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배달'된 품목은?

2020-08-1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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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물건을 조금이라도 싸게 구매하기 위해, 혹은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온종일 발품을 팔아대던 시절이 있었다. 달갑지 않은 호객행위와 무거운 장바구니, 험난한 주차 스트레스는 덤이었다.

그렇게 구매한 물건이 실상 제 값어치를 못할 때의 좌절감은 글 몇자로 표현하기에도 감히 벅찰 정도였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과거시험을 본 다음날이면 평양냉면을 시켜 먹었다"

이제는 발품이 아닌 '손품'만 팔아서 무엇이든 살수 있는 시대가 왔다. 심지어 집 대문 앞까지 배달까지 해준다. 도로 위, 골목 구석구석까지 당도한 배달 차량들은 우리가 매일 어렵지 않게 목격하는 일상의 한 조각이다.

'뭔가를 손에 넣고는 싶은데 사러 가자니 귀찮은 심리'는 고금을 막론한 우리 민족의 정서였을까. 우리는 오래 전부터 원하는 물건을 집으로 배달시켰다.

 

냉면은 기록상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 품목'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배달의 시초'는 무려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냉면'이 그 주인공이다. 1768년 7월 7일에 실학자 황윤석은 자신의 일기 '이재난고'에 위와 같은 내용을 적었다.

시험을 마치고 치맥을 먹는 요즘 대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큰 일을 치른 뒤에 맛있는 음식으로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자 하는 마음은 시대를 초월하는 심리라고 볼 수 있겠다.

배달 음식의 유혹은 주상 전하께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조선 말기의 실록에는 순조가 달구경을 하던 중에 내관에게 '냉면을 사오라고 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국내 최초의 택배 서비스는 한진의 '파발마'
본격적인 '택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미 제조·유통 등 모든 산업의 중추(Back-Bone)로 자리매김한 택배(Logistics) 산업도 어느덧 태동으로부터 서른 해를 바라보고 있다.

국내에 처음으로 등장한 택배 브랜드는 1992년 한진에서 선보인 `파발마'였다. 고로 2020년은 택배 서비스가 국내에 처음으로 탄생한 지 28년이 되는 해다.

 

마라토너 황영조가 바르셀로나에서금메달을 향해 달리던 그 해, 우리나라엔 택배 차량이 달리기 시작했다. [제공=한진택배]


한진의 파발마는 일본 '야마토 운수'의 택배사업을 벤치마킹해 국내 시장을 개척한 선두 주자였다. 1976년부터 20여년간 택배 역사를 키워오던 일본과 달리, 당시 국내에서는 택배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따라서 ‘택배’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해를 키워 '수요'로 변화시키고, 기본적인 개념을 처음부터 정립해야 하는 기반 작업이 필요했다.

한진은 서비스에 대한 시장의 이해와 상품 홍보를 위해 지상파TV 광고를 비롯해 다채로운 프로모션으로 ‘택배’ 알리기에 적극 나섰다. 그 일환으로 한진은 파발마라는 당초의 브랜드를 잠시 접어 두고, 택배라는 용어를 전면에 내세우며 ‘한진택배’라는 BI(Brand Identity)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게 됐다.
 
택배 산업의 중흥기, 대기업들이 발벗고 나서다
한진 이후 택배 업계는 그야말로 군웅할거의 시대를 맞이한다. 특히 기업간 인수 합병으로 꾸준히 양적으로 팽창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대기업들이 앞다퉈 택배시장에 진출한 이유는 단순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선발 주자인 한진을 필두로 대한통운(1993년), 현대로지엠(1994년),CJ GLS(1999)가 연이어 택배시장에 진출했다. 그리고 2006년 3월 CJ GLS가 삼성HTH를 인수 합병함으로써 택배시장의 M&A 열풍에 불을 당겼고, 2007년 이후에는 유진이 로젠택배, 동부가 훼미리택배, 한진이 쎄덱스 등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택배산업의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한편 빅 4사는 2007년 택배 산업 15년 만에 `1억 상자 첫 돌파'라는 신기원을 달성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구한 파워채널인 TV홈쇼핑부터 PC와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쇼핑몰에 이르기까지 택배 산업은 시대를 대표하는 유통 채널에 빠르게 적응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실제로 택배 산업이 태동기를 지나 본격화 단계에 진입한 2000년대에는 물류 수요의 다양화 추세에 맞춰 매년 20% 이상의 높은 성장을 구가했다. 
 
불황을 모르는 성장세, 그 이면엔 '약자의 희생'이 있었다
택배·배달 기사들은 '특수 고용직'으로, 사업주로부터 일을 받지만 근로 계약은 맺지 않는 일종의 프리랜서들이다. 독립적이고 자율성이 보장되는 근로 형태를 위해 도입했지만,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다. 평균 수준의 가계 소득을 위해 평균 이상의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구조 때문이다. 계약 내용이 택배 회사(혹은 지역 대리점)에 유리한 경우가 적지 않으며, 배달 건수 당 기사에게 떨어지는 금액도 노동 강도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심지어 회사가 수익성을 지키기 위해 기사 1명당 인건비를 낮게 책정하면서 서비스 교육보단 '속도'만을 주문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됐다. 즉 친절 교육이나 물품 안전 배송 교육 같은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제한된 시간내에 최대한 많은 물량을 배달하지 않으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구조 속에서 택배 기사는 생계를 위해 휴식 시간도 없이 도로 위를 위태롭게 질주해야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사는 본인이 맡은 구역의 물량을 다 소화해야만 불이익을 피할 수 있다. 기사들의 당일 배송량을 점수로 환산해 수수료를 차등 지급하는 회사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의 여파가 길어지며 택배 물량이 급증하게 되자 택배 기사들의 노동 강도는 더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모든 것이 비대면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기조 속에서 택배 산업은 사상 초유의 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역시나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는 택배 기사들이 있다. 폭증한 업무 속에서 아프다고 월차 한번 내고 쉴 수 있는 여건이 애초부터 형성되어 있지 않다.
 
"기사 여러분, 잠깐 쉬었다 하세요"

"8월 14일은 택배 상자 대신 행복을 싣고 달리시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택배업계가 오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정해 휴무하기로 했다. '택배 없는 날'은 민간 택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하루 쉴 수 있도록 전국택배연대노조와 한국통합물류협회가 합의하여 정한 날로, 법정 휴일, 연차 등의 휴가 제도를 적용받을 수 없는 택배 기사들의 특수고용노동자란 신분을 고려한 결과물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급증한 업무 부담량을 덜고 택배 기사들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국내 택배 산업의 태동 이후 최초로 이뤄진 합의이기도 했다.
 
이에 CJ대한통운,롯데,한진 등 국내 주요 택배 회사의 택배 화물 집하 및 배송이 일제히 중단된다. 

한편, 우체국도 택배 없는 날에 동참한다. 따라서 2020년 8월 13~14일에는 꼭 필요한 소포, 택배만 접수되며 접수가 되더라도 배송이 지연될 수 있다. 냉장·냉동식품 등 신선식품의 소포우편물 접수는 아예 중지된다. 소비자들이 13일에 주문한 상품은 17일부터 배송될 예정이다. 17일은 임시공휴일로 지정됐지만, 소비자 불편 등을 고려해 정상 근무 체제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한다.

반면 '자체 배송망'을 가진 회사의 경우는 예외다. 가령 쿠팡의 ‘로켓배송’과 SSG닷컴의 ‘쓱배송’, 마켓컬리 ‘샛별배송’은 평소와 다름없이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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