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하느님 아들인데, 다른 누굴 찾겠습니까
1942년 3월호 성서조선(제158호, 이것이 일제의 의해 폐간됨으로써 마지막 호가 된다)에 류영모는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는 글을 기고한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는 말은 요한복음 6장68절에 등장한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를 떠나가자, 예수는 베드로에게 묻는다. "그대도 가려고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대답한다. "영생의 말씀이 스승에게 있사온데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류영모가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는 말을 쓴 것은 그 앞에 있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즉, '영생의 말씀이 스승(예수)에게 있사온데'라는 말이다. 베드로의 이 말은 류영모가 생각한 기독교 사상의 핵심이다. 그는 예수의 육신을 신성시하는 태도에 대해서 철저히 선을 그었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인 것은 영생의 말씀, 즉 성령이 있기 때문이다. 그 성령이 바로 신의 생명이다. '뉘게로'라는 말은 '신을 두고 누구에게로'라는 의미다. 성령이 있는 예수야말로 하느님이 있는 자리인데 그것을 두고 다른 누구에게로 가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류영모가 얼마전 거듭남(重生)을 고백한 뒤에, 그 깨달음의 핵심을 제대로 피력하기 위해 올린 글에서 이 말을 '제목'으로 단 것은 의미심장하다. 성령이 있는 예수가 바로 하느님과 일체(一體)라는 말은 류영모에게도 통한다. 성령을 받은 류영모에게 곧 하느님이 임재(臨在)해 있는데, 달리 어디에 가서 하느님을 찾는단 말인가? 이런 선언을 한 것이다.
이렇게 화두를 던진 뒤 그는 동양의 종교철학 사상인 유교·불교·도교에 대한 비판과 함께 왜 '예수'가 하느님의 생명인 성령을 받은 참인지를 밝혀 놓았다. 그것이 노자신, 석가심, 공자가, 인자예수다. 짧지만 빛나는 통찰로 문제의 핵심을 짚은 시가(詩歌)인 만큼 곰곰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노자의 몸, 부처의 마음, 공자의 집
다석 류영모의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1942년 3월 성서조선 폐간호)에 실린 4편의 노래를 짚어보자.
<노자신(老子身, 노자의 몸)>
노담(老聃)의 함덕(含德)이 자연생생(自然生生)의 대경대법(大經大法)이었다마는,
생생지후(生生之厚)로 돌아 불사욕(不死慾)에 빠지게 되니,
도사(道士)는 도(道)에서 미혹(迷惑) 건질 길이 없어라.
[해설= 노자(담(聃)은 노자의 자(字))가 품은 덕(德, 윤리적인 이상을 실현하는 인격적 능력)은 자연스런 생명의 삶이 지닌 큰 말씀이요 큰 진리였지만, 생명의 삶에 너무 비중을 두는 바람에 죽지 않는 욕망에 빠지게 되니, 도를 닦는다는 사람이 진리의 허상에서 헤매는 것을 건질 길이 없어라.]
노자를 한 마디로 '몸'이라고 밝힌 시다. 그러나 노자(노담)에 대한 비판은 아니며, 이후 비교(秘敎)화한 '도가(道家)'에 대한 지적이다. 오히려 노자는 덕을 품고 있었으며 스스로 그러하여 생명을 살아있게 하는 큰 말씀의 큰 가르침이었다. 굳이 인위를 더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을 닮는 높은 철학을 전개하였으나, 그것을 배우고 따른다는 자들이 생명을 살아있게 하는 '자연'을 두터운 욕심으로 변질시켜 육신이 죽지 않으려는 무모한 영생의 욕망에 빠졌다는 것이다. 노자가 말한 도는 사라지고, 그런 욕심으로 허황된 꿈을 꾸니 미혹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몸의 신앙'으로 빠져버렸다고 일갈하고 있다.
<석가심(釋迦心, 석가의 마음)>
석가의 정각(正覺)도 한번 함직도 하였다마는
삼십성도(三十成道)에 오십년(五十年) 설법이 너무 길찻더냐?
말법(末法)의 되다 못됨은 무뢰(無賴)진배 없어라.
