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은 밉든곱든 호흡공동체"…대재앙 연합군으로

2020-02-27 16:44
  • 글자크기 설정

박승준 논설고문 [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박승준의 지피지기(知彼知己)] 

나라 사이에는 국경이 있지만, 바이러스에게는 국경이 없다. 지난해 12월 8일 우한(武漢) 중심의원의 34세 리원량(李文亮) 안과의사가 발견한 CoVid19 바이러스가 중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서쪽으로는 중동의 이란을 넘어 유럽의 이탈리아로, 동쪽으로는 한국과 일본·태평양을 넘어 미국과 남미의 브라질로, 남극대륙을 제외한 6대륙으로 퍼져가고 있다. 사실상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확산)이다.
“중국은 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인가.” 지난 25일 중국 외교부 정례뉴스 브리핑에서 그런 질문이 나왔다. 이날까지 이틀에 걸쳐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국제문제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Global Times)가 “한국, 일본, 이란 등 3개국 정부는 중국 다음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환자가 많은데도 대응조치가 느리다”고 적반하장(賊反荷杖) 식의 사설을 쓴 데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확인하고 싶어서 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자오리젠(趙立堅) 대변인은 이날이 브리핑 데뷔 날이었다. 한국 KDI에서 공공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고, 워싱턴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1등 서기관과 주 파키스탄 공사급 참사를 지낸 뒤 24일 외교부 대변인으로 갓 부임한 터였다. 올해 48세의 자오리젠 대변인의 대답은 노련했다.

“우리 중국은 한국과 일본 국내의 코로나 바이러스 폐렴 감염상황을 우리의 것인 양(感同身受) 관심을 갖고 관찰하고 있다. 역정(疫情) 발생 이래 한국과 일본 정부와 국민들은 중국 인민들에게 보귀(寶貴)한 지원과 도움을 제공했다. 우리는 이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며, 중한일(中韓日) 3국이 가까운 이웃으로서 협력을 강화하기를 희망한다.”

자오 대변인은 26일 중국이 한국인들의 중국 입국을 제한하고 강제격리 조치를 취하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에는 “우리는 한국과 일본에 대해 투도보리(投桃報李·복숭아와 자두를 주고받으며 잘 지내다) 하고 싶지만, 역정(疫情)에는 국경이 없으므로 중국인과 외국인들의 건강과 생명 안전을 위해 특정 인원들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8일 리원량이 바이러스로 인한 폐렴환자 7명을 최초 발견한 이래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격히 늘자, 미국과 유럽 여론의 협공을 받아왔다. 2월 3일 미 뉴욕의 월 스트리트 저널은 “China is Real Sick Man of Asia(중국은 진짜로 아시아의 병자)”라는, 중국인들에게는 최대의 모욕적인 제목을 달아 코로나 바이러스 폐렴의 발생과 취약한 중국의 금융 시장을 한데 묶어 비난했다. “아시아의 병자”라는 말은 1840년 청 왕조가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참패해서 유럽과 미국·일본·러시아의 반(半)식민지가 된 상황을 가리키는 말로, 중국공산당은 아시아의 병자로 지낸 지 100년 만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 세기 남짓 만에 또다시 코로나 바이러스로 ‘둥야빙푸(東亞病夫)’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중국의 금융 시장은 우한의 야생동물 식재료 시장보다 더 위험하다”고 비아냥거렸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전염병 확산으로 수많은 중국인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와중에 인종적 편견에 가득 차 있는 비난을 한 월스트리트 저널은 비열하고, 냉혹하고, 오만하며, 방자하다”고 펄쩍 뛰면서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썼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뒤는 독일의 시사주간 슈피겔(Spiegel)이 이었다. “Coronavirus Made in China(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제)”라는 표지 제목을 단 슈피겔의 기사는 “(중국인들의) 코감기가 세계 경제에 독감이 되지는 않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중국에서 발생한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는 현대의 생활방식과 글로벌화된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독일 주재 중국대사관은 공식 웹페이지에 “슈피겔의 보도는 패닉과 상호 비난을 가져올 뿐이며 우리는 그런 차별을 경멸한다”며 슈피겔에 대한 비난 글귀를 올렸다.

중국 내부사정에 밝은 홍콩의 시사주간 아주주간(亞洲週刊)은 2월 10일 왕이(王毅) 외교부장 겸 국무위원이 전염병 공작 영도 소조(小組) 회의 석상에서 자신이 며칠 사이에 18개국 외교장관, 차관들과 전화통화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중국정부의 대처를 설명했다고 공개했다. 이런 시리즈 전화외교는 중국 외교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왕이가 통화한 나라들은 인도, 파키스탄, 러시아,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터키, 독일, 수단,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태국, 이집트,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 굵직굵직한 나라들이 포함돼 있었다. 아주주간은 왕이의 이런 외교를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에 흐르는 ‘배화역류(排華逆流·중국을 배척하는 역류)’에 대처한 중국의 응급외교”라고 표현했다.

