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계의 '트러블 메이커' 기안84, 과거부터 이어진 논란의 발자취들

2020-08-1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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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비하, 인종차별, 지역 비하, 여성 혐오...한명의 만화가에겐 너무 많은 딱지들

표현의 자유도 '인격'이 뒷받침 됐을 때 힘을 얻는다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학벌, 스펙, 노력 그런 레벨의 것이 아닌..."

스펙도, 실무 능력도 없는 여자 인턴은 정직원 선발이 사실상 실패로 귀결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회식날 상사 앞에서 '조개'를 까더니 정직원이 됐고, 두 사람은 그날부터 연인 관계가 됐다.

위 내용은 웹툰 작가 기안84(김희민·36)의 작품 '복학왕-광어인간 편'에서 나타나는 이야기다.
 

웹툰작가 겸 방송인인 기안84의 연재작 '복학왕-광어인간 편'에서 또 한번 논란의 불꽃이 튀었다. [기안84 인스타그램, 네이버 웹툰 '복학왕']



해당 회차에서 여자 주인공 봉지은은 변변치 않은 학벌과 사실상 무(無)에 가까운 스펙을 지닌 이른바 '취업 시장의 약자'다. 우여곡절 끝에 대기업의 인턴에 합격은 했는데, 바탕이 바탕인 마당에 연일 실수를 남발하는 탓에 정직원 선발은 어려운 분위기다.

그런 그녀가 회식 자리에서 큰 조개를 배에 얹고 깨부순다. 마치 해달에 빙의한 듯한 이 '기행'을 본 40대 노총각 팀장의 반응은 '감탄'이었다. 봉지은은 인턴에서 정직원으로 채용된다.
 

기안84 웹툰 '복학왕' [사진=네이버 웹툰 캡쳐]


평소에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 스토리 전개로 호불호가 갈리던 작가이기도 했지만, 이어진 내용은 더욱 가관이었다. 회차 후반부에서 노총각 직원과 봉지은은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에 일부 독자들은 이 장면에 대해 봉지은이 '인사권을 쥔 남자 상사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합격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연출이라며 들고 일어났다. 여혐 논란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기안84 웹툰 '복학왕' [사진=네이버 웹툰 캡쳐]



아니나 다를까,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기안84 작가의 네이버 웹툰 연재 중단을 요구하는 청원 글이 게시됐고, 아울러 그가 출연 중인 TV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자 게시판에도 하차를 요구하는 글이 쇄도했다.

기안84는 이미 수차례 사회적 논란이 될만한 행동으로 도마에 오른 '트러블 메이커'다. 많고 많은 만화가 중 한명인 그가 논란의 도마에 오른 이력은 조금 색다른 의미에서 '화려'하다. 
 
프로 의식 '제로'?
과거부터 잦은 연재 지각과 휴재, 트레이싱(무단으로 배껴 그리기) 등으로 '작가 역량 문제'가 늘 거론됐던 기안84. 종종 스토리텔링에 실패해 이야기가 산으로 가거나, 정해진 날짜에 작품이 업로드 되지 않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던 그가 정작 방송 출연에는 열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자 웹툰 유저들 사이에선 기안84의 본업에 대한 프로 의식을 거론하며 거센 비난이 일기도 했다.
 

[제공=나혼자산다(MBC)]

상술한 내용은 만화가로서의 '실력'으로 범주화해 생각할 수 있는 문제다. 다소 너그럽게 본다면 사람이 하는 일에는 슬럼프가 있기 마련이고, 트레이싱도 모사와 표절의 경계가 완벽하게 구분되지 않는 영역이 어느 정도 있음을 감안해 볼 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저작권 침해로 일축할 수도 있다. 작품 외 활동이 많아지는 것 또한 변명의 소지는 충분히 있다. 연재와 방송을 병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느 하나에만 몰두해 기회 비용을 만드는 결정을 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적어도 백번의 양보는 필요하다. 
 
논란의 퍼레이드...어디까지 '실수'로 봐줘야 할까
하지만 사회적 통념을 뒤흔드는 작중 묘사는 실력이 아닌 '됨됨이'의 문제다. 부족한 실력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보강할 수 있지만, '표현'은 개인의 사상과 가치관을 떼어내 생각하기 힘든 영역이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대상, 혹은 해선 안될 말들로 인해 비난을 사서 받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문제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① 작품 내 장애인 차별·비하 표현
 

기안84 웹툰 '복학왕' [사진=네이버 웹툰 캡쳐]


기안84는 과거 '청각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표현과 연출을 작품 내에 여과없이 담아내 또 한번 세간의 지탄을 받은 적도 있다. 이를 두고 당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측은 기안84 웹툰의 한 장면을 공개하며 "작품에서 청각장애인 캐릭터가 말이 어눌하고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것도 물론 생각하는 부분에서도 발음이 어눌하고 제대로 발음 못하는 것처럼 등장하는 내내 표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연재물에서는 아예 청각장애인을 지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처럼 희화화 했다"며 "이는 명백한 장애인 차별행위다"고 비판했다.


②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종차별적 표현

 

기안84 웹툰 '복학왕' [사진=네이버 웹툰 캡쳐]


장애인 차별에 이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종 차별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작중에 낙후되고 비위생적인 숙소를 보면서 표정을 찌푸리는 한국인 직원들과는 대조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동남아계)은 "리조트 너무 좋다! 근사하다캅캅"이라며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동남아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인 클리셰로 해석되며 평점 폭락 사태로 이어지기도 했다.


③ '경기도 화성시는...' 지역 비하 발언

한편 자신의 닉네임인 기안84에 대한 설명에서도 논란이 불거졌다. 기안84는 블로그를 통해 자신이 경기도 화성시 '기안동'에 살았으며 '1984년생'이라는 점을 들어 닉네임을 지었다고 밝혔다. 자주 받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니 이 정도면 더할 것도, 부족할 것도 없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불필요한 사족이 달렸다.

"논두렁이 아름답고 여자들이 실종되는 도시, 화성시 기안동에 살던 84년생"
 

[사진=기안84 블로그 캡처]


이 발언의 저변에는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깔려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모두 10명의 여성이 살해된 사건이며 대부분의 피해자가 논두렁, 논수로, 야산에서 발견된 사건으로 아직까지도 유가족들과 당시 사건 장소 주변의 주민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사건이다. 이 표현을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기안84가 자신의 영향력이 더이상 과거와 같지 않음을 깨닫고 보다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 같은 사과도 반복되면 기만이다
비난이 커지자 네이버 웹툰 측은 "앞으로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작가들에게 환기하고 작품 대해서도 계속 긴밀하게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기안84도 문제가 된 장면들을 일부 수정했으나 아직까지 직접 공식 입장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웹툰 시장이 불과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성장했다. 빛이 눈부신만큼 그림자도 짙어지듯, 작가나 작품성에 대한 논란도 점점 그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웹툰 플랫폼이 책임져야 할 영역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웹툰 시장의 태동기처럼 단순 게재 공간을 제공하는 것 이외에 작품의 큐레이터로서의 역할도 함께 주문받는 위치가 된 것이다. 작품 선별, 신인 작가 육성, 작품 출고 전 검수는 두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표현에 대한 자정 능력은 생존과도 직결될 수 있는 과제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다양성을 시장성으로 치환시키는 차세대 문화 산업의 선두 주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사태 수습을 위한 진부한 몇 마디보다 구체적인 실천으로 보여주는 진정성이다.
 

[제공=네이버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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