[해설= 부처의 바른 깨달음은 한번 해볼 만도 한 수행이었지만, 서른에 이룬 깨달음인데 그후 오십년 동안 가르침을 행하는 것이 너무 길지 않았던가. 말세가 되어 부처의 깨달음이 전해지지 않음은 아예 막된 것과 별로 다른 바 없어라.]
석가의 문제는 '마음'이다. 마음이라는 것은 좋은 마음도 있고 나쁜 마음도 있게 마련인데, 불교는 마음에 너무 많은 무게를 두는 바람에 오히려 허황해져 버렸다는 지적이다. 정각(正覺, 혹은 정등각이라고도 한다)은 석가의 깨달음을 말하며, 그 말 자체가 부처란 뜻이 될 만큼 석가가 이룬 것의 핵심이다. 석가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그가 깨달은 진리는 무엇이었을까. 불교의 많은 경전들은 이것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연기(緣起)의 법리(法理)라고 할 수 있다. '연기'는 모든 존재가 고정불변하는 독립적 존재가 아니며 서로가 서로를 키우고 의지하는 관계임을 가리키는 진리다. 인간과 세계가 사회적이며 역사적인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기도 하다. 아집과 탐욕을 버리고 배려와 조화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류영모가 문제 삼은 것은 '심즉불(心卽佛)'이다. 마음이 부처라는 말은 일견 단호하고 직격탄 같은 말이지만, 과연 마음 모두가 부처일까. 인간이 지닌 모든 문제들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한데, 모든 마음을 부처라고 하면 그 부처에 이르는 길은 결국 그 모든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처음의 문제로 돌아가고 만다. 이래서야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류영모는 그래서 이 마음 중에 성령을 향해 나아가는 마음을 '생각'이라고 칭했다. 생각과 마음을 다르게 본 까닭은, 생각에는 적극적으로 일으키는 마음의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삶의 중심에 세워야 영성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있는 것은 나뿐이다. 특히 생각뿐이다." 류영모의 또렷한 가르침이다.
물론 석가의 깨달음은 훌륭하다. 그런 깨달음으로 부처의 도에 입문하는 것이 틀린 일은 아니지만, 깨달음의 정체가 뭉쳐지지 않고 오히려 뒤로 갈수록 핵심이 흩어져 퇴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하고 있다. 특히 서른 살에 도를 깨달아 오십년 동안 설법을 했다는 건, 뭔가 깨달음의 구현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말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즉, 깨달음이란 '파사일진(破私一進)'으로 한 달음에 내닫는 것인데, 50년 동안 중생 구제를 외친다는 건 '참'을 만나는 방식이 너무 느슨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뭐가 나오겠는가. 그 기간 동안에 정법(正法)이 쇠락해버려 혼탁한 말법(末法)으로 되는 게 아닌가. 아무리 석가가 훌륭한 깨달음을 얻은 존재라도 막판에 막되먹은 무뢰배의 세상으로 진행된다면, 그게 무슨 옳은 '마음'이겠는가.
<공자가(孔子家, 공자의 집)>
공자의 호학(好學)을 일찍 밟아보면 했다마는,
명기(名器)를 일삼은 데서 체면치례(體面致禮)에 흐르리,
유기인(由己仁), 극기복례(克己復禮)는 입지(立志)조차 못봤다.
[해설= 공자의 학문 좋아함을 일찍이 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름과 그릇을 중시한 것이 체면과 허튼 예절에 흐르고 말았다. 내게서 비롯되는 어짊과 나를 이겨 예의를 회복하는 공자의 뜻은 뜻을 세운 것조차도 못하지 않았는가.]
