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44)]죽을 때 너에게 묻노니, 너는 사람이었나

2020-05-1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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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세에 깨달음으로 다시 태어나다

[다석 류영모(오른쪽)와 부인 김효정.]


50대에 '7금 수행'으로 몸나를 꺾다

50대에 든 류영모는 7금(禁)을 행했다. 일일일식으로 입의 탐욕을 금했고, 단색(斷色)으로 육욕을 금했고, 시와(屍臥, 주검처럼 눕기)로 편한 잠을 금했고, 궤좌(무릎꿇기)로 편한 기거를 금했고, 냉욕(冷浴)으로 불결을 금했고, 체조로 기색(氣塞, 기운이 막힘)을 금했으며, 걷기로 편리한 삶을 금했다. 이 7가지의 금지는 모두 '몸나'의 헛된 위세를 꺾어 얼나로 향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몸나를 채찍질한 이런 투철한 실천은 육신의 강건함을 낳는 바탕이 되었다. 역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육신의 특징이기도 하다. 육신에 끌려다니는 삶은 제 스스로 망친 육신 속에서 약해지고 쉽사리 죽음을 맞지만, 육신을 이기는 삶은 오히려 그 몸뚱이를 건강하게 하는 비법이 되는 원리다. 류영모를 따르는 이라면, 가리키는 손가락을 볼 게 아니라 그 손가락이 향한 하늘을 봐야 한다. 7금의 효과에 먼저 눈이 가서 '몸나'만 돋우는 삶에 매몰되는 것은 피상(皮相)만 본 것일 뿐이다.

그 7금의 가차없는 삶으로, 류영모의 정신세계는 어디로 향했는가. 그걸 살피는 것은 그 앞의 모든 실천궁행보다도 더 중요한 메시지다. 7금은 바로 탐(貪)이라고 불리는 식욕과 치(痴)라고 불리는 육욕, 진(瞋)이라고 불리는 으르릉거리는 마음을 버리기 위한 수행이었다. 탐진치를 인간이 지닌 세 가지 독기(三毒)라 일컬은 것은 불교다. 류영모는 이것을 사람이 지닌 짐승 성질이라고 했다. 짐승은 먹고 교접하고 으르렁거린다. 인간도 이 성질에 빠져 있으면 짐승을 벗어나지 못한다. 동물학자들이 동물의 본능을 feeding(貪) , fighting(瞋) , sex(痴)라고 말한 것과 일치한다.

20세기는 탐진치(貪瞋痴)의 재발견 시대

20세기의 사상은 탐진치에 대한 재발견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는 치(육욕)에 대해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로 풀어나갔다. 탐(식욕)과 진(으르릉거림, 분노)에 대해 주목한 사람은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1818~1883)였다. 그는 이 관점을 바탕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재설계하여 중대한 이념을 인류의 뇌리에 심었다.

이들의 사상은 인간의 탐진치가 육신과 의식의 조건이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세워진 것이다. 류영모도 이것을 인정했다. 과연 탐진치가 세 가지 독(毒)인가. 짐승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이 생존과 번식의 기반이 아닌가. 세 가지 독이 아니라 세 가지 미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도 탐진치가 있었기에 100만년을 버텨왔다고 할 수 있다. 그 짐승 성질이 인류 종족을 생존하게 하고 번식하게 했기 때문이다. 탐진치가 인생살이의 살림 밑천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탐진치는 그 기본적인 '기능'에서 제어되어야 하고, 인간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는 무엇인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류영모다. "탐진치가 생존의 기반인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달리 직립할 수 있는 것은 하늘에서 온 까닭이다. 사람은 하느님께서부터 왔기 때문에 언제나 하늘로 머리를 두고 하늘을 사모하며 직립하여 하늘을 그리워한다."(다석어록)

인간은 직립한 지 200만년 뒤에 짐승에서 벗어나는 '영성의 대혁명'을 시작했다. 2500년 전 석가와 노자와 공자와 예수가 등장해서 저마다 거의 같은 목소리로 스스로 내부의 짐승 성질을 벗어나 하늘의 얼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놀라운 메신저들은 짐승 삶에 거의 매몰되어 그것이 인생가치의 전부인 줄로만 알던 인간에게 일생일대의 각성에 닿게 했다. 류영모는 1957년 8월 25일 짐승을 벗는 위대한 길에 관해 단호하고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남겼다. '삼독을 버린 뒤 길을 닦으라(除三毒而後修行, 제삼독이후수행)'란 5언절구의 시행이다.

