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확보 전쟁] 백신 나와도 국민 5명 중 1명 분량…계획도 예산도 없다

2020-08-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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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제약사와 협상 80% 자체 조달해야

국내 개발 성공해도 독점‧추가 매입 못해

3차 추경에도 빠져…美‧EU는 각축전

경기 성남시 판교 소재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사진=SK 제공]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기 위한 세계 주요국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긴박한 움직임은 코로나19로 곤두박질친 경제 때문이다. 반면, 2분기 역성장한 한국은 백신 확보에 대한 계획을 언급조차 하지 않을 만큼 태연하다.

9일 영국 시장분석기관 에어피니티에 따르면, 미국·영국·유럽연합(EU)·일본 등이 아직 개발 단계여서 나오지도 않은 코로나19 백신 13억회 분량을 쓸어 담아 나머지 국가들에게는 조달이 불투명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들 국가는 추가 매입 권리까지 감안하면 최대 15억회분을 확보할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충격을 완화하고자 ‘백신 보유국’이라는 안전판 마련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반면 현재 우리 정부가 해외에서 백신이 개발됐을 경우 확보할 수 있는 물량은 국민 전체의 20%인 1000만명 분밖에 되지 않는다. 공공적인 글로벌 협의체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서다. 당장 2차 대유행 가능성이 언급되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넉넉지 않다.

문제는 나머지 80%다. 이는 해외 개별 기업과의 백신 공급 계약을 통해 국가가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백신 개발 선두에 있는 글로벌 제약사들과 국내 백신 물량 확보 협상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예산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 등이 글로벌 백신 개발 제약사들과 우선 공급을 위해 계약에 나서고, 추가로 구매가 가능하도록 적극 나서는 모습과 대조적인 모양새다.

국내 기업의 백신 개발은 내년 하반기로 점쳐진다. 이마저도 개발 후 국내 우선 독점계약이나 추가 매입 권리 등에 대한 계획은 없다. 사실상 코백스에서 확보한 물량 외 다른 경로를 통한 백신 확보는 ‘제로’인 셈이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는 역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백신의 안전성이나 효과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백신 개발을 확보하는 것은 백신 개발 상황이 어느 정도 진행돼야 가능한 것”이라며 “국내 기업에 대해 백신 물량 확보를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다. 독점계약 등을 요구하는 것은 국내 기업에 부담을 주는 꼴이다. 현재는 백신을 잘 개발할 수 있도록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미국 등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예산이 개발·지원에 쏠려 있다. 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에서 코로나19 치료제‧백신 등 개발을 위한 관계부처 예산은 총 1936억원이 편성됐다. 이 중 백신‧치료제 개발에 총 940억원(치료제 450억원, 백신 490억원)이 지원된다.

3차 추경에 백신 확보 관련 예산은 사실상 빠져있다. 정부는 예비비를 활용할 계획이지만 규모조차 확인해 놓지 않은 상황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1900억원 추경을 결정하는 시점에 해외 기업들의 백신 계획이 뚜렷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예산을 편성할 때 구체적인 내용이 없으면 힘들다”면서 “백신 확보를 위해선 예비비를 활용할 계획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가 해외 개별 기업과 백신 확보 관련 계약을 진행한 사업은 1건이다. 정부는 지난달 21일 SK바이오사이언스, 아스트라제네카와 코로나19 백신후보물질의 국내물량 확보 협조를 위한 3자 간 협력의향서를 체결했다. 아스트라제네카-제너연구소가 개발 중인 백신후보물질 ‘AZD1222’는 지난 6월부터 임상3상에 진입, 개발 가능성이 높은 백신 중 하나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구체적인 물량과 가격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구체적으로 확보되는 물량과 가격에 대해서는 추후에 생산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결정될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글로벌 제약사들과 국내 백신 물량 확보 협상을 타개하기 위해 생산 인프라 점검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류충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장은 “해외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기술이나 플랫폼을 제공해 준다고 해도 (우리나라에)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요리 재료는 있는데 조리 기구와 그릇이 없는 격”이라며 “(우리 정부는) 생산 가능한 인프라가 있는지 확인하고 실제 사용할 수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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