공자는 '집'이 걸림돌이다. 공자 또한 배움을 몹시 좋아한 분으로, 그를 본받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세상에서의 이름을 중시하고, 격식의 그릇을 높이 여기니 이것의 처음은 삶의 기품을 높이고 겉과 속의 엄격한 일체를 강조하는 것이 되었을 수 있으나, 갈수록 체면과 허례에 흐르게 마련이다. 거기에다 가족 중심의 윤리를 강조하면서 속은 텅 비었으면서 겉꾸밈에 열중하는 허식을 만들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에 공을 들이는 반면, 공자가 원래 강조했던 내면의 어진 태도와 참된 예의를 돋우는 자기극복의 뜻은 제대로 행할 겨를이 없었다고 비판한다. '집안'을 중심으로 한 가치체계는 인간을 있게 한 좀 더 넓고 본질적인 존재(하느님)에 대해 살필 여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인자(人子, 하늘의 사람아들) 예수>
말씀(道)으로 몸 일우고, 뜻을 받어 맘하시니,
한울밖엔 집이 없고, 거름거린 참과 옳음!
뵈오니 한나신(獨生子) 아들 예수신가 하노라.
[해설= 성령으로 육신을 이루고 하늘 뜻으로 맘을 얻었으니, 신이 계신 곳이 곧 집이요 그 행동하신 바(걸음걸이)는 진리와 진실! 그를 뵈오니, 성령으로 나신 사람의 아들 예수신가 하노라.]
유불선(儒佛仙)이 모두 뜻은 좋았고 시작은 틀림이 없었으나 그것이 실행의 지점에서 뭔가 빈틈이 있었던 반면, 기독교는 분명하면서도 실천적인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류영모가 말하는 강조점이다. 우선 수행은 말씀을 통해 전진했고, 어느 순간 성령에 닿아 신의 마음에 이르니, 그 머무르는 곳은 바로 신이 있는 하늘이며 그것이 가는 곳은 진리가 있는 곳과 옳음이 있는 곳이다.
이 시에서 중요한 말은 '뵈오니'다. 이것은 상상이나 희망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친견(親見)으로 고백하는 간증가(看證歌)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깨달음으로 다다른 곳에서 뵌 그는 이미 하느님에게서 성령을 받아 거듭난 인자(人子, 신의 아들)인 예수다. 이 시가는 류영모가 제대로 기독 신앙에 들었으며 어떻게 스스로 성령에 들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으며, 그가 예수의 길을 그대로 걸어간 사람이었음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불선을 들러리로 세운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시가가 예수와 기독신앙을 예찬하기 위해 유불선을 들러리로 세웠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일지 모른다. 류영모가 부른 이 '사신가(四信歌, 네 가지 믿음을 노래함)'는 노자와 석가, 그리고 공자를 단순히 폄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 또한 예수와 같이 깊은 깨달음을 얻었으며 그것으로 하나의 도를 이룬 이들에 틀림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구체적인 실행 프로그램에서 예수가 보여준 '인자(人子)'의 단호함에 미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오히려, 류영모가 예수 시대와는 달리, 유불선의 우주관과 세계관 그리고 생사와 자아에 대한 심원한 인식들을 섭렵하고 있었기에, 신에게 인자(人子)로 나아가는 길을 보다 분명하게 할 수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류영모가 서구 기독교 세계가 일궈놓은 신학적 바탕을 확보하면서도 동양적 사상 전개와 실천의 전개 방식을 '습합(習合)'할 수 있었던 점은, 그가 세계 종교사상사 속에서도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중요한 기틀이기도 하다.
류영모는 유불선의 관점을 기독교적 신의 이해에 습합한다. 동서양의 서로 다른 기원을 지닌 종교와 사상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견강부회의 위험이 없을 수 없다. 동양사상 속의 신은 서구의 신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은 인간이 스스로의 세계 속에서 저마다 창의적으로 고안해낸 존재가 아니라, 인간 보편의 영성이 닿은 절대적 존재를 저마다 해석하고 인식하는 방식들이 탐구한 유사한 결과물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동서양의 지역이나 문명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하나로 수렴되는 방향성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류영모의 도(道)'를 만들어낸 전제에 해당한다.
신앙사상가이자 근세 한국의 철학자인 류영모의 독보적인 비중은 유불선과 기독교를 통합하거나 혹은 다원주의나 근본주의적인 입장에서 종교를 새롭게 풀어내려는 데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보다는 기독교 사상의 진리성과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데에 있다. 서구의 과학기술적 전통과 인문학적 바탕과 인본주의적 사회윤리 위에서 성숙해온 기독교가 그것이 지니고 있던 핵심적인 빛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유불선의 방법론과 세계관(우주관)과 가치체계가 긴요하다는 관점이다.