죽을 무렵엔 사람의 말이 바르게 나온다

一日一試貪(일일일시탐)
一代幾度痴(일대기도치)
眸子滌除瞋(모자척제진)
人生正語時(인생정어시)

하루 한번씩만 탐(貪)을 맛보았는가
삼십년간 몇번 치(痴)를 맛보았는가
눈동자는 부릅뜨는 것을 씻었는가
사람의 삶이 바른 말을 하게 되는 죽음 앞에서

탐(貪)은 식욕이며 식사다. 일일일식으로 상징되는 수행이다. 치(痴)는 육욕이며 아내와의 잠자리다. 금욕을 선언하기 전인 30년간 짐승의 욕망은 어느 정도 부렸던가. 진(瞋)은 눈을 부릅뜨고 성내는 것이며, 모든 탐욕과 공격욕과 파괴욕과 증오와 자기과시와 헛된 자랑들이 다 포함되는 것이다. 그게 눈동자 속에 다 들어앉아 있다. 그러니까 입으로 먹는 것, 성기로 하는 것, 눈으로 내놓는 것, 이것이 탐진치다. 그런데 죽을 때가 되면 말이 정직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쏟아낸 것들을 혀끝으로 고백해보라. 너는 과연 사람이었는가 짐승이었는가. 그걸 묻는 질문이다.

이 시를 곰곰이 읽노라면 가슴이 터질 듯한 부끄러움과 몸 둘 곳을 모를 민망함이 있다. 인간이 얼나를 찾아가는 수행의 '불심검문'을 저 20자 시로 남겨놓은 것이다. 무섭고 아프고 그리고 따뜻하다. 인간의 원죄는 '사과를 탐한 죄'가 말하는 상징을 넘어, 죄를 지을 수 있는 근본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음을 말하는데, 이것을 류영모는 탐진치로 포착하였다. 탐진치가 바로 인간의 원죄이며, 이것을 넘지 않고는 얼나에 닿을 수 없다.

류영모의 탐진치에 대한 자기검열은 이토록 혹독하고 치열했다. 여기에서부터, 참나를 향한 얼의 이륙(離陸)이 시작된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야 한다. 이 비행은 일생일대의 죽음을 뚫는 길이며 제나와 참나 사이의 벽을 뚫고 나아가는 완전한 비행(飛行)이다.

그는 말했다. "어릴 때 노릇은 짐승의 버릇이라고 한다. 사람이 어릴 때 노는 일은 모두 좋은지 나쁜지 분간하지 못한다.이것을 분간하면 어리다고 하지 않는다. 짐승은 먹는 것, 싸우는 것, 새끼 치는 것밖에 모른다. 이승에서 배운, 먹고 싸우고 싸는 못된 짐승 버릇을 끊게 하려고 하면 안 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게 하고 알게 해주면 스스로 자연히 끊게 된다. 자연의 프로그램에는 다 방정식이 있다. 순서가 바뀌어서 모두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사람들이 짐승 노릇 버리도록, 하느님 생각 이루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먼저 삼독을 버리기 위해 제나(自我)가 죽어야 한다. 제나는 제나가 거짓 나인 줄 스스로 알면 저절로 죽는다. 위조지폐가 위조인 것이 폭로되면 값어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거짓 나가 죽으면 참나인 하느님이 오신다. 내 마음속에 오신 하느님이 얼나(靈我)다. 마하트마 간디가 "제나가 죽을 때 얼나가 깬다(When the ego dies, the soul awakes)"는 말(M K 간디의 '날마다의 명상')이 바로 '除三毒而後修行'을 말한 것이다.

1942년 신을 가장 실감한 체험

1942년 1월 4일, 52세가 된 류영모는 얼나를 만났다. 얼나는 신이 보낸 영원한 생명으로 내 속에 있는 하느님이다. 1905년에 15세의 나이로 교회에 입문한 그는 38년 만에 가장 깊이 하느님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참나와 얼나의 개념을 확실하게 구분한 언급은 찾기 어렵지만, 참나는 나의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몸나(육신)와 제나(자아의식)에 가려 닿지 못했던 '하느님의 나'이며, 몸나와 제나가 없음을 깨달으면서 비로소 닿은 진정한 '나'라고 할 수 있다. 얼의 나는 신과 내가 같은 것임을 깨닫는 '나의 하느님'으로 읽힌다. 참나와 얼나는 내가 하느님을 향하는 것과 하느님이 나를 향하는 것의 동질성을 드러내는 깨달음의 '의미구조'라고 할 수 있다.

