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론어젠다]<4>이 분노를 품은채, 선진국 될 수 없다

2020-08-03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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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도국가로 뛰어오르자 ​- 분노의 포도 美대공황을 빼닮은 나라

디지털경제시대, 스타트업 육성이 청년들을 위한 최고의 일자리 대책.

문화·예술, 의료·건강 부문에서 본격적 중견국(middle power) 외교 필요하다

분노 조절 능력이 상실된 '악성 위험사회'는 피해야

 지난 1일 서울 여의도에서 6·17규제 소급적용 피해자모임, 임대사업자협회 추인위원회 등 부동산 관련단체 회원들이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임대차 3법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은 누구나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은 삶(세상)이 되길 바란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19세기 초 산업혁명은 지구상 많은 국가들의 운명을 가른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새로운 기술과 문명이 밀려들 때 이를 적극 수용해  변화의 길을 택한 나라는 대부분 경제부국으로 도약해 지금도 세계 경제를 선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양에서 19세기 후반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제국을 추월한 미국과 동양에서 메이지유신을 통해 새 시대를 연 일본이다. 도전과 변화를 거부한 나라는 대부분 경쟁에서 밀려나 후진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19세기 조선의 세도정치와 쇄국정책은 국제관계를 악화시키고 나라의 몰락을 앞당겼다. 일제 식민지배, 한국전쟁 등 가혹한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 세계 최빈국의 하나이던 한국은 중진국을 거쳐 이젠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선진국과 어깨를 견줄 정도의 '대단한 나라'로 변모했다. 이렇게 초고속 발전을 기록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손꼽을 만큼 많지 않다. 과거 우리는 물질적으로 빈곤해도 꿈과 희망을 먹고 자랐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겐 도전할 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꿈이 사라지고 분노의 병을 앓는 사회는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다. 역사는 항상 꿈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필자는 수십년간 외신에서 기자생활을 하면서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생각을 엿볼 기회가 많았다. 그들에게 한국은 동족상잔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사는 분단국으로 다가온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이 대립하는 냉전의 현장이다. 이젠 남한의 GDP는 북한의 50배가 넘고, 무역액은 북한의 400배를 넘어섰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핵보유국 운운하며 주변국을 위협하고 있지만, 남북 간의 체제경쟁은 이미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우린 한반도 절반의 영토 내에서나마 인류의 보편적 최대가치인 자유를 지켜냈다. 그 자유라는 가치의 반석 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꽃을 피워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은 서구식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자유, 정의, 개인적 권리와 다원주의로 빠르게 이동했다. 한국에 일하러 온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어는 "빨리빨리"라는 말이 있다. 한국인들의 급한 성미를 상징하는 단어로, 과거 삐삐(bleeper) 시절에는 '8282'로 사람을 호출하기도 했다. 빨리빨리 문화는 좋든 싫든 우리 경제가 1970~8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바탕이라 말할 수도 있다. 삼성, 현대, LG 등 재벌들은 ‘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1970년대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시절 대학을 졸업하고 1980년대 초 직장생활을 시작한 필자는 압축 고성장의 혜택을 한몸으로 받은 세대이다.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 투쟁으로 캠퍼스마다 최루가스와 화염병으로 얼룩졌지만, 급속한 산업화 물결을 타고 일자리도 많았고 한번 직장에 들어가 큰 과오가 없다면 정년까지 일을 했다. 결혼하고 아이 두세명 낳아 4~5인 가족을 꾸미고 살았다. 둘만 낳으면 서로 경쟁하고 다투니 셋은 낳아야 애들끼리 서로 우애가 좋다는 선배들의 충고도 생각이 난다. 웬만하면 4~5년 전세 살다가 조그만 집 한채 마련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청년의 절망과 분노 

지금은 어떤가? 청년세대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출산율은 2019년 0.9명에 불과하다. 자녀들이 30대 중반을 넘기고 40이 코앞인데 결혼은 생각도 안 해 애태우는 선배나 친구들도 내 주변에 상당하다. 서울 집값은 폭등해 10년간 월급을 꼬박 모아도 청년들이 부모님 도움 없이 20, 30평 아파트 한채 마련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른바 3포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니 5포세대(집·경력까지 포기)니 하는 유행어가 우리 귀엔 익숙해지고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In the souls of the people the grapes of wrath are filling and growing heavy, growing heavy for the vintage)." 지금의 상황은 1930년대 말 미국 대공황을 배경으로 한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에 나오는 명 구절을 떠오르게 만든다. 외환위기니 금융위기니, 대규모 경제 위기를 겪을 때마다 돈 많은 자본가의 자산은 크게 늘어나고 노동자 등 취약계층은 일자리가 사라져 더욱 코너에 몰리게 된다. 어느 시대에서나 사회안정의 최대 적은 경제 양극화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경제의 허리인 중산층이 튼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청년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얻어 꼬박꼬박 자산을 축적하고 결혼과 주택 마련, 자녀 계획이 선순환적으로 이뤄지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정치권은 청년들의 절박한 상황은 외면한 채 이전투구식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도전할 도전이 사라진 나라, 열심히 해도 희망이 안 보이는 나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 의해 사회의 계급이 결정되는 금수저와 흙수저의 사회, 공무원 시험에 집착하는 사회. 모두 이 시대 수많은 청년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한국 청년들의 공무원 시험 열풍을 보고 "활력을 잃고 몰락하는 사회의 전형"이라고 탄식했다. 우리에겐 너무도 뼈아픈 지적이다. 현실적으로 코로나19 이후 전통적인 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답은 디지털경제 혁신기업에서 찾아야 한다. 디지털경제 시대에는 자본보다 기술과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청년들이 벤처 정신으로 스타트업 창업에 너도나도 도전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정치권과 기업 그리고 기성세대 모두의 무거운 책임이다. 혁신기업 육성은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다. 또 청년들을 위한 최고의 일자리 대책이라 할 수 있다.  

