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혹은 번식행동에 관한 ♂♀ 차이

2020-06-0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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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심한 상대에 칼부림을 한 남자, 양파를 보낸 여자

왜 남자는 이렇게 극단적인가?

[최준석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최준석, 과학의 시선]


남자는 칼부림을 했고, 여자는 양파를 보냈다. 한국과 중국에서 지난 5월 20일 전후로 일어난 두 개의 눈에 띄는 ‘성(性)행동’이다. 두 사람 모두 젊은 연령이고 상대의 변심에 상처를 받았다. 남녀가 보인 반응은 달랐다. 남자는 여친을 흉기로 찔러 죽였다. 그는 휴가를 나온 22살의 한국 군인이다. 그는 경기도 안성에서 연인관계인 여성의 오피스텔로 찾아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양파 1t을 트럭에 실어 변심한 남자에게 보낸 사람은 중국 여성이다. 중국 산둥성(山東) 쯔보(淄博)시에 사는 조모씨는 중국의 밸런타인데이에 해당하는 5월 20일이 다가오자 헤어진 남자친구 집으로 양파 한 트럭을 보냈다. 그는 사귀어온 남자가 갑자기 헤어지자고 통보해왔다며, 양파와 함께 남자에게 보낸 쪽지에 "너와 헤어지고 3일을 내내 울었다. 너도 나만큼 울어봐"라고 썼다.

변심에 대한 남자와 여자의 반응은 왜 이렇게 다를까? 여자는 남자에게 ‘너도 울어봐라’며 상상력을 발휘한 제한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그건 사람들의 감탄을 불러오는 반전의 결과를 낳았다. 반면 남자 군인은 자신 인생을 망가뜨리는 결정적인 잘못을 저질렀고, 사람들은 그 흉포함에 혀를 찼다. 남자는 왜 여자를 그냥 보내주지 못했나? ‘그래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가라, 우리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 나도 나의 길을 가마’라며 쿨 하게 떠나보내지 못했을까?

인간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사회과학자에게 귀를 기울여왔다. 그건 20세기 얘기다. 21세기에는 생물학자와 신경과학자의 설명이 흥미롭다. 그들은 진화라는 시선을 갖고 혹은 뇌를 주목함으로써 인간의 행동에 대해 말한다. 예컨대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다고 한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설명할 때 유전적 역할의 가능성은 충격적일 만큼 강력하다”(미국 하버드 대학 언어심리학자-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책 <빈 서판>) “유전자가 우리 몸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만 유전자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행동을 관장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생각은, 발생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생각만큼이나 이상할 게 없다.”(영국 과학작가 매트 리들리의 책 <게놈>).

진화학자들에 따르면, 인간(동물) 행동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자기 보존과 후손 번식이다. 자기 보존을 위한 행동은 비교적 알아보기 쉽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는 거니까. 번식 행동에 관해서는 사람들이 의외로 무지하다. 자신의 특정 행동이 성 행동인지 아닌지를 지각하지 못하며, 본능에만 마음과 몸을 맡기고 있다. 성 행동 과정을 의식하면 내가 왜 특정 행동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걸 알면 애인을 죽이는 극단적인 행동을 피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격랑 치던 성의 시대를 뒤로 했다. 몸과 마음이 비교적 평화로워졌다. 내 젊은 날의 초상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나와 아내는 집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숲에서는 길 고양이 두 마리가 짝짓기 계절을 맞아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암고양이는 발정기를 맞았고, 번식으로 이어지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걸 물끄러미 내려다보았고,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그게 뭐라고.” 그건 참으로 복잡한 감정과 과거사에 기반한 말이었다. 고양이 암수의 행동을 보면서 우리는 부부 개인사를 되돌아보았고, 그게 우리에게 준 단맛과 신맛을 동시에 떠올렸다. 그리고 또 아이들이 생각났다. 다음 세대 역시 그 사랑의 역사를 되풀이 할 것이니까. 그들 역시 성이라는 거센 파도를 똑같이 헤엄쳐야 할텐데. 인간의 조건이란 이런 것인가?

우리 부부만 그런가. 그렇지 않다. <위험사회>라는 책 저자로 유명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 부부가 하는 말을 들어 본다 울리히 벡과 부인인 엘리자베트(언론인)는 결혼한 지 26년 6개월이 되었을 때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이라는 책을 썼다. 이 부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정이 재미와 즐거움만이 넘쳐나는 장소라고 보지 않는다. 결혼과 가족 생활은 삶의 오물통과 마주하기에 훌륭한 장소다. 그래서 나는 결혼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결혼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다. 당사자가 모르는 다른 목표가 숨어 있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때문에 결혼식이 줄었으나, ‘5월의 신부‘와 그의 배우자는 행복을 위해 결혼한다고 여전히 착각하고 있다.

