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6)
베트남 정치 개혁의 현재
아주경제는 베트남 개혁·개방을 연구하는 최고 전문가 서강대 이한우 교수의 칼럼을 연재한다. '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는 베트남의 개혁 과정을 톺아보고 분석하며 날로 확대되고 있는 한·베트남 관계에 대한 현황을 살피고 전망을 내놓을 것이다. 이한우 교수는 서강대에서 베트남 개혁정책을 주제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로 있다. 베트남 국민경제대학 객원연구원으로도 있었다. 그는 베트남 정치경제 개혁과정을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개혁으로 인한 사회문화 변화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베트남 경제개혁의 정치경제>, <한국-베트남 관계 20년> 등 책과 베트남 개혁에 관한 연구 논문을 여러 편 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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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체제 내 정치 변화
베트남이 북한에게 발전모델로 비친 것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베트남에서 기존의 사회주의 체제는 굳건히 유지되고 있나? 개혁이 진전되면서 정치적 변화는 없는가, 궁금해진다.
사회주의 체제는 공산당이 국가와 사회를 영도하는 체제다. 공산당의 영도는, 조직상으로 각 국가기관에 공산당위원회를 설치하고, 공산당 인사들을 추천하여 국가의 주요 직위를 겸직하게 하는 메커니즘으로 실현된다. 여기서 추천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베트남에서는 공산당의 통치가 일사불란하게 실현될 것 같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다. 하급 기관은 중앙의 지시를 현지 실정에 맞게 해석하여 집행하기 때문이다.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말이 중국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위로부터의 정치 개혁도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주의 정치체제 자체의 변화는 없지만, 그 체제 내에서 점진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를 개선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지만 흔히 쓰는 용어로 개혁이라고 하자. 베트남의 정치 개혁은 1990년대 초부터 조금씩 시작된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1992년 개정 헌법에 나타나 있다. 국가의 성격은 “노동자-농민 동맹을 기반으로 사회주의 지식인과 함께 집단적 주인이 되는 국가”로부터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국가”로 바뀌었다. 국가 목표도 인민이 부유하고, 강하고 민주적이고 공평하고 문명된 국가를 실현하는 것으로 됐다. 일반 국가와 그리 다를 바 없는 목표다. 단지 공평한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목표가 사회주의적 요소라고 이해할 수 있다. 과거 노동자, 농민, 지식인 연합이 사회의 주체였으나, 이제는 모든 국민이 베트남의 주체가 됐다. 계급 갈등을 부각시키지 않고 계급 조화와 전 국민 단합을 강조하고 있다. 통치원리를 보면, 베트남은 “인민이 주인이고, 국가가 집행하고, 공산당이 영도하는” 국가다. 분명히 사회주의 국가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공산당이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을 이뤄낸 지도세력이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선봉대이기에, 공산당의 국가와 사회에 대한 영도는 정당화되고 있다. 공산당의 영도도 헌법의 틀 내에서 수행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기는 하다. 이렇게 베트남은 공산당 1당 통치의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주의를 느슨하게 규정한다. 사회주의의 내포를 줄이고 외연을 확대함으로써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
국회의 변화
베트남의 정치 개혁에서 가장 진전을 보인 부문은 국회다. 첫째, 국회가 국민을 대표하는 기능을 높이고 있다. 국회의원 후보자는 여전히 베트남조국전선이 주도하는 심사과정을 통하여 최종 선정된다. 베트남조국전선은 모든 정치사회단체의 상위조직으로 공산당의 지도하에 있기에, 공산당의 영향력이 입후보과정에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조국전선이 후보자 선정과정에서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는 후보자에 대하여 입후보 자체를 사전에 제한한다. 베트남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지 않으므로, 자유민주주의 관점에서는 베트남이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라고 해야겠다.
그러나 선거과정의 미시적 변화는 아직 미약하지만 개혁과정에서 점차 확대되어 왔다. 이러한 변화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조금씩 확보해 가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1992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선거구별로 후보자가 의원 정수보다 많아야 한다는 선거법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2007년 제12대 선거에서는 국회의원 정수 대비 입후보자 비율을 150%에서 170%로 높여 후보자 선택 범위를 더 넓혔다. 보통 의원 정수가 2명인 선거구는 후보자를 4명, 의원 정수가 3명인 선거구는 후보자를 5명으로 한다. 1992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부터 후보자가 국가기관과 정치-사회단체의 추천을 받지 않고 자기추천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인원은 한명에서 세명 사이로 소수에 불과하다.
