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취준생들에게 쉼터를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매주 취준생들을 만나 마음속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응원을 건네려고 합니다. 인터뷰에 응한 취준생은 합격(pass)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P씨로 칭하겠습니다.
열세 번째 P씨(27)는 스타트업 입사를 준비하는 중고신입이다. P씨의 이전 직장은 반도체 계열 대기업이었다. 대기업은 취준생 누구나 선호하는 곳, 입사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목표이자 꿈이지만 P씨에게는 달랐다. 소위 ‘현타’(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P씨가 입사 3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다. P씨는 “사람들이 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좋은 대학 들어가면 인생이 성공한 것 같지만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과 (대기업 입사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남부러운 대기업 취업, 일할수록 불만족↑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업하면서 남부러움을 샀던 P씨지만, 출근하는 날이 늘수록 스트레스도 커져갔다. 주변인과의 가치관 차이 때문이었다. P씨는 “하라는 대로 공부하고 좋은 성적을 받는 게 학창시절 성공의 기준이었다면 취업 후에는 연봉 많이 받고 승진 경쟁을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며 “막상 일을 해보니 매일 하루 루틴이 정해져 있어서 재미가 없었다. 회사 내에서 자기 영역이 확실한데, 실수에 대한 책임은 크지만 일을 잘 할 때는 아무도 못 알아준다”고 실망감을 표했다.
이어 “사람이 일에 결정적 영향을 못 미치고, 그냥 공장 부품 중 하나 같았다”라며 “돈을 많이 받아 명품을 사도 일회성 행복이었다. 윗사람들이 좋은 차를 타면서도 실적 압박을 받고, 그만한 수입이 안 들어올 때는 못 견디는 모습을 보면서 ‘현타’가 왔다”라고 덧붙였다.
회사를 나간다고 했을 때는 팀원들이 P씨를 말렸다. 1년 내 신입사원이 퇴사하면 그 팀의 고과가 안 좋기 때문이다. P씨는 “퇴사 전 팀장부터 상무이사까지 상담을 거쳤다”며 “그분들도 고과가 안 좋아져서 나와 상담을 한 것이다. 해외 대학원을 간다고 거짓말까지 해야할 정도로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대기업 퇴사자 중에는 P씨처럼 돈보다 업무, 주변인 등에 불만족을 느낀 사람이 더 많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12월 대기업(종업원수 1000명 이상) 직장인 26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퇴사자들이 뽑은 퇴사 사유 1위는 ‘업무 불만족’(20.3%), 2위는 ‘대인관계 스트레스’(17%)다. ‘연봉 불만족’은 12.9%로 3위에 그쳤다.
회사 나와 쓴소리 들었지만···"행복하게 사는 게 먼저"
최근 P씨는 스타트업 면접을 봤다. 대기업보다 연봉은 낮지만, 위치도 집에서 가깝고 유연근무제 등 복지가 좋아 스타트업을 선택했다. IT계열이라 전공도 들어맞고, 인력란인 스타트업계 상황 덕에 취업 준비가 수월했다고 한다.
차선으로 ‘영어 강사’도 고려 중이다. P씨는 “어떻게든 1년 정도는 다녀보자고 생각 중”이라며 “이번에도 안 맞으면 회사라는 집단이 안 맞다고 생각하고 예전에 꿈꿨던 영어 강사를 준비하려고 한다. 영어 강사는 좀 늦게라도 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어 과외를 할 때나 학원 강사의 조교 아르바이트를 할 때 돈을 많이 못 받아도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즐거웠다”며 “강사들이 시키는 일에서도 배울 게 있었고,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다”고 회상했다.
끝으로 P씨는 대기업이 취업의 성공 기준이라는 ‘대기업 만능주의’를 지적했다. P씨는 “대기업에 갓 취업한 사람이 종종 중소기업을 무시하는 것을 보면 웃기다”며 “부품 같은 말단사원이 회사에서 차지하는 영업비율은 아주 낮다”고 전했다.
취준생들에게는 “꼭 적성에 맞는 직무를 찾아서 취업을 준비하고, 입사를 하더라도 거기 말고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을 미리 생각해야 한다”며 “퇴사한 사람 중 회사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다시 입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회사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력 자체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