혼인 맹세로 이어지는 이 모든 드라마의 뒤에 유전자가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유전자가 내 행동의 배후에 있다는 걸 진화생물학자 책을 읽고 깨달았다. 순간, 나는 내 지난 행동의 실체를 보았다. 결혼을 한 건 성적행동이었고, 내 존재의 이유였다. 즉 내 몸은 유전자가 조립한 도구이고, 조립 목적은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성공적으로 카피하는 것이었다. 즉 나는 복사기다. 인간 복사기다. 그 깨달음의 순간 일부 낭패감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 행동의 기원을 확인했기에 속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복사기는 인간의 조건이고 운명이다. 남녀를 사랑에 빠지게 하는 과정, 정신을 못차리게 하는 그 열정은 ‘복사’를 위한 화학적 과정이다. 그 화학적 과정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작가들에 의해 미화되고, 찬미되었다. 수많은 작품들이 쓰였고, 영화가 만들어졌다. ‘로미오와 줄리엣’ ‘오셀로’, ‘젊은 베르터의 죽음’을 보고 감동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게 아니다. 정신 차리기 위해 신경과학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미국 에모리대학의 행동신경과학자 래리 영은 “자유의지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고 선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인간이 신경화학물질에 크나큰 영향을 받고, 인간의 사랑은 신경화학물질들이 뇌 속에 설계된 회로에 작용한 결과다“(책 <끌림의 과학>에서)라고 말한다. 신경과학자 중에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욕구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우리 부부도 30년이 넘는 결혼 생활을 하며 무던히 다퉜다. 생물학자의 말을 들어보면 이는 당연하다. “짝 결합에는 이성간 협력만큼이나 갈등이 만연한다. 많은 종에서 짝 결합은 마지못해서 맺는 휴전과 유사하다”(영국 체스터대학 동물행동학자 존 카트라이트의 <진화와 인간 행동>). 이 말을 일상어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결혼을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

짝짓기를 둘러싸고 수많은 갈등 요인이 있다. 사랑은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다고 결혼식장에 선 주례는 말한다. 그리고 신랑 신부의 다짐을 받는다. 글쎄, 그럴 수 있을까?

신랑과 신부, 즉 남녀의 이해가 다르다. 짝을 이루는 남녀의 갈등을 알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라는 두 성은 왜 존재하는가부터 봐야 한다. 생물학자는 ‘동물은 왜 짝짓기를 하는가’라는 주제부터 생각했다. 암컷이 혼자서 자신을 복사해서 후손을 만들면 되는데 왜 수컷이란 존재를 발명했느냐는 문제의식이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생물학자는 오래도록 갑론을박 했다. 소위 ‘단성생식’은 간단하고 편한 반면, ‘유성생식’은 짝짓기를 하기 위해 치르는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짝을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쓰는지를 생각하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그 다음은 남녀의 성 행동 차이는 왜 발생하는가 하는 문제다. 답이 쉽지 않다. 그건 평생 400개의 난자를 만들어내는 여성과, 초당 3000개의 정자를 만들어내는 남자의 차이에서 온다는 설명이 현재로서는 흥미롭다. 남자가 1회 사정할 때 배출하는 정자 수는 2억8000만개로, 정자를 나눌 수 있다면 한반도와 일본 여성 전체를 임신시키고도 남을 분량이다. 인간 남자는 왜 이렇게 많은 정자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진화생물학자는 이런 부분을 연구하며, 그 답을 찾으려 한다. 자연은 왜 이렇게 많은 수컷을 만들었느냐 하는 의문이다. 암컷을 많이 만들고, 수컷은 적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지 않는가?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 수 차이를 보면 남자는 잘하면 대박이 나고, 여성은 잘해야 똔똔(본전치기)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남성은 가임능력이 무한대급이나, 여성은 가임 능력에서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남성이 낳은 자식은 역사상 888명이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고, 한 여성이 낳은 최대 자식 수는 69명이다. 남자는 17세기 후반기의 모로코 왕으로 ‘피에 굶주린 이스마일’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고, 여자는 18세기 후반을 살았던 러시아 여인이었다.

이같이 남녀 간의 다른 번식 조건은 남녀의 마음도 다르게 만들었다. 남자는 상대적으로 극단적인 성적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고, 여자는 상대적으로 성적으로 보수적인 행동을 하도록 했다. ‘칼’과 ‘양파’로 나타난 남녀의 행동 차이가 바로 이런 데 뿌리를 두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학교는 정작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걸 잘 안 가르치는 걸로 악명 높다. 돈이 그 예다. 경제생활을 합리적으로 하는 게 개체 보존과 번식을 위해 중요하나, 학교는 돈을 벌고 쓰는 법에 관해 가르치지 않는다. 가령 주식투자에 관해 가르치지 않는다. 주식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이용하는 주요 재테크 수단임에도 그렇다. 마찬가지로 한국사회는 성에 대해 충분히 가르치지 않는다. 그 대가는 충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휴가 장병의 애인 상대 칼부림과 같은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방부는 장병 상대 성교육의 질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남녀는 자신과 상대방의 성 행동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감정적인 밀착에 의해 결혼으로 무조건 뛰어들면 훗날 값비싼 비용을 지불한다.

인간은 우리의 존재 조건을 시간이 갈수록 잘 이해하고 있다. 사랑에 빠진 남녀의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많이 알아냈다. 물론 치명적인 사랑인 경우, 뇌에서 그 부분을 지워 사랑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신경과학이 발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날도 오지 않을까 싶다. 그때까지는 인간이 처해있는 존재의 조건을 직시하고, 그 이해의 바탕에서 뚜벅뚜벅 걸어가면 된다. 특히 남자는 칼부림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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