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측은 사고 직후 비상대책반을 가동했고, 화재 진화에 나섰던 소방당국과 경찰은 공조해 원인 규명에 나선 상태다. 서산시는 인근 주민들의 피해가 속출하자 롯데케미칼 측에 정확한 설명과 보상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날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인해 연면적 12만여㎡ 규모의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내부와 시설물이 전소됐다. 회사 측은 13개 시설 중 7개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인명 피해도 속출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이날 오후 5시 현재 공장 근로자와 주민 등 56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 중 화상을 입고 치료 중인 중상자는 2명이며, 이 중 롯데케미칼 50대 직원 1명은 위중한 상태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은 연간 매출액이 3조3000억원으로, 이는 지난해 롯데케미칼 전체 매출액 15조1235억원의 21.8%에 해당한다. 연 매출액의 5분의1을 차지하는 대형 공장인 만큼 회사 측의 피해도 상당할 전망이다.
회사 측은 "주요 공장이 가동 정지되면서 향후 생산 계획이 차질을 빚을 것 같다"면서 "재가동 일정은 향후 정비 상황에 맞춰 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고원인은 무엇? 방재센터까지 피해 입어 CCTV 영상 복구 중
이제 눈은 사고 원인으로 쏠린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납사(Naptha·나프타) 분해 공정 센터(NCC)에서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원유에서 뽑아내는 납사는 화학제품 원료를 만드는 데 쓰인다. 1200도 이상 초고온으로 납사를 열분해하면 에틸렌·프로필렌·열분해 가솔린 등을 생산할 수 있다.
현장 사고수습 책임자인 임오훈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장은 "직원들이 시간을 정해 공장을 돌며 살피던 중 폭발이 발생했다"며 "지난해 28일 동안 정비 보수를 해서 안전 설비를 갖춘 상태였는데 순간적으로 (원료 일부가) 누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압축 공정 배관에서 폭발이 난 것 같다는 공장 측 설명을 토대로 잔불 정리와 함께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경찰은 서산경찰서 강력팀원과 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원 등 15명가량으로 폭발사고 전담 수사팀을 꾸렸다. 폭발사고 공정으로 지목된 NCC에 대한 자료 수집과 사고 당시 상황을 담은 폐쇄회로(CC)TV 영상 확보에도 나섰다.
경찰은 인재(人災)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평소와 다른 압축이 가해졌는지와 원료에 불순물이 포함됐는지 등을 면밀히 살피겠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CCTV가 있는 방재센터까지 사고로 충격이 크다. 현재 녹화 영상을 복구하고 있다"며 "사고 당시 화면이 있는지를 살피는 한편 공장 관계자를 불러 진술을 받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임병연 대표 등 최고경영진 중심 대책반 꾸려...오후 사과문 발표
롯데케미칼은 대산공장 사고 발생 직후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중인 인원들까지 출근해 사고 수습에 나섰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임병연 롯데케미칼 대표이사를 비롯해 관련 부서 임직원이 출근해 사고 원인 규명에 착수했다"면서 "조속한 사고 수습과 2차 피해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사고 현장은 대산공장장이 책임지고 있으며, 임병연 대표는 이날 오후 서산 현장을 찾아 근로자를 비롯해 피해를 입은 서산 지역민들을 위로했다.
임 대표는 오후 5시 서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표한 사과문을 통해 "이번 사고로 부상과 피해를 입으신 분들께 깊이 사과 드리며 지역 주민, 협력업체, 주변 공단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죄송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사고로 인해 큰 불편을 겪은 지역 사회가 조속히 회복하고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회사가 할 수 있는 조치를 최우선적으로 마련하겠다"면서 "명확한 원인규명 및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도 관계 기관과 긴밀히 협의해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롯데케미칼은 사고 후 즉시 최고경영진으로 구성된 사고대책반을 구성, 부상자 회복을 포함한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서산시는 이번 사고 대책상황실을 대산읍 행정복지센터 3층에 설치했으며 사고 수습과 피해 규모 확인에 주력하고 있다.
맹정호 서산시장은 이날 오전 시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롯데케미칼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서산시민에게 상세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해줄 것을 요구한다"며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적절한 치료와 보상이 있어야 하며, 시민에게 공개적인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롯데케미칼 여수서도 사고...안전불감증 또 발동했나
롯데케미칼 공장에서 발생한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폭발사고를 비롯해 근로자 사망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회사 측의 ‘안전불감증’이 쉽사리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고 흑역사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롯데케미칼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공장에서 2003년 10월,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화상을 입는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뒤이어 2017년 7월 10일 전남 여수산단에 위치한 롯데케미칼 PP1공장에서도 화재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화재는 10분 만에 진화됐고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폴리프로필렌 대형 저장소 1기가 파손됐다.
그런데 같은해 10월 24일에는 울산시 남구 석유화학공단 롯데케미칼 울산공장에서 불이 나 9명의 근로자가 다쳤다. 불은 공장 본관동 2층 전기실에서 발생, 공장 자체 소방대에 의해 6분 만에 진화됐다. 하지만 진화 과정에서 근로자 9명이 화상과 연기 흡입으로 다쳐 4명의 중상자, 5명의 경상자가 발생했다. 그해 1월에는 여수 롯데 케미칼 공장에서 방사능 유출사고를 일으켜 지역에서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특히 이번에 사고가 난 서산 대산공장은 2013년에도 한 차례 화재가 발생해 한달여 간 공장 가동을 멈추기도 했다. 2015년에는 울산 롯데 케미칼 증류탑에서 불이 났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유독 롯데케미칼 공장에서 화재 등 폭발사고가 잊을만 하면 일어나곤 한다"면서 "이 정도면 사고가 아니라 인재 아니겠느냐"라고 꼬집었다.
결국 롯데케미칼의 공장 관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3월 그룹의 화학BU장에 오른 김교현 사장과 임병연 롯데케미칼 대표의 리더십 모두에 생채기가 불가피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