류영모는 서구사상의 근본 질서를 뼈대로 삼되, 동양의 콘텐츠를 응용하여 그 내면과 실질을 확장한 종교혁신가다. 그가 한국 사상가로서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글로벌한 존재감을 지닌 까닭은 여기에 있다.
다석전기 집필 = 다석사상연구회 회장 박영호
증보집필 및 편집 = 이상국 논설실장
@아주경제 '정신가치' 시리즈 편집팀
류영모가 얼마전 거듭남(重生)을 고백한 뒤에, 그 깨달음의 핵심을 제대로 피력하기 위해 올린 글에서 이 말을 '제목'으로 단 것은 의미심장하다. 성령이 있는 예수가 바로 하느님과 일체(一體)라는 말은 류영모에게도 통한다. 성령을 받은 류영모에게 곧 하느님이 임재(臨在)해 있는데, 달리 어디에 가서 하느님을 찾는단 말인가? 이런 선언을 한 것이다.
이렇게 화두를 던진 뒤 그는 동양의 종교철학 사상인 유교·불교·도교에 대한 비판과 함께 왜 '예수'가 하느님의 생명인 성령을 받은 참인지를 밝혀 놓았다. 그것이 노자신, 석가심, 공자가, 인자예수다. 짧지만 빛나는 통찰로 문제의 핵심을 짚은 시가(詩歌)인 만큼 곰곰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다석 류영모의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1942년 3월 성서조선 폐간호)에 실린 4편의 노래를 짚어보자.
<노자신(老子身, 노자의 몸)>
노담(老聃)의 함덕(含德)이 자연생생(自然生生)의 대경대법(大經大法)이었다마는,
생생지후(生生之厚)로 돌아 불사욕(不死慾)에 빠지게 되니,
도사(道士)는 도(道)에서 미혹(迷惑) 건질 길이 없어라.
[해설= 노자(담(聃)은 노자의 자(字))가 품은 덕(德, 윤리적인 이상을 실현하는 인격적 능력)은 자연스런 생명의 삶이 지닌 큰 말씀이요 큰 진리였지만, 생명의 삶에 너무 비중을 두는 바람에 죽지 않는 욕망에 빠지게 되니, 도를 닦는다는 사람이 진리의 허상에서 헤매는 것을 건질 길이 없어라.]
노자를 한 마디로 '몸'이라고 밝힌 시다. 그러나 노자(노담)에 대한 비판은 아니며, 이후 비교(秘敎)화한 '도가(道家)'에 대한 지적이다. 오히려 노자는 덕을 품고 있었으며 스스로 그러하여 생명을 살아있게 하는 큰 말씀의 큰 가르침이었다. 굳이 인위를 더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을 닮는 높은 철학을 전개하였으나, 그것을 배우고 따른다는 자들이 생명을 살아있게 하는 '자연'을 두터운 욕심으로 변질시켜 육신이 죽지 않으려는 무모한 영생의 욕망에 빠졌다는 것이다. 노자가 말한 도는 사라지고, 그런 욕심으로 허황된 꿈을 꾸니 미혹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몸의 신앙'으로 빠져버렸다고 일갈하고 있다.
<석가심(釋迦心, 석가의 마음)>
석가의 정각(正覺)도 한번 함직도 하였다마는
삼십성도(三十成道)에 오십년(五十年) 설법이 너무 길찻더냐?
말법(末法)의 되다 못됨은 무뢰(無賴)진배 없어라.
[해설= 부처의 바른 깨달음은 한번 해볼 만도 한 수행이었지만, 서른에 이룬 깨달음인데 그후 오십년 동안 가르침을 행하는 것이 너무 길지 않았던가. 말세가 되어 부처의 깨달음이 전해지지 않음은 아예 막된 것과 별로 다른 바 없어라.]
