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00억원 규모의 원전 전환펀드 조성 등 원전해체 산업 지원 정책이 대표적인 플랜B다. 구체적인 전략은 △초기시장 창출 및 인프라 구축 △해체 전문 강소기업 육성 △글로벌시장 진출 지원 △제도기반 구축 등 크게 네 가지다. 2022년까지 1300명의 해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원전사업 전환펀드를 별도 조성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를 통해 정부는 그간 우리나라 원전 기업이 주력해온 선행핵주기(건설·운영) 대신 후행핵주기(해체·폐기물관리) 관련 역량을 강화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가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6기 건설을 백지화한 상태에서 시장 규모가 훨씬 작은 원전해체 시장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원전해체와 관련, 한국의 정량적 기술 수준은 선진국 대비 82%로 추정된다. 하지만 상업용 원전해체 경험이 전무해 실제 격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원전해체 핵심 기술 확보도 신통치 않은 데다 관련 전문 인력, 제도 등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2일 곽대훈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의원이 최근 입수한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산업부가 지정한 해체 상용화 기술 58개 중 13개(22.4%)는 미개발 상태다. 이들 미확보 기술 대다수는 원전 해체산업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인력 확보 계획도 불투명하다. 정부는 기존 원전 건설·운영 재직인력을 해체 인력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미 원자력 관련 학과로 진학하려는 대학이나 대학원 신입생들이 급감하고 있는 와중에 미래의 원자력 인력 양성은 요원하다.
민병주 한국원자력학회장은 “후행핵주기 투자는 선행핵주기 산업을 유지하도록 지원해야 서로 보완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면서 “두 분야가 연결되기 때문에 원전 건설을 중단하면 원전해체 기술개발도 늦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원전해체 기술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서려면 최소 6~7년은 걸릴 전망이다. 정부는 2022년부터 고리 1호기 해체 작업에 들어가면서 원전해체 노하우를 쌓은 뒤 3~4년 뒤인 2026년쯤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원전해체 선진국과 견줄 만한 수준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원전해체 시장 규모가 원전 건설 시장에 비해 턱없이 작은 상황에서 기업이 나설 만한 유인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2017년 6월 영구정지를 선언했던 고리 1호기를 필두로 2030년까지 국내에서만 총 12기 해체를 개시할 계획이다.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 등까지 모두 합한 총 30기 원전을 모두 해체하면, 60년 후인 2080년까지 22조5000억원 규모 시장이 열린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실제 원전해체 시장 규모는 원전 1기에 7500억원, 사업기간은 최장 10년에 불과하다. 신규 건설액만 1기당 4조3000억원에 최장 70년(건설 10년+운영 60년)간 생태계가 유지되는 건설·유지 시장에 턱없이 모자른다.
특히 오는 2020년대 후반에나 해체기술이 축적되는데, 정부 추산으로도 2030년까지 해체시장 규모는 2조2000억원에 불과하다. 향후 10년간은 인력과 기술력을 갖추더라도, 향후 시장 규모가 기존 원전 건설에 비해 너무 작아 투자 대비 부가가치 효과가 떨어진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해체는 폐기물 처분이 40% 정도를 차지해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이라며 “세계적으로 원전 수명을 늘리는 추세라 시장 규모 자체도 정부 예상보다 훨씬 작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