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인트라(근거리)아시아 항로를 주로 맡아온 흥아해운이 최근 워크아웃을 신청한 것이다. 몇 해 전부터 계속된 실적 악화가 원인이 됐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해운 경기 악화가 직격탄이 됐다는 분석이다. 국적선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선주협회의 할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만난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은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궁극적인 최우선 해법으로 ‘적취율 향상’을 꼽았다. 적취율이란 전체 해상 물동량 중 우리 국적의 선박에 의해 운송되는 물량의 비율을 말한다. 우리나라 기업(화주)들이 국적선사에 맡기는 물량이 많아질수록 선사의 수익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적취율 향상은 해운산업의 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인 요소다.
◆국적선사 적취율 높이면 선박산업 경쟁력↑·일자리 창출
선주협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컨테이너선사의 경우 원양항로 적취율은 19%에 불과하다. 인트라아시아 적취율도 63% 수준이다. 전략물자(원유, 석탄, 철광석, LNG 등) 선사의 경우도 58%에 불과하다.
김 부회장은 “원양컨테이너와 인트라아시아 적취율 모두 70%까지 높이고, 전략물자 적취율은 100%까지 상향되면 한국 해운산업의 경쟁력이 극대화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적취율 향상을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필수다. 그는 △우수화주에 대한 법인세 약 3% 공제 지원 △전략물자의 국적선사 장기운용 계약 비중 100% 확대 추진 등을 꼽았다. 선주협회는 오는 4월 총선에서 각 당의 공약에 이러한 방안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도록 노력 중이다.
국내 원양 컨테이너 선박의 적취율 70%와 전략물자 적취율 100%가 달성되면 그에 따른 경제적 기대효과는 상당하다.
김 부회장은 “컨테이너 38척, 전략물자 143척 등 총 181척의 신조 선박 수요가 창출돼 해운-조선-금융산업의 상생발전과 고용 창출이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특히 적취율 확대물량(36척)과 기존 선박의 대체물량(50척)에 물동량 증가에 따른 신규물량(20척)을 고려하면 연간 106척의 신조선 발주 물량이 창출된다.
향후 5년간 총 530척의 신조 발주 물량이 창출되는 셈이라 조선업계의 업황 회복까지 기대할 수 있다. 고용 창출 효과만 따져봐도 해운은 5036명, 조선은 3만9852명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김 부회장은 설명했다.
◆해양진흥공사 역할 ‘합격점’...자본금 10조원으로 늘려야
김 부회장은 적취율 향상을 위해 문재인 정부가 노력하고 있는 점은 높게 평가했다. 정부가 2018년 발표해 추진 중인 ‘해운 재건 5개년 계획(2018년~2022년)’이 가시적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적선사의 컨테이너 수출입화물 운송량은 전년 대비 4.2% 증가했고 국적선사 적취율은 45.4%로 1.7%포인트 증가했다.
또 주요 대형 포워더(운송 주선인) 3사와 원양선사 간 올해 운송계약 물량은 10% 이상 증가했다. 석탄을 비롯해 원유, LNG, 철광석 등 우리나라에서 수입하는 전략 화물에 대한 국적선사 운송량도 지난해 7억1000만t으로 전년 대비 9.3% 늘었다.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포함해 총 99척의 경쟁력 있는 신조선이 발주된 것도 큰 성과다. S&LB(선박 자산매입 후 임대) 프로그램으로 16개 선사에 2013억원의 유동성 지원이 이뤄진 것 역시 고무적이다.
김 부회장은 특히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에 따라 설립된 한국해양진흥공사(이하 해진공) 역할에 후한 점수를 줬다. 그는 “해진공 출범 이후 2720억원의 유동성과 신조 지원이 이뤄졌고 선박금융 및 친환경 설비에 6000억원의 보증이 이뤄져 해운업계 자금난에 숨통이 트였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장금상선과 흥아해운 컨테이너 부문 통합법인 설립을 지원한 것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흥아해운의 컨테이너선 부문이 장금상선에 흡수 통합되면서 워크아웃을 신청했지만 흥아해운의 회생도 가능할 것이란 설명이다. 김 부회장은 “인트라아시아 항로에서 우리 선사들끼리 과당경쟁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두 회사의 통합이 롤모델이 되어 향후 국내 인트라 선사들이 어느 정도 덩치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쉬운 것은 해진공의 자본금 규모다. 김 부회장은 “해진공의 자본금을 현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늘리고 조직 규모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면서 “국내 선사는 업력이 짧고 자본력이 약해 선박 확보능력이 없다. 해진공이 유동성 지원이나 정부 정책 실행기관으로서 볼륨을 키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산은·수은, 선박금융 발 빼선 안 돼...공정위, 선박법 특수성 인정해야
해진공이 단시간에 좋은 결과를 냈던 것은 금융 논리에서 벗어나 산업논리로 지원정책에 접근한 덕분이다. 그런데 해진공만을 믿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선박금융 지원에 소극적으로 변한 점은 실망스럽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김 부회장은 “해진공 설립 이후 산은과 수은 등 정책금융기관이 해운산업 지원에서 점점 발을 빼는 상황이라 중소선사의 고충이 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면서 “기존 정책금융이 지원수준을 유지하면서 해진공의 자본금을 키워야 해운 재건 5개년 계획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진공 차원에서 ‘토니지 뱅크(Tonnage Bank·선박은행)’가 운용돼야 한다는 게 선주협회의 요구다. 김 부회장은 “해운선사가 유동성 확보와 선박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토니지 뱅크를 설립하고 투자자들에게 과감한 세금 감면 혜택을 줘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경우만 해도 대형 운항사와 선주는 분리돼 있다. 토니지 뱅크를 통해 별도 운용되면서 선박투자 제도가 활성화돼 있다. 김 부회장은 “해운선사가 유동성 확보와 선박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토니지 뱅크에 선박을 매각한 후 이를 장기 용선하는 구조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황이 안 그래도 어려운데 해운업계는 최근 정부의 융통성 없는 행정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전격 시행한 안전운임제 문제와 목재합판유통협회(이하 목재협회)가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해운업계 부대비용 담합 건이 대표적이다.
안전운임제 문제의 경우, 지난해 4월 개정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라 환적컨테이너 운임이 무려 56%나 인상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선주협회는 정작 이해당사자임에도 운임 협상에서 해운업계를 배제한 국토부를 상대로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공정위가 조사 중인 담합 건은 특별법인 해운법이 우선함에도 무리하게 이뤄지는 조사라 답답한 상황이다. 김 부회장은 “목재협회도 부대비용과 관련한 오해를 풀고 지난해 8월 공정위 신고를 철회했고, 해운업계의 어려운 상황을 담은 탄원서까지 제출했다”면서 “공정거래법 제58조에도 타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는 (담합) 제외하게 돼 있다. 공정위의 조사가 계속될수록 해운업계가 위축되는 만큼 조속한 종결을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는 무역 규모 1조 달러, 물동량 10억t, 선복량 기준으로 조선 1위 및 해운 5위의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상태”라면서 “궁극적인 해양 강국이 되기 위해선 선주협회뿐만 아니라 정부, 학계, 금융업계가 한데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은...
△1955년생
△배재고 졸업
△한국해양대 항해과 학사
△스웨덴 세계해사대 석사
△대한선주, 조양상선 승선 근무(1항사)
△해무부 근무
△한국선주협회 상무이사
△한국선주협회 전무이사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 사무총장
△해운항만청장 표창
△부총리겸 통일원장관 표창
△은탑산업훈장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