석가의 문제는 '마음'이다. 마음이라는 것은 좋은 마음도 있고 나쁜 마음도 있게 마련인데, 불교는 마음에 너무 많은 무게를 두는 바람에 오히려 허황해져 버렸다는 지적이다. 정각(正覺, 혹은 정등각이라고도 한다)은 석가의 깨달음을 말하며, 그 말 자체가 부처란 뜻이 될 만큼 석가가 이룬 것의 핵심이다. 석가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그가 깨달은 진리는 무엇이었을까. 불교의 많은 경전들은 이것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연기(緣起)의 법리(法理)라고 할 수 있다. '연기'는 모든 존재가 고정불변하는 독립적 존재가 아니며 서로가 서로를 키우고 의지하는 관계임을 가리키는 진리다. 인간과 세계가 사회적이며 역사적인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기도 하다. 아집과 탐욕을 버리고 배려와 조화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류영모가 문제 삼은 것은 '심즉불(心卽佛)'이다. 마음이 부처라는 말은 일견 단호하고 직격탄 같은 말이지만, 과연 마음 모두가 부처일까. 인간이 지닌 모든 문제들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한데, 모든 마음을 부처라고 하면 그 부처에 이르는 길은 결국 그 모든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처음의 문제로 돌아가고 만다. 이래서야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류영모는 그래서 이 마음 중에 성령을 향해 나아가는 마음을 '생각'이라고 칭했다. 생각과 마음을 다르게 본 까닭은, 생각에는 적극적으로 일으키는 마음의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삶의 중심에 세워야 영성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있는 것은 나뿐이다. 특히 생각뿐이다." 류영모의 또렷한 가르침이다.
물론 석가의 깨달음은 훌륭하다. 그런 깨달음으로 부처의 도에 입문하는 것이 틀린 일은 아니지만, 깨달음의 정체가 뭉쳐지지 않고 오히려 뒤로 갈수록 핵심이 흩어져 퇴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하고 있다. 특히 서른 살에 도를 깨달아 오십년 동안 설법을 했다는 건, 뭔가 깨달음의 구현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말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즉, 깨달음이란 '파사일진(破私一進)'으로 한 달음에 내닫는 것인데, 50년 동안 중생 구제를 외친다는 건 '참'을 만나는 방식이 너무 느슨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뭐가 나오겠는가. 그 기간 동안에 정법(正法)이 쇠락해버려 혼탁한 말법(末法)으로 되는 게 아닌가. 아무리 석가가 훌륭한 깨달음을 얻은 존재라도 막판에 막되먹은 무뢰배의 세상으로 진행된다면, 그게 무슨 옳은 '마음'이겠는가.
<공자가(孔子家, 공자의 집)>
공자의 호학(好學)을 일찍 밟아보면 했다마는,
명기(名器)를 일삼은 데서 체면치례(體面致禮)에 흐르리,
유기인(由己仁), 극기복례(克己復禮)는 입지(立志)조차 못봤다.
[해설= 공자의 학문 좋아함을 일찍이 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름과 그릇을 중시한 것이 체면과 허튼 예절에 흐르고 말았다. 내게서 비롯되는 어짊과 나를 이겨 예의를 회복하는 공자의 뜻은 뜻을 세운 것조차도 못하지 않았는가.]
공자는 '집'이 걸림돌이다. 공자 또한 배움을 몹시 좋아한 분으로, 그를 본받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세상에서의 이름을 중시하고, 격식의 그릇을 높이 여기니 이것의 처음은 삶의 기품을 높이고 겉과 속의 엄격한 일체를 강조하는 것이 되었을 수 있으나, 갈수록 체면과 허례에 흐르게 마련이다. 거기에다 가족 중심의 윤리를 강조하면서 속은 텅 비었으면서 겉꾸밈에 열중하는 허식을 만들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에 공을 들이는 반면, 공자가 원래 강조했던 내면의 어진 태도와 참된 예의를 돋우는 자기극복의 뜻은 제대로 행할 겨를이 없었다고 비판한다. '집안'을 중심으로 한 가치체계는 인간을 있게 한 좀 더 넓고 본질적인 존재(하느님)에 대해 살필 여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인자(人子, 하늘의 사람아들) 예수>
말씀(道)으로 몸 일우고, 뜻을 받어 맘하시니,
한울밖엔 집이 없고, 거름거린 참과 옳음!
