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구 칼럼] 대일외교엔 맞대응 보다 품격이 통한다

2020-03-1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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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교수]


세계보건기구(WHO)는 3월 1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팬데믹을 선언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지금 세계의 이목은 온통 미국의 대통령선거에 쏠렸을 것이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데, 초반에 부진했던 바이든이 약간 앞서가고 있는 형국이다. 바이든 진영은 2008년과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오바마의 당선과 재선을 이끌었던 제니퍼 딜론을 새로운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영입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일전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 정도에 따라 대통령선거 일정이나 판도에도 커다란 변화가 초래될지 모른다. 코로나19의 확산을 우려해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대규모 집회를 취소하거나 축소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73세)과 바이든 전 부통령(77세), 샌더스 상원의원(78세) 등 유력한 세 후보가 모두 70대라 코로나19에 취약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부터 30일간 영국을 제외한 유럽 국가들의 입국을 제한한다고 발표하면서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사전협의를 하지 않았다. 미국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데 모든 유럽 국가들과 사전협의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이 미국에 대해 관세를 인상할 때에도 미국과 협의하지 않았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치 아래 다자주의와 국제규범을 가볍게 여겨온 트럼프다운 변명이다.

3월 5일 밤 갑자기 아베 총리는 한국에 대한 입국 제한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3월 9일부터 한국 소재 일본 대사관과 총영사관이 발급한 사증의 효력과 90일 이내 일본 방문 시 한국 국민에게 적용했던 사증면제 조치의 적용을 3월 말까지 정지한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외교부,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사전협의 없는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으며, 우리도 3월 6일 밤 외교부 1차관이 이에 상응하는 조치로 맞받아쳤다.

일본에서 첫 번째 코로나19 감염자가 확인된 것은 1월 16일인데, 총리관저에 대책본부가 마련된 것은 1월 30일이다. 2월 24일 대책본부에 설치된 전문가 회의가 향후 1~2주가 확산 방지를 위한 중대한 갈림길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뒤에야 일본 정부는 25일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책 기본방침’을 결정했다. 아베 총리는 2월 26일 2주간의 대규모 이벤트 자제 요청에 이어 27일에는 초·중·고에 대한 갑작스러운 휴교를 요청해 국민을 당혹스럽게 했지만, 총리가 직접 국민에게 상황과 대책을 설명한 것은 2월 29일 저녁 6시에 열린 첫 번째 기자회견에서였다. 총리 발언과 질의응답 시간은 합쳐서 35분 정도에 불과했으며,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이날 지인들과 골프를 치는 등 지금까지 각료들의 부적절한 행동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일본 방문은 연기됐고, 급기야 비상사태선언이 가능하도록 신종 인플루엔자 등 대책특별조치법도 개정됐다. 마지막 보루였던 도쿄 올림픽의 정상적인 개최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2012년 12월 총선에서 압승해 정권을 탈환한 이후 2019년 7월의 참의원 선거까지 다섯 번의 국정 선거에서 승리한 아베 총리의 독주와 장기 집권 피로감 때문인지 정치가와 관료의 총리 눈치보기가 횡행하고 아베 총리의 생각과 말이 곧 국가 정책이 되면서 국민을 위한 정치는 교과서적인 언술로 전락했을 뿐이다. 정치의 실종이자 일본 민주주의의 위기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정책은 강제징용문제든 수출규제문제이든 일본의 조치에 맞대응하는 팃포탯(tit-for-tat) 성격이 강했다. 사실 지금까지의 대일외교는 늘 그랬고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중견국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 외교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대범하면서도 품위 있는 외교도 필요하다.

일본 정부가 한국과 중국에 대한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한 이면에는 최장수 재임 총리로 역사에 남게 될 아베 총리의 초조감이 작용했을 것이지만,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가 방역 이외의 ‘다른 의도’나 일본의 불투명하고 소극적인 방역 조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이란 단어를 사용하면서 비판했던 것도 적절하지는 않았다.

2016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미셸 오바마 대통령 부인은 막말과 극단적 언행을 일삼았던 트럼프 후보에 대해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라고 연설해 감동을 줬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입국 제한 조치에 대해 맞대응이 아니라 한·일 양국이 코로나19 확산 저지와 자국 내의 상대방 국민 보호를 위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면서 대응하자고 제안했더라면 어땠을까?  한국 정부의 이러한 포용적 태도는 일본인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으로 전해질 것이며, 갈팡질팡해온 일본 정부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것이 외교의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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