랠리가 얼마나 지속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옴니아패밀리웰스의 스티븐 웨그너 최고경영자(CEO)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다. 현재 경제 현실을 둘러볼 때 2월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팩트셋에 따르면 S&P500지수의 향후 12개월 수익을 기준으로 한 주가수익비율(PER)은 22.6배로, 닷컴 버블이 터지기 전인 2000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아울러 코로나19 재유행과 미국 의회의 추가 부양책 교착상태 장기화는 미국 경제 회복을 방해할 수 있는 악재로 꼽힌다. 올해 11월 치러지는 대선과 총선도 중대한 변수다. 민주당이 백악관과 의회를 모두 장악할 경우 법인세가 인상되고 월가 규제와 기술 공룡 해제 등의 이슈가 급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