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시장이 불안해지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이 무제한 돈 풀기에 나서며 미국 국채 금리가 추락하고 있다. 이에 미국 국채 보유국 2위인 중국이 ‘달러 딜레마’에 빠졌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이 27일 보도했다.
◆ 美 양적완화에 추락하는 국채 금리···중국 '무책임하다' 불만 고조
코로나19 공포 속 전 세계가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식과 상품을 투매해 '기축 통화'인 미국 달러화를 사들이며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무제한 양적 완화로 미국 국채 금리는 추락하면서다. 이번 주 미국 1개월물, 3개월물 국채 금리는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샤오강 전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회)는 최근 중국 관영 인민정협보를 통해 “미국이 달러의 기축통화라는 특권에 기대서 사실상 인쇄기로 미국 달러화를 찍어 뿌리고 있다”며 “이는 달러 가치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 주요 무역과 투자 거래가 달러화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미국이 자국의 경제 위기를 전 세계로 떠넘기고 있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중국 저명한 경제학자인 런쩌핑도 미국의 양적 완화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꼬집었다. 그는 "중국은 미국 국채를 팔고 달러화 자산 보유량을 줄여야 한다"며 "대신 금, 석유, 천연가스, 철광석, 토지, 농산품 등은 물론, 글로벌 하이테크 기업 지분을 대규모로 매입해야 한다"고 전했다.
사실 중국도 그동안 미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외화보유 다원화 정책에 박차를 가하며 달러 대신 다른 통화나 자산을 채워나갔다. 지난해 중국 외환관리국은 이례적으로 중국의 외화보유액 세부 내용을 공개했는데, 2014년말 기준 중국의 3조1000억 달러 외환보유고의 약 58%를 달러화로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10년전 79%에서 20% 포인트 이상 줄어든 것이다.
중국의 미국 국채보유량도 줄면서 지난해 6월엔 미국의 최대 국채보유국 지위를 일본에 넘겨줬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 1월말 중국은 미국 국채 보유량 1조1000억 달러로, 일본에 이은 2위다.
◆ 달러外 '가치보전' 투자처 마땅치 않다는 목소리도···
하지만 글로벌 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중국이 자산 가치 유지를 위해서라도 미국 달러화 자산을 보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루정웨이 흥업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외환보유고의 최우선 목적은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게 아닌, 가치를 보전하는 것”이라며 "달러화 자산을 매각하는 건 중국의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현재 중국으로선 투자 선택사항이 달러, 미국 채권, 금, 세 가지가 전부"라며 사실 미국 달러화를 대체할 대안도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예를 들면 금 시장 규모는 너무 작고, 원유 시장은 너무 불안정하다는 것.
리제 베이징 중앙재경대 연구원도 현재의 글로벌 유동성 위기로 미국 달러화가 중국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줬다며 "미국 국채 금리는 낮아지고 있지만, 달러화는 오히려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달러는 중국으로선 여전히 좋은 투자처이고 금보다 낫다고 진단했다.
또 미국 국채를 투매할 경우, 미국 뿐만 아니라 중국 역시 타격이 크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미국 국채 매도로 가격이 폭락할 경우, 중국의 외환보유액도 쪼그라들어 중국 경제의 안전성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서 미·중 무역전쟁이 최고조에 달했을때도 일각에선 중국이 미국에 대한 보복카드로 미국 국채매도를 선택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실제로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한편 중국 정부는 아직까지 미국의 양적완화에 대해 별다른 언급은 없는 상태다. 앞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양적완화에 중국 지도부는 이것이 채권 가격을 흔들고 달러 가치 평가 절하를 초래한다며 경고한 바 있다. 당시 원자바오 전 중국 총리는 미국 국채 안정성에 우려를 표명하며 미국 정부는 (중국이 보유한) 달러화 자산의 안정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