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에서 환영받았던 중국인 여행자가 갑자기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자국 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중국인의 입국을 제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후베이성 발급 여권 소지자와 후베이성에 체류했던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한 데 이어 후베이성 이외 지역으로 입국 제한을 확대하는 추가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국제적인 공중위생상의 비상사태를 선언했던 세계보건기구(WHO)는 무역이나 이동 제한을 할 정도의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 상태는 아니라며 신중한 입장이다. 그래서인지 지난달 30일 부임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는 4일 WHO의 권고에 따라야 한다면서 한국 정부의 입국제한 조치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신임장을 제정하지 않은 대사가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여는 것 자체가 외교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 싱 대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 방지와 치료를 위해 중국 정부가 취한 일련의 조치가 긍정적인 성과를 거둬 타국으로 확산되는 속도가 효과적으로 줄었다고 자신감마저 보였다.
그러나 발병 시작부터 이제 곧 두 달이 되어간다. 돌이켜보면 중국 정부의 초기 대응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한에서 원인불명의 폐렴환자가 처음 발생한 것은 지난해 12월 8일이었지만, 발원지로 알려진 우한의 화난시장이 봉쇄된 것은 올해 1월 1일이었다. 더구나 우한시 당국이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인정한 것은 1월 19일이 되어서다. 1월 20일 시진핑 국가주석은 철저한 전염의 확산 저지와 함께 정보 은폐에 대한 엄벌 방침을 발표했으며,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전문가팀이 사람 간 전염을 확인한 뒤인 23일 우한을 봉쇄하고 후베이성 내 다른 지역으로도 확대했다. 1월 25일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개최되고,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전염병대책공작영도소조의 조장으로 임명되어 춘제(중국 설) 연휴기간 중인 27일 우한을 방문했다.
더욱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적지 않다. 중국으로부터 부품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국내 자동차메이커의 조업 중단 뉴스가 벌써부터 들려오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운명공동체라고 말했다는 싱하이밍 대사의 말이 실감난다. 중국 이외 지역에서 확인된 감염자는 27개국, 239명에 달하는데, 일본·싱가포르·태국·홍콩·한국 등 중국과의 인적 왕래가 빈번한 나라에서 특히 많다.
그렇지만, 경제 규모나 인구 면에서 보면 한·중·일 세 나라 관계는 특별하다. 지난해 12월 24일 청두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중·일 세 나라는 경제적으로 ‘운명공동체’"라고 말했다. 2018년 한·중·일 간의 인적 왕래는 3000만명을 넘었으며, 세 나라 GDP 합계가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4%에 달한다. 정상회담 후에 채택된 ‘향후 10년 3국 협력 비전’이란 성과문서에서 정상들은 경제·사회·환경 분야에서의 협력과 더불어 건강하고 활력 있는 고령화의 촉진과 기후변화 대처, 재해 리스크 경감 등을 위해서도 협력할 것을 재확인했다.
회담 후의 공동언론발표에서 아베 총리가 강조한 대로 인적 유대는 상호이해의 기반이며, 정치·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어려운 문제가 있더라도 민간차원의 인적교류는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전염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의 이동이 차단되고 있다. 일시적이지만 불가피한 조치일 것이다.
치료약도 백신도 없는 상태에서 환자는 급증하고 있다. 하루빨리 이 사태가 수습되지 않으면, 중국 정부와 일정을 조정하고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한국과 일본 방문은커녕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도쿄올림픽의 개최도 어려워진다. 세 나라가 연속해서 개최하는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성공을 통해 우호와 협력의 정신을 촉진하기로 했던 세 정상의 합의는 수포로 돌아갈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대재앙이 초래될 수도 있다.
한국과 일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중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따듯한 지지와 성원을 보내면서 마스크나 보호 안경, 방호복, 장갑, 소독제 등 필요한 방역 물자의 지원을 포함하여 모든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중국에 대한 협력이야말로 편협한 내셔널리즘을 초월해 한·일 양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 정부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관련 정보를 숨김없이 공개하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