정치의 실패와 분노 

지금의 20~30대 밀레니얼 세대가 2050년경 지나온 30년의 대한민국을 반추한다면 어떨까? 그때쯤 인공지능 비서, 자율주행 자동차, 블록체인 가상화폐 등 달라진 인간의 일상은 지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코로나 사태를 4차 산업혁명을 앞당기는 기폭제로 보고 있다. 미래의 변화에 대한 철저한 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자랑스럽게도 한국은 지난 수십년간 IT 강국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인터넷 보급률도 높지만 한국인의 뛰어난 재능과 근면성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자. 정부의 지나친 규제로 4차산업의 기본이 되는 데이터의 수집·가공·활용마저 쉽지 않다. 52시간 근로제는 인재 육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에 익숙한 개발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4차 산업혁명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수준은 후진국 수준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미래의 우리 정치권을 상상해 보자. 국회의원들은 당리당략에 매몰된 소모전에서 벗어나 국가와 국민을 위해 선도적으로 정책을 개발하고 진정한 협치의 정치를 하고 있을까? 아니면 지금처럼 만나면 눈을 부릅뜨고 으르렁대며 여전히 '삼류'라는 딱지를 달고 있을까? 머지않은 장래에 급속한 기술발전과 함께 블록체인을 활용한 전자투표가 실시되면서 각종 선거 방식도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들의 자질과 책임의식이 디지털혁명시대 우리 사회의 발전 속도와 국민의 기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만큼 대한민국의 선진화의 길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국제정치학적으로 열강들의 틈에 끼인 한반도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누구도 쉽지 않다.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되면서 한국은 안보적 측면에서 전략적인 선택을 강요당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 2050년은 한국전쟁 발발 100년이 되는 해인데, 그땐 한반도에서 평화적 통일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통일까지는 몰라도 한반도에 전쟁이 다시 발발하지 않고 평화가 유지되려면 우리의 외교력 강화가 필수이다. 중견국가인 우리 대한민국은 동아시아 역내 이해관계국들과 연대해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실리외교를 펼쳐야 한다. 즉, 다른 중견국·중간국들과 공조해 국제사회의 진영화를 거부하고 다자주의와 국제규범 원칙에 따른 공존·공영의 국제질서를 제시해야 한다. K-팝 열풍과 코로나19에 대한 성공적인 방역으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크게 올라갔다. 문화·예술, 의료·건강 등 우리가 우수한 부문에서 본격적인 중견국(middle power) 외교를 펼치며 국제사회와 국익에 기여할 때이다. 주변국에 대한 끈질긴 설득과 인내심. 우리 외교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한 최대 무기이다. 

톨러런스(tolerance) 인내에 미래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초고속 발전 사례는 국제사회의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젠 스피드보다 질(質)이 우선이다.  '빨리빨리'라는 스피드 문화는 디지털혁명시대 속도전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 자칫 '조급증' 또는 '대충주의'에 빠져 선진경제 도약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혁신과 창의력이 후퇴할 수 있다. 조급증과 강박증은 우리 사회에 수많은 역기능을 초래하기도 한다. 정부가 최근 집값 잡겠다고 황급하게 내놓은 대책들의 결과를 보라. 국민들의 혼란과 분노만 커지고 있다. 우리는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난 지 오래됐다. 하지만 물질만능과 인간경시 풍조가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을 흔들면서, 심각한 사회갈등과 집단적 이기주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민족 특유의 공동체의식과 배려의 문화는 갈수록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선진 민주화 국가 건설을 위한 협치는 보이지 않는다. 협치는 상호존중과 자제력(인내심·tolerance)에서 시작된다.   

최근 필자는 40년 가까이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을 예리하게 관찰해온 마이클 브린 전 서울외신기자클럽회장을 만났다. 그는 국가를 평가하는 기준에 경제적인 성과뿐 아니라 민주주의·법치주의·인권존중이라는 정치적인 성과도 포함시켜여 한다며, 한국은 이미 '선진국(advanced country)'이라고 불릴 만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한 단계 더 점프하려면 세 가지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첫째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과제이지만 재벌기업 중심의 경제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사법제도도 마찬가지로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손질이 필요하고, 교육제도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니즈(needs)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치권력(political power)이 정의(justice) 위에 자리하는 것은 과거 독재정권 시대 모습에서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필자에게 가장 잊혀지지 않은 부분은 한국인과 일본인들에 대한 브린의 생각이다. 그는 두 민족이 유사점이 많지만 하나의 큰 차이점이라면, 한국인은 참을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서 몇년째 벌어지는 평화의 소녀상 시위를 두고 일본 정부가 인내하는 모습은 놀랍다고 했다. 중국 대사관 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중국 정부는 삼성과 LG 제품 수입을 막겠다고 협박해 일주일 안에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라고 했다. 분노가 없는 삶(세상)은 현실적으로는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理想鄕)일 것이다. 하지만 분노 조절 능력이 상실된 '악성 위험사회'는 피해야 한다. 그래야 우린 진정 선도국으로 가까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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