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 칼럼] 실패한 부동산 정책과 성공한 국토부 장관

2020-07-0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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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거가 무엇인데 성공적이란 말인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둘러싼 하마평이 무성하다. 정치권발(發)로 그가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임으로 사실상 내정됐다는 얘기가 돌더니, 이내 교육부총리 자리로 간다는 설이 나돈다. 김 장관은 취임 후 지난 3년간 12·16과 6·17 대책을 포함해 총 21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합리적 정부라면 장관 이후 그의 거취는 이 대책들의 성패에 따라 결정되는 게 맞는다. 6·17 대책 이후 적어도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김 장관의 거취에 대한 시나리오만 보면, 청와대는 부동산 정책의 성패에 대한 판단을 이미 내린 듯하다.

김현미 장관 본인은 이와 관련, “지금까지의 부동산 정책이 종합적으로 다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다. 그는 앞선 대책들이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관련 세법이 통과되지 않아서”라고 했다. 21번의 대책이란 숫자에 대해서는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다”면서도 “언론이 이것저것 갖다 붙인 것이고, 이번이 네번째 대책”이라고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네번의 대책이건 21번의 대책이건 지난 3년간 국토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해 스스로 ‘성공적’이란 평가를 내린 것이다.

정책은 여러 경로를 거쳐 목적지로 간다. 따라서 어느 한 경유지에서의 방향은 목적지와 다를 수 있다. 때로는 방향이 정반대일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21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며 일관되게 정책목표로 내세운 건 ‘서민주거안정’이다. 문제는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상승하는 지금의 부동산 시장 상황이 서민주거안정이란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경유지란 최소한의 증거조차 없다는 점이다. 혹여 현 정권의 어느 시점에 혹은 차기 정권의 어떤 시점에 부동산 시장이 안정된다고 해도, 그것이 지난 3년간 쏟아져 나온 부동산 대책들의 효과가 뒤늦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한 건, 현재의 시장상황은 김 장관이 내세운 정책 목표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세시장 불안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전세시장은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서민주거안정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2일 한국감정원 시황에 따르면 지난 6월 29일 기준 아파트 전세가격은 한 주간 0.12% 올랐다. 6·17 대책 발표 직후인 전주(22일 기준, 0.14%)보다는 상승폭이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큰 폭의 상승률이다. 특히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재건축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서울 전셋값 상승폭(0.10%)은 전주(0.08%)보다 커졌다. 

감정원이 전날 발표한 ‘6월 전국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25개구 가운데 6월 한달 전셋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다. 송파구가 0.43%로 가장 많이 올랐고, 서초구와 강남구가 각각 0.28%, 0.22% 올랐다.

개별 아파트로 보면 수억원씩 전셋값이 뛰었다.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은 지난달 29일 134.9㎡(이하 전용면적 기준)가 21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한달 전 직전 거래보다 2억7000만원이 올랐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84.98㎡도 지난달 23일 15억원에 거래돼 한달 전보다 3억원이나 뛰었다. 진원지인 강남을 잡아 매매·전셋값을 안정시키겠다는 목표와는 반대의 결과다. 

'취임 전 부동산 가격 수준으로 낮추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과 비교해도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 시리즈는 성공했다고 자평하기 어렵다. 현 정부 출범 후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6억원에서 9억2000만원으로 53%가 올랐다. 29%가 오른 박근혜 정부와 비교하면 두 배 가까운 상승률이다.

숫자는 팩트다. 지난 21번의 부동산 정책은 일단 실패다. 그런데도 김 장관 본인은 물론, 청와대까지 부동산 정책이 성공적이라고 하는 건 정책 목표가 겉으로 내세운 것과 다르다는 것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감정원은 6월 집값 상승폭이 커진 데 대해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유동성이 풍부한 가운데 호재가 있는 곳의 집값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1130조원에 달하는 시중 부동자금이 호재를 따라다니며 풍선을 부풀리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자금이 눈덩이처럼 커진 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의 부양정책 설계의 결과다. 6·17 대책에 기재부의 손길이 어느 때보다 많이 간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000조원이 넘는 부동자금과 부동산 시장의 연관성을 홍남기 부총리와 김현미 장관이 모를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수요를 억눌러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면, 경제를 모르는 부총리와 부동산 시장에 문외한인 장관이 머리를 맞댔다는 얘기인데, 그럴리가 없을 것이다. 

2020년을 사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사실 강남 아파트는 금리와 가격 등 계량적 요인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다차원 함수다. 현 시대 중산층이 갖고 있는 다중적인 욕망의 총체다. 

최근 강남 재건축 시공권을 따낸 10대 건설사의 한 대표(CEO)는 "선호도 1위의 아파트 브랜드를 갖고도 강남 랜드마크가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고 했다. 강남 재건축 단지 입성이 대기업 CEO의 숙원사업이었다는 것이다. 

아웃도어 전문채널 디스커버리와 최근 캠핑 리조트 관련 아시아 독점 판권 계약을 맺은 한 분양대행·시행사 대표는 "강남 재건축 단지 시공 입찰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대형 건설사들은 차별화된 커뮤니티 시설을 만들기 위해 단지 내 글램핑 시설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현대건설이 고급 브랜드 '디에이치'에만 이를 도입하기로 했다. 

얼마전까지 헬스클럽과 수영장도 낯설었던 아파트 단지에서 앞으로는 어디에서 사느냐에 따라 아웃도어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차별화된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고, 거기에 더 많은 돈을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게 강남 아파트 수요에 대한 본질이다. 그로 인해 다양한 아이디어가 시험되고 실현된다. 단지 내 캠핑장처럼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부대 사업들도 많다. 강남 아파트가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지위를 보여주는 척도란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 같은 현실적 욕망이 정부가 나서서 해체해야 할 대상인가. 거의 한달에 한번꼴로 대책을 쏟아내며 행정력을 총동원해 거세해야 할 죄악인가. 

자본주의가 번성한 건 이 같은 욕망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애덤 스미스가 인간의 이기심에서 악이란 굴레를 벗겨낸 후다. 악이 아닌 욕망은 해체가 아니라 충족의 대상이고, 그것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수요는 공급으로 해결하는 게 시장원리다. 

그 대형 건설사의 CEO는 "부자들에게 비싼 집을 팔아 세금을 걷고, 그 세금으로 근교에 공공주택을 짓고 인프라를 건설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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