뵈오니 한나신(獨生子) 아들 예수신가 하노라.
[해설= 성령으로 육신을 이루고 하늘 뜻으로 맘을 얻었으니, 신이 계신 곳이 곧 집이요 그 행동하신 바(걸음걸이)는 진리와 진실! 그를 뵈오니, 성령으로 나신 사람의 아들 예수신가 하노라.]
유불선(儒佛仙)이 모두 뜻은 좋았고 시작은 틀림이 없었으나 그것이 실행의 지점에서 뭔가 빈틈이 있었던 반면, 기독교는 분명하면서도 실천적인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류영모가 말하는 강조점이다. 우선 수행은 말씀을 통해 전진했고, 어느 순간 성령에 닿아 신의 마음에 이르니, 그 머무르는 곳은 바로 신이 있는 하늘이며 그것이 가는 곳은 진리가 있는 곳과 옳음이 있는 곳이다.
이 시에서 중요한 말은 '뵈오니'다. 이것은 상상이나 희망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친견(親見)으로 고백하는 간증가(看證歌)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깨달음으로 다다른 곳에서 뵌 그는 이미 하느님에게서 성령을 받아 거듭난 인자(人子, 신의 아들)인 예수다. 이 시가는 류영모가 제대로 기독 신앙에 들었으며 어떻게 스스로 성령에 들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으며, 그가 예수의 길을 그대로 걸어간 사람이었음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불선을 들러리로 세운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시가가 예수와 기독신앙을 예찬하기 위해 유불선을 들러리로 세웠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일지 모른다. 류영모가 부른 이 '사신가(四信歌, 네 가지 믿음을 노래함)'는 노자와 석가, 그리고 공자를 단순히 폄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 또한 예수와 같이 깊은 깨달음을 얻었으며 그것으로 하나의 도를 이룬 이들에 틀림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구체적인 실행 프로그램에서 예수가 보여준 '인자(人子)'의 단호함에 미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오히려, 류영모가 예수 시대와는 달리, 유불선의 우주관과 세계관 그리고 생사와 자아에 대한 심원한 인식들을 섭렵하고 있었기에, 신에게 인자(人子)로 나아가는 길을 보다 분명하게 할 수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류영모가 서구 기독교 세계가 일궈놓은 신학적 바탕을 확보하면서도 동양적 사상 전개와 실천의 전개 방식을 '습합(習合)'할 수 있었던 점은, 그가 세계 종교사상사 속에서도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중요한 기틀이기도 하다.
류영모는 유불선의 관점을 기독교적 신의 이해에 습합한다. 동서양의 서로 다른 기원을 지닌 종교와 사상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견강부회의 위험이 없을 수 없다. 동양사상 속의 신은 서구의 신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은 인간이 스스로의 세계 속에서 저마다 창의적으로 고안해낸 존재가 아니라, 인간 보편의 영성이 닿은 절대적 존재를 저마다 해석하고 인식하는 방식들이 탐구한 유사한 결과물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동서양의 지역이나 문명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하나로 수렴되는 방향성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류영모의 도(道)'를 만들어낸 전제에 해당한다.
신앙사상가이자 근세 한국의 철학자인 류영모의 독보적인 비중은 유불선과 기독교를 통합하거나 혹은 다원주의나 근본주의적인 입장에서 종교를 새롭게 풀어내려는 데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보다는 기독교 사상의 진리성과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데에 있다. 서구의 과학기술적 전통과 인문학적 바탕과 인본주의적 사회윤리 위에서 성숙해온 기독교가 그것이 지니고 있던 핵심적인 빛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유불선의 방법론과 세계관(우주관)과 가치체계가 긴요하다는 관점이다.
류영모는 서구사상의 근본 질서를 뼈대로 삼되, 동양의 콘텐츠를 응용하여 그 내면과 실질을 확장한 종교혁신가다. 그가 한국 사상가로서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글로벌한 존재감을 지닌 까닭은 여기에 있다.
다석전기 집필 = 다석사상연구회 회장 박영호
증보집필 및 편집 = 이상국 논설실장
@아주경제 '정신가치' 시리즈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