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에는 '제임스 브래디 프레스룸'이 있다. 지난 1981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당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살아남았던 브래디 전 백악관 대변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백악관 집무동인 서관(웨스트윙) 진입로에 위치하고 있다. 언론에 날카롭게 각을 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변인을 통한 공식 브리핑을 갑자기 중지시키면서 이 공간은 거미줄이 걸리고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창고로 변했다. 대신 기자들은 백악관 밖 도로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출입하는 백악관 관계자들의 한마디를 듣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진풍경은 일상화 되었다. 그러다가 코로나19가 위기가 확산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1년 정도 개점휴업 상태이던 이 공간에 나타나 거의 매일 브리핑에 직접 나서고 있다. TV로 생중계되는 트럼프의 '코로나' 기자회견은 전 국민의 관심사로 시청률로 높다. 문제는 그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초래된 국가의 대재앙 사태에서 현역 대통령의 브리핑인지 아니면 오는 11월 실시될 예정인 대선에 나선 후보의 선거유세장인지 분간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코로나19 위험성에 대한 행정부 내 사전 경고를 무시해 이번 위기에 늑장 대응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지난 3월 13일 국가비상사태 선포이후 트럼프는 ‘전시 대통령’을 자처하며 거의 매일 진행하는 생방송 브리핑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의도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향후 코로나19가 한풀 꺾여 경제가 일정 수준으로 정상화되면 코로나에 대한 ‘승리’를 선언하는 방식으로 트럼프는 자신의 대선 프레임을 끌고 갈 태세이다. 통상 위기때 국민들은 국가 지도자에 힘을 실어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브리핑에서 자화자찬성 발언과 잘못된 정보 제공으로 혼란만 부추긴다는 비판도 거세지며 트럼프는 지지율 결집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신은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장담하지만, 여론은 그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국 정부가 코로나19의 확산 가능성을 파악하고도 초기에 일부러 관련 정보를 은폐했다며 '중국 책임론'을 수시로 제기하고 있다. 중국을 타킷으로 해서 미국이 코로나19 사망자와 확진자가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전가하려는 시도이다. 또 미국인들의 반중(反中)정서를 이용해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친(親)중국인사로 공격하고 있다. 트럼프 진영의 최근 광고는 바이든의 얼굴을 '오성홍기'로 덮으며 막을 내린다. 트럼프는 최근 브리핑에서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중국이 미국을 소유하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중국은 졸린 조 (Sleepy Joe)를 간절히 원한다"고 트윗을 날리기도 했다. 이에 바이든도 트럼프의 행정부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이 "한심할 정도로 미흡했다"며 트윗을 날리는 등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또 트럼프가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던 올해 1,2월에만 중국을 15번이나 칭찬했다"며 맞불 광고를 시작했다. 바이든(77)은 트럼프보다 4살위로 36년간 상원의원을 지냈고 오바마 행정부에서 8년간 부통령을 지냈다. 트럼프는 참신성이 부족하고 '과거'를 상징하는 노회한 이미지의 바이든이 작년 대선 출마를 하자 그에게 '졸린 조'라는 별칭을 사용하고 있다. 중도노선의 바이든은 초반 민주당 경선에서 참패했지만 3월부터 대역전극을 펼치며 대선후보를 거머쥐었다.
국가비상사태 선포와 함께 대통령 선거 운동이 중단된 이후 부활된 백악관 브리핑룸은 트럼프의 유세장으로 변한 반면, 바이러스 확산으로 대규모 선거유세 투어가 어려워진 바이든 전 부통령은 자신의 존재감을 크게 부각시키킬 만한 대안 찾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민 대부분이 자택 대기하는 상황에서 바이든이 대중의 관심을 그나마 끌 수 있는 방법은 델라웨어주 자택 거실에서 책장과 가족사진을 배경으로 개최되는 '화상 타운홀' 그리고 TV 인터뷰나 광고 정도이다. 전시 지도자'에 준하는 활동으로 미디어를 점령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바이든 부통령의 얼굴이나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다. 또한 트럼프가 날리는 트위터 메시지는 7700만명에게 전달되지만 바이든은 고작 5백만에도 못미친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위기는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도 충분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번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에 대응, 트럼프 행정부가 무제한 돈풀기를 통한 슈퍼경기부양책에 나섰지만 경제침체와 대량실업사태가 하반기까지 이어진다면 바이든 후보에 대한 지지 여론이 힘을 받게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 대선에서는 야당인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승리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선거운동 중단 선언으로 대선 본선행이 사실상 확정된 바이든 전 부통령은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난 13일 지지 선언에 이어 전날에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지원까지 확보하면서 진보 진영의 지지를 흡수할 기반을 마련했다. 14일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지를 선언했다. 바이든은 최근 한 지지자 모임에서 자신은 이미 대통령 인수팀 구성에 착수했다고 했다고 밝혔다. 또 11월 대선 이전에 남녀 성별 뿐 아니라 미국의 다양한 인종과 세대와 직업을 아우르는 각료 명단을 발표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또 여성후보를 그의 러닝메이트로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저조한 그에 대한 젊은층과 여성층의 지지를 만회할려는 전략을 조용하게 물색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 측은 '오바마' 향수를 자극시킬 수 있는 미셸 오바마 여사를 부통령 후보로 원하고 있지만, 미셸측은 정계 입문의사가 없다며 고사하고 있다.
미 대선은 50개주에서 선출된 538명의 선거인단이 결정하는 간접선거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4년전과 마찬가지로 공화당이나 민주당 어떤 정당을 고정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소위 '경합주'에서의 성적이 백악관의 주인을 결정할 전망이다. 대표적인 경합주로는 북부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의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3개 주와 남부의 애리조나,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등 6개 주가 꼽힌다. 이들 6개 주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때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근소한 표 차로 승리했던 지역이다. 이번 대선은 궁극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에 대한 트럼프의 대응을 평가하는 국민투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바이든 전 부통령이 이들 '경합주'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오차범위 싸움을 벌이거나 우세하다는 여론조사가 속속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를 실시했던 CNBC는 "격전지 6개 주 유권자는 후보 선호를 놓고 의견이 갈려 있다"며 "코로나19 대응에서부터 경기침체 해소, 의료비용 절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에서 누가 더 잘 대처할지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평가했다. 미국 대선에 대한 관심은 당장 코로나 바이러스 뉴스에 묻혀있다. 대선이 6개월 이상이나 남은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현시점에서 11월 3일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판단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초 까지도 코로나가 지구촌을 이렇게 뒤집어 놓을 것을 우린 아무도 상상 못했다.
<이수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