미국과 유럽 미디어들의 중국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24일부터 이틀간 인도를 방문해서 중국 외교 당국자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숙적인 인도를 처음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모디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인도가 30억 달러의 미국 무기를 구매하기로 했다”면서 “나의 인도 방문은 생산적이었다”고 말했다. 인도는 헬파이어 미사일이 장착된 록히드마틴의 공격용 시호크 헬기 24대를 26억 달러에 구매하고, 6대의 아파치 헬기도 구매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또 “5세대(5G) 통신의 안보적 중요성을 모디 총리와 논의했다”고 밝혀, 인도가 추진 중인 5G 사업에 중국 화웨이의 참여 금지를 요구했음을 자랑했다.

중국 외교부 관리들에게 25일에는 뉴욕 타임스(NYT)의 사설이 다시 머리를 아프게 했다. NYT 칼럼니스트 로스 도덧은 “The Coronavirus is More than a Disease, It’s a Test(코로나 바이러스는 질병이 아니라 하나의 테스트)”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글로벌리즘의 약한 고리가 공격받게 됐다”면서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탈리아, 한국, 중동에서도 확산돼 팬데믹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예고했다. NYT의 주장은 “이번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확산은 2008년 미국의 경제 위기로 시작된 글로벌 경제가 또다시 어려워질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것이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직후 “지난 30여년간의 빠른 경제발전을 배경으로 이제 중국도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발언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국제사회의 두 축을 이루는 ‘신형 대국외교’를 추진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2013년부터는 아시아와 유럽을 한 덩어리로 연결하는 프로젝트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라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미 행정부는 일대일로 정책을 ‘지정학적 국제정치(Geopolitics)’로 규정하고, 중국의 숙적 인도와 군사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하와이의 태평양 함대 사령부를 ‘인도태평양 함대 사령부’로 개칭했다.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국이 리드하는 인류운명공동체”의 형성을 구호로 내걸었다. 시속 250~350㎞의 새로운 고속철도로 연결될 중앙아시아와 중동, 유럽의 실크로드 연결 국가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 “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네가 있다(你中有我, 我中有你)”는 구호도 만들어 전 세계에 전파해왔다. 그런 시진핑의 꿈들이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크게 흔들리게 됐으며, 이번 코로나19의 팬데믹 확산은 2002~2003년의 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생에 이어 두 번째의 위기를 중국에 안겨주고 있다.

위기를 느낀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26일 “역병이 중국의 현대민족국가를 시험하고 있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서방의 정객들과 매체들은 중국의 ‘비현대적’ 혹은 ‘전(前)현대적’인 특징들을 거론하면서 중국이 현대국가가 아니며, 현대적인 표준에 맞는 문명국가로 개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중국은 이번 바이러스 극복 과정에서 거국일치의 강인한 단결력과 행동력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현대민족국가임을 보여주었다”면서 “중국이 창도(唱導)하고 있는 인류운명공동체는 이 세계에 유익한 사상”이라고 제시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꿈은 중앙아시아를 넘어 중동과 유럽을 연결하는 운명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었으나 이번 코로나19의 팬데믹 확산으로 좌절의 위기에 놓이게 됐다. 중국은 자신들이 ‘근린(近隣·가까운 이웃)’이라고 부르는 한국과 일본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자 한국·일본 정부와 협력해야 할 필요를 깨달았다. “한국과 일본의 역정 상황을 중국의 것인양 ‘감동신수(感同身受)’하는 마음으로 관찰하고 있으며 한국·일본 정부와 협력하기를 원한다”는 것이 자오리젠 대변인의 말이었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중국·일본 세 나라는 티베트 고원과 히말라야 산맥 상공에서 줄발하는 기류와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에서 발원하는 황사바람의 영향권 내에서 ‘호흡공동체’로 살아온 것이 현실이다. 현재 한국에서 확산 중인 코로나19는 JP 모건의 예측에 따르면 ”3월 20일 1만명의 감염자를 내면서 피크(변곡점)"에 이를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한다면, 이런 호흡기 질환 바이러스의 확산을 우리는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밉든 곱든 함께 호흡공동체를 이루는 중국, 일본과 호흡기를 공격하는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3개국 협력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강구해보면 어떨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잡힌 뒤 하반기에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된 한·중·일 3개국 정상회의에서 호흡기 바이러스의 확산에 초기부터 공동대처하기 위한 3국 공동투자 공동연구 기구의 설립을 우리 정부의 제안으로 시도해 보기를 권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