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둘러싸고 미ㆍ중 험악한 분위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4월 30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서 시작됐다는 ‘높은 정도의 믿음(a high degree of confidence)’을 준 증거를 보았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5월 3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발병이 중국의 실험실에서 시작됐다는 ‘대량의 증거(enormous evidence)’가 있다”고 말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6일 이렇게 반박했다. “폼페이오 선생, 대량증거가 있다면 내놔보시지. 폼페이오 선생은 증거가 있다고 반복해서 말하면서도 증거는 내놓지 않고 있다. 근본적으로 증거가 없으니 못 내놓는 게 아닌가. 미 공화당 상원 대통령 경선 기구가 57개항의 비망록을 작성했는데 그중 하나가 ‘중국이 바이러스 확산의 진상을 덮었다는 점을 적극 공격하라’는 것이었다고 미 정치 인터넷이 폭로했다고 하더라.”
WHO(세계보건기구) 공식 집계로 5월 6일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17만1185명에 사망자 수는 6만2698명이다. 사망자 숫자는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3년간 계속된 미군 사망자 5만4246명보다 많고, 1960년에 시작해서 1973년까지 13년간 계속된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사망자 9만220명에 가까이 가고 있는 숫자다.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비난전(Blame Game)’이 단순한 말싸움일 수가 없는 사망자 숫자다. 그런 흉흉한 분위기에서 미 CNN은 6일 밤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비난전의 핵심에 있는 우한 연구소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보도했다. 정치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CNN은 이 프로그램에서 슬쩍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 포스 핵심 멤버인 앤서니 파우치 박사가 4일 발행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인터뷰에서 ‘각종 과학적 증거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위적이거나 의도적으로 조작되기가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크게 기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1984년부터 2020년 1월까지 미 NIAID(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을 지낸 미 최고의 감염병 전문가가 트럼프의 ‘중국에 뒤집어씌우기’ 기초를 허물어뜨리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지자 트럼프는 격노해서 “파우치를 백악관 태스크 포스 팀에서 빼라”고 했다가 6일 밤 슬그머니 취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팬데믹의 원인을 놓고 위험한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 ‘우한(武漢) 바이러스 연구소’의 웹페이지에는 특별한 위기의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트럼프와 폼페이오가 말하는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의 정식 명칭은 ‘중국과학원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中國科學院 武漢病毒硏究所·Wuhan Institute of Virology CAS)’이다. 중국과학원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후에 중국 자연과학과 첨단기술 발전을 위해 설립된 최고의 학술기구이고, 과학원 소속의 우한바이러스연구소는 “중국의 생물 안전의 전략적 필요와 인구 건강, 농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바이러스와 생물기술, 생물 안전 등에 관한 기초연구와 응용 연구”를 하기 위해 1956년에 발족했다. 소장은 올해 39세의 분자면역학 박사 왕옌이(王延軼)로, 베이징(北京)대학과 미 콜로라도 대학, 우한(武漢) 대학에서 석박사를 받은, 바이러스와 숙주의 상호작용 시스템 전문가다. 면역과 숙주 세포에 관한 30편의 SCI(국제과학논문색인 등재)급 논문을 발표했고, 다른 학자의 SCI 논문에 2200차례 인용된 실적을 가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자다.
우한바이러스연구소는 트럼프와 폼페이오가 말하는 것처럼 무슨 은밀한 비밀연구소가 아니다. 홈페이지에 ‘우한 시 우창(武昌) 샤오훙산(小洪山)구 44호’라는 주소와 우편번호 430071도 공개돼있고, 메일주소 wiv@pentium.whiov.ac.cnm도 나와 있고 전화번호도 올라있다. 우한바이러스연구소는 그동안 국제학술 교류도 꾸준히 해왔다. 2015년 프랑스 국립감염질환 연구소 CIRI와 합작으로 4400만 달러를 투입해서 중국 대륙에서는 최초로 생물안전 4등급(BSL4)의 실험실도 만들었다. BSL4등급의 실험실이란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 질병을 연구할 수 있는 실험실로, 코로나 바이러스와 메르스, 사스를 연구하려면 최소한 BSL3등급의 실험실이라야 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 BSL4등급의 실험실을 만들 때 프랑스 자본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의 투자도 포함됐으며, 이 실험실은 그동안 미 텍사스 대학의 갤베스턴 국립 실험실의 기술협조를 받아온 것으로 되어있다.
우한바이러스연구소는 그동안 캐나다 국립미생물연구소와도 학술교류를 해왔는데, 우한연구소 소속 부부 연구원 청커딩(程克定)과 추샹궈(邱香果) 부부가 캐나다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으며 연구해오다가 지난해 7월 캐나다 정부의 보호를 받아온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미 뉴욕타임스는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소속으로 신형전염병연구센터 주임 스정리(石正麗·56)가 네이처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자 서열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전 세계 여러 학자들에게 데이터 베이스를 업로드 해주었다고 보도했다. NYT의 보도가 있자 중국 내 SNS에는 “스정리가 감염병 연구에 관한 비밀문건들을 미국에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정부당국의 수사를 받게 됐다가 이 수사를 피하기 위해 주중 미국대사관에 보호를 요청했다”는 소문이 광범위하게 퍼졌으나, 5월 2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국제문제 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스정리 본인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는 보도를 함으로써 해프닝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시간 7일 오전 또다시 “중국이 확산을 중단시킬 수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을 중단시키지 않아 우리 미국이 진주만과 2001년 월드 트레이드 센터 공격을 받은 이래 사상 최악의 사망자를 냈다”고 중국에 대한 비난을 업그레이드 하고 나섰다. CNN은 트럼프의 말을 보도하면서 이날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사망자는 7만1000명을 넘어섰는데, 이만 한 사망자 숫자는 1941년 진주만 공격받을 당시의 2000여명이나, 테러리스트에 의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 비행기 충돌 당시의 2977명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많은 사망자 숫자라고 전했다.
코로나19 확산의 원인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결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가운데 지난 2일 미 피츠버그대 컴퓨터 시스템 생물학 연구 조교수 중국인 류빙(37)이 자신의 집에서 총에 맞아 살해당한 사건이 6일 CNN을 통해 알려졌다. 류빙 교수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중국인이 쏜 총에 머리와 목을 관통 당했으며, 류빙에게 총을 쏜 중국인도 자살함으로써 사건은 미중 코로나19 갈등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으로 발전하고 있다. 1914년 제1차 대전의 발생이 그해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왕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를 암살한 총성으로 시작됐다는 역사적 사건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류빙 교수의 피살이 혹시라도 역사적인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현실화된다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후보지는 미국의 영토도 중국대륙의 어느 곳도 아닐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현재 미·중 간에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산호초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활주로를 만드는 데 항의해서 미국이 “무해통항의 권리”를 주장하며 해군 구축함을 산호초 근처로 통과시키고 있는 곳이 발화점(發火點)이 될 가능성이 높은 현실이다. 그 다음은 중국이 해군의 작전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일본 남쪽 오키나와 열도를 통과해서 태평양 원양으로 나가려는 훈련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 해역이 두 번째 발화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HADIZ)과 겹치는 공역 또한 엉뚱한 미·중 대결의 발화점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 외교안보 당국은 미·중 간의 코로나19 확산 원인을 놓고 다투는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지 말고, 관련 정보 확보와 외교정세 판단 감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할 때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지금 상황은 냉전(冷戰)의 시작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냉전 상황에서 열전(熱戰)의 시작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