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 둘레는 산성을 띤다. 정전기를 품은 나노입자가 세포 속에 투입된다. 나노입자는 산성을 만나면 정전기 반응을 내며 점점 더 뭉친다. 정상세포는 가만히 있는데 암세포는 부풀어버린 나노입자의 덩치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숨도 못쉬고’ 죽는다.
항암치료 역사는 바로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방법을 찾는 과정들이다. 암세포만 아니라 정상세포도 공격당하는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암세포 주변이 산성을 띠는 점에 착안해 전하를 띠는 금속 나노입자를 투입해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위와 같은 방법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UNIST(총장 이용훈) 자연과학부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 특훈교수가 이끄는 연구팀(IBS 첨단연성물질연구단)이 최근 일궈낸 항암 연구 역사상 쾌거이다.
리소좀은 세포 내에서 ‘재활용 쓰레기통’ 역할을 하는 주머니 형태의 기관. 세포에서 못 쓰게 된 다른 기관을 분해해 다시 단백질을 만들거나, 바이러스 같은 외부 물질을 파괴하는 활동도 모두 이곳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리소좀 주머니 벽이 파괴되면 안에 있던 ‘쓰레기’들이 새어나오면서 암세포가 사멸되는 것이 목표다.
연구팀은 암세포 주변이 산성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금(Ag) 나노입자 표면에 양전하와 음전하를 각각 띠는 꼬리 모양 물질(리간드)을 특정 비율로 붙였다. 나노입자는 정상세포와 암세포 속에 모두 있는 리소좀 내부로 침투해, 결국 암세포에서만 커져서 리소좀을 망가뜨리고 세포를 죽였다. 같은 물질을 투입해도 암세포는 죽고 정상세포는 살아난 것이다.
공동교신저자인 크리스티아나 칸델 그쥐보프스카 IBS 연구위원은 “암세포는 산성을 띠므로 나노입자가 잘 뭉치는 데다, 암세포는 그 기능이 비정상적이라 큰 결정으로 자란 나노입자를 배출하기 힘들어 결국 사멸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암세포 속 리소좀으로 나노입자들이 잘 운반돼야 효과가 있는데, 나노입자 표면의 양이온과 음이온 비율이 8대2일 때 덩어리 크기가 적당했다”고 설명했다.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 교수는 “고장난 암세포의 특징인 세포 주변이 산성이고 이물질 배출도 어렵다는 점을 역으로 활용해 암세포를 죽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며, “앞으로 동물실험 등을 통해 항암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노입자에 리간드를 붙여 선택적으로 입자의 뭉침을 유도하는 방법은 금속 나노입자뿐 아니라 고분자 나노 기반 입자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며 “이번 연구는 나노과학의 관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지원했으며,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 Nanotechnology) 3월16일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