류영모는 말했다. "나를 보는 이것이 정견(正見, 제대로 보는 것)입니다. 나를 보아야 하고 나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참나를 알게 하기 위하여 예수가 온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얼의 나가 죽지 않는 생명임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는 나의 믿음으로 깨달은 참나이며, 신의 인자(人子)로서 나와 합치된 얼나이다.

만해 한용운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인간의 자유 의지를 폄하하는(신에게 결정적인 의지를 내줌) 생각이라고 비판했지만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사람의 일을 다하는 것은 '참나'이며, 하느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은 '얼나'이다. 진인사와 대천명은 같은 깨달음의 양면(兩面)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진인사와 대천명의 순간에는 부활과 영생의 길이 열린다. 이 거듭남을 다석은 중생(重生)으로 표현했다.

다시 류영모의 말을 들어보자. "하느님께서 저를 38년 전 봄에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날부터 여태까지 병든 믿음으로 온 것이 아닙니까. 올해(1942년) 1월 4일에 제가 마침내 아버지 품에 들어간 것은 37년을 허송한 덕분인가 싶습니다. 죽을 것을 지키고 있다가는 죽어 끊어질 것이요, 뒤에 죽을 몸을 거두어서 앞의 '얼삶(성령의 삶)'에 양식으로 이바지함으로써 얼생명을 여는 몸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오늘도 진리의 성령으로 생명력을 풍성하게 내리십니다."(성서조선 157호 '38년 만에 믿음에 들어감')

 

[다석 류영모]



예수와 석가가 얻은 생명이 내게 나타났다

이 말에는 죽음과 깨달음에 대한 그의 인식이 들어 있다. 수명대로 다 산다는 것은 오히려 깨달음을 얻지 못할 수 있으며(죽을 것을 지키고 있다가는 죽어 끊어질 것), 그렇게 뒤의 수명을 당겨 거두어서 성령의 삶에 먹이로 줌으로써 얼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의 깨달음은 그의 몸생명의 일부를 양식으로 제공했다는 의식이다. 이런 생각은 이후에 죽음의 일시를 정해놓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던 '실천'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머니 배에서 나온 나는 참나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보내시는 얼이 참나입니다. 거짓나가 죽어야 참나가 삽니다. 제나가 완전히 없어져야 참나입니다. 참나는 얼이라 하느님과 하나입니다. 참나와 하느님은 얼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유한과 무한이 이어집니다. 그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진선미한 얼생명입니다. 예수와 석가에게 나타났던 영원한 생명이 내게도 나타났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류영모의 말은 그의 얼나사상을 간명하게 드러낸다. 성경에 나오는 이 말이 그 증거다. "하느님이 내게 보내신 이를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므로 죽지 아니하니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 5:24)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영원한 생명을 얻은 그것이 얼나다. 류영모는 공자가 말한 지천명(知天命, 성령을 깨닫게 됨)의 나이에 궁신(窮神)하여 마침내 그 새로운 세계에 닿게 되는 지화(知化)에 이른 것이다.


다석한시 - 얼사람(人子) (1957.8.23)

大我無我一唯一(대아무아일유일)
眞神不神恒是恒(진신불신항시항)
恒一唯是絶對定(항일유시절대정)
無求自由郎(불기무구자유랑)

큰 나는 내가 없으니 하나가 오로지 하나일 뿐
참 신은 여느 신이 아니라 늘 있는 것이 늘 있는 것
늘 하나로 유일하게 옳으니 절대세계에 자리잡고 앉았다
부러워할 것도 없고 원하는 것도 없으니 자유로운 사람이라네

인자(人子)란 무엇인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하느님의 아들인 것이 인자다. 인자는 어떤 경지에 이르러 있는가. 참나를 얻고 나니 몸나나 제나(에고)가 없다. 하느님과 이어진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얼과 이어진 나이기 때문이다. 진짜 하느님은 따로 있는 하느님이 아니라, 늘 우리에게 있는 그 하느님이다. 질투하고 화내지 않는 것, 탐욕함이 없는 것. 그렇게 몸나와 제나에서 자유로운 존재일 뿐이다.  마침내 '인자'의 경지를 얻은 류영모가 자유자재한 대아무아 진신불신(大我無我 眞神不神)을 천명한 노래다. 

다석전기 집필 = 다석사상연구회 회장 박영호
증보집필 및 편집 = 이상국 논설실장
@아주경제 '정신가치' 시리즈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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