둘째, 국회의 전문성을 높이는 조치도 있었다. 과거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각 기관에 근무하다가 국회가 열리면 모여 국회 업무를 수행하던 파트타임 의원들이었다. 의원은 자신의 전체 업무 중 1/3을 국회 업무에 종사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개혁을 시작한 1990년대에도 전임 의원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전임 의원 비율은 2000년대 들어 제11대 국회에서 24%, 제12대 국회에서 29%였다. 현재 이 비율은 35% 정도인데 향후 더 높일 예정이다. 전임 국회의원 비율이 증가한 것은 국회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이해된다.
셋째, 국회는 정부 감독권을 향상시켰다. 1994년부터 국회 회의를 TV로 방영하여 국민들에 대한 국회의 책무를 보다 더 잘 보여주고 있다. 국민들은 국회의원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장관들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국회에서 행정부의 예산안과 법률안에 대한 심각한 토론이 행해지기도 하고 정부의 정책을 기각시키기도 한다. 최근 베트남 정치에 도입된 독특한 제도가 국회에서 하는 신임투표다. 국회에서 선출한 국가 지도자들, 즉 국가주석, 부주석, 국회주석(국회의장), 수상(총리) 및 장관 등에 대해 5년 회기 중 중간에 한 번 신임투표를 하는 것이다. 국회의 신임투표는 2013년 처음 실시되었고, 2014년에 제2차, 2018년에 제3차로 실시되었다. 불신임은 없고, 높은 신임, 신임, 낮은 신임만을 선택할 수 있기에 한계가 있지만, 낮은 신임을 많이 받은 지도자는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된다. 2018년 제3차 투표에서는 국회주석, 총리, 외교부장관 등이 높은 신임을 받은 반면, 교육부장관이 가장 낮은 신임을 받았다. 그것은 교육개혁이 지체되고 몇 개 지방에서 입시부정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공산당의 변화
그렇다면 공산당 내 변화는 나타나고 있는 걸까? 공산당은 2001년 제9차 공산당대회에서 총비서(총서기)의 임기를 2회까지로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하여 권력의 장기 독점을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한 바 있다. 2006년 제10차 공산당대회에서는 공산당의 권력구조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종래에는 공산당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정치국과 비서국 위원을 선출하고 정치국 위원 가운데 단일 후보에 대하여 신임을 묻는 형식으로 총비서를 선출했다. 하지만 제10차 공산당대회에서는 당대회에서 총비서 후보를 복수로 추천하고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선출하는 형식으로 바꾼 것이다. 160명의 중앙위원회가 아닌 1200명의 당대회에서 총비서 후보를 추천하였다는 점, 총비서 후보가 복수였다는 점은 당내 민주화 확대의 징표였다. 당시 중국 지식인들도 베트남의 정치 개혁이 중국보다 더 진전됐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제11차 당대회에서는 종전의 방식으로 돌아가 단일 후보에 대해 신임투표로 총비서를 선출했다. 2016년 제12차 당대회에서 응우옌푸쫑과 응우옌떤중이 총비서 자리를 두고 경쟁했으나, 제10차 당대회에서와 같은 공산당 내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않았다.
앞서, 베트남에서 국회의 변화가 정치적 진전으로 해석된다고 했지만, 공산당의 국회 지배는 지속되고 있어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간 공산당원이 아닌 국회의원 비율은 7%부터 16% 사이였는데, 2016년 제14대 국회에서는 그 비율이 4.2%로 하락했다. 세간의 평가대로 최근 베트남에서 정치적 보수화가 강화됐다고 볼 수도 있다. 공산당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에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얼마 전 지식출판사 사장이 공산당 노선과 다른 책을 출판했다고 하여 징계를 내렸고, 사이버보안부대를 창설했으며, 2019년부터 사이버보안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조치들은 사회주의 체제를 수호하겠다는 메시지들이다. 베트남은 정치적 개방과 통제의 줄다리기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