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현산이 장고에 빠진 동안 부실한 체력에 코로나19 사태가 겹친 아시아나항공에 연쇄적으로 악재가 터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현산의 장고가 아시아나항공 인수 철회를 위해 명분을 쌓으려는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의 대주주인 금호산업은 현산 측에 M&A 관련 계약서에 명시된 주요 선행조건이 마무리된 만큼 계약을 종결하자는 취지의 공문을 지난 14일 발송했다.
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우리나라를 시작으로 미국과 중국, 터키, 카자흐스탄, 러시아에서 기업결합승인 절차를 밟아왔다. 이 절차가 지난 2일 러시아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된 만큼 이제 M&A 절차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 금호산업의 입장이다.
문제는 현산이 장고를 거듭하는 동안 계속해서 악재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30일 산은 등 채권단을 대상으로 3000억원 규모의 영구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로 발생한 완전자본잠식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자본잠식률은 81.2%로 완전자본잠식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대주주가 될 현산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조치다. 향후 CB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채권단이 보유할 지분이 더 확대되는 탓이다. 현재 채권단이 매입한 아시아나항공 영구 CB는 총 8000억원 규모로 적지 않다. 전량 주식으로 전환된다면 기존 주주들에게 상당한 수준의 지분율 희석 효과가 발생한다.
실제 현산은 지난달 초 보도자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이 영구 CB 발행 등을 사전 동의 없이 진행하고 있다"고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영구 CB 발행이 인수 철회 혹은 인수가 하향 조정의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시장에서도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이 간접적으로 확인됐다. 현산은 이달 6일 아시아나항공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했으나, 모집금액의 4%에 불과한 110억원만 매각되는 데 그쳤다.
수요예측 이전에도 회사채 시장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지만, 사실상 전량 미매각과 다름없는 결과가 나온 것은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생각보다 더욱 부정적이라는 사실만 확인된 셈이다. 현산 입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철회에 대한 명분을 하나 더 얻은 것이다.
악재 속 장고만 지속되면서 시장은 물론 산은 등 채권단에서도 현산만 믿고 있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수가 조정을 포함해 원하는 조건을 제시하라는 채권단의 요청에도 침묵만을 고집하고 있는 탓이다.
시장에서는 현산이 이미 인수 철회로 의견을 굳히고 적당한 시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까지 나오고 있다. 현산이 정부와 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는 인수 철회를 적절한 시점에서 단행하기 위해 장고라는 명목으로 명분을 쌓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은 내부에서도 현산만 믿고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안다"며 "플랜 B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