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to the future> 필자 박상철 교수 =이제 120세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노화(老化)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교수의 ‘100 to the future(백, 투더퓨처)’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노화 분야 국제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을 지냈고 국제 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노화 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노화이론을 세운 그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됐습니다.
<100 to the future>는 100세까지 보편적으로 사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영화 '백투더퓨처'의 미래 귀환 뉘앙스를 차용한 시리즈 제목입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그 길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일에 대해 실감나게 짚어나갈 계획입니다.<편집자주>
신화 속에서 불로촌이 등장하여 불로장생을 희구해 온 인류에게 상상력을 자극했지만, 차차 문명이 발달하여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불로촌을 직접 찾아내려는 대탐험의 여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막대하고 처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자연계에 있는 불로촌을 찾기는 불가능하였다. 수만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평균수명은 오십대를 넘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팔십대의 수명을 구가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생물학적 변화 또는 자연생태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인간의 설계와 노력을 통한 인위적인 환경과 습관을 개선한 노력에 기인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꿈의 공간은 완벽한 물리화학적 환경으로는 깨끗한 공기와 물, 온난한 기온과 풍요로운 먹거리와 쾌적한 여건을 갖추며, 생물학적으로는 각종 전염병이나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사회적 환경으로는 내부 주민들이 서로 보살피며 따뜻하게 어울리며 살 수 있는 곳이어야 함을 쉽게 예측해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매우 절실하였다.
완벽한 인공환경을 조성하여 인간의 건강과 장수에 미치는 영향을 집약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추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는 대표적으로 바이오스피어(Biosphere) 2 프로젝트가 있다. 현재의 지구를 바이오스피어1이라고 보고 인간이 설계한 새로운 환경을 바이오스피어 2로 구분하였다.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 외곽에 지구상의 생태계를 모방하여 돔형 공간건축물을 마련하고 내부에는 열대 우림, 사바나, 사막, 습지, 바다 등을 재현하고 3000종의 생물을 생장하게 하였다. 의사, 과학자, 일반인 등 8인이 들어가 2년간 자급자족하며 생활하면서 인간의 삶과 수명, 건강 그리고 지구생태계의 변화 등을 연구 조사하였다. NASA의 달탐험 아폴로 프로젝트에 버금가는 지구환경 개조 대형프로젝트였다. 모든 생태환경을 완벽하게 계산하여 인간이 자연과 어울려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계획되었으나 결국 큰 실패로 끝나버린 사건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가르쳐준 중요한 메시지는 아직 인간이 지구환경을 완벽하게 시뮬레이션할 만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하다는 엄연한 사실과 환경변화가 참여자들의 삶에 영향을 줄 만한 위기 상황으로 진행되었을 때 인간의 협력과 이해가 소중하다는 점이었다. 앞으로 달이나 화성에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구조를 건설하거나 심해나 지하에 이와 유사한 폐쇄된 거주공간을 구축하는 경우 반드시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요인이 인간관계임이 밝혀졌다. 환경오염과 인간관계가 미래인간의 사회발전에 결정적 장애요인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해준 사건이었다.
자연적 문화환경의 사례로는 아미시인의 삶을 들 수 있다. 300년전 스위스에서 이주해온 청교도들의 자손들로 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 랭카스터 카운티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공동체에 전통으로 남아있는 아미시 오르드눙(Amish Ordnung)에 따라 행동, 외모, 문화를 준수하면서 검소, 순종, 평등, 소박이라는 철학이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결혼은 아미시인 집단 내에서만 하여야 하며, 전기를 도입하지 않고 전통적인 생활방식으로 살아간다. 현대의 소가족제도와 달리 대가족 중심의 가족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 친척 조상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고, 부모는 자식에게 철저한 전통 교육에 최선을 다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기본 교육 이외에는 가정에서 남녀 각각의 역할을 배워야 하며 가족을 도와 노동에 종사해야만 한다. 철저한 종교적 지침에 따라 살아가는 아미시인에게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외로움이 없다. 더욱 남녀간의 수명 차이도 거의 없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우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간적 자연 생태환경을 넘어서서 자연에 순종하는 문화환경을 조성하여 전통적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장수 지역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이고 있다. 장수의 불로촌 공동체를 위해서는 단순 자연생태환경만이 아니라 문화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주고 있다.
최근에는 인위적으로 생활문화와 환경을 개조하여 지역주민의 건강장수를 추구하려는 사회개혁운동으로 블루존(Blue Zone) 프로젝트가 있다. 세계 장수지역에 대해 조사하던 중 역학조사를 담당하던 벨기에의 풀랭(Michel Poulain)이 장수도가 높은 지역을 파란 매직펜으로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곁에서 지켜보던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자가 이 지역들을 블루존이라고 불러 이후 장수지역의 일반적 명칭이 되었다. 초기에 주목한 세계적 장수지역은 일본의 오키나와,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미국 캘리포니아 로마린다의 제7일안식교 지역, 코스타리카의 니코야, 그리스의 이카리아들이었다. 우리나라도 장수지역으로 구곡순담지역(구례, 곡성, 순창, 담양)을 소개하여 내셔널지오그래픽에 게재되었으며, 세계적 장수지역인 사르데냐 및 오키나와와 함께 세계 최초의 장수공동체 순창선언을 선포하기도 하였다. 상호간에 장수요인을 공유하고 장수문화를 창출하여 선도적 모범장수지역공동체를 구축하자는 약속의 선언문이었다. 당시 담당기자인 뷰트너(Dan Buetner)의 제안으로 일반 지역 주민들의 생활습관을 블루존 지역의 주민들과 같도록 유도하는 파워나인(Power Nine)이라고 부르는 생활패턴 개선 원칙을 정하여 추진하였다. 그 내용에는 자연스럽게 활동하기 (Move naturally),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기 (Purpose), 채식위주 식단 택하기 (Plant slant), 80%만을 먹기 (80% rule), 하루 한두잔 와인 마시기 (Wine at Five), 마음 내려놓기 (Down shift), 가족 우선하기 (Family First), 좋은 관계 맺기 (Right tribe), 신앙 가지기 (Belong) 등이 있다. 이를 블루존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그 결과 일반 지역 주민들의 암, 당뇨, 치매, 비만율 등 제반 퇴행성질환 발생이 저하되는 뚜렷한 개선 성과를 얻었다. 인위적 생활패턴 개선만으로도 보다 더 건강한 지역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은 불로촌을 생성하는 데 유의하게 지켜보아야 할 명제이다.
장수지역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종 사회변동 요인에 따라 얼마든지 순위가 바뀌게 된다. 인간이 불로장생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공간의 지역적 특수성이 여러 변동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불로촌 구축과 유지를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주민들이 협력하여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시사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