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문화야. 그게 우리의 미래야. 아시아의 할리우드가 되자는 거지.”
1995년 3월 이재현 CJ그룹 회장(당시 제일제당 상무)은 누나인 이미경 CJ 부회장(당시 이사)과 함께 로스앤젤레스(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 제작사 ‘드림웍스SKG’의 투자 계약을 성사시키러 떠난 길이었다.
세계 영화팬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화면 곳곳에 담아낸 가장 ‘한국적인 풍경’에 주목했다. 전통마을이나 도심이 아닌, 우리네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골목길에도 해외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기생충’ 피자집, 20년 달인 사장님 맛집
지난 8일 오후 6시경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 있는 이른바 ‘기생충에 나온 피자집’을 찾았다. 지도상으로는 지하철 노량진역에서 걸어서 11분가량이라고 나왔지만, 막상 와보니 자동차를 이용했음에도 꽤 길 찾기가 어려웠다. 골목길이 굽이굽이 이어져서인 듯했다.
기생충 영화 속에서 이 가게는 송강호(기태)의 가족이 피자 상자를 접는 배경으로 등장한다. 사장님께 메뉴를 추천 받아 베이컨 포테이토 피자, 라지 사이즈를 주문했다.
보통 레귤러(보통)나 조각 케이크는 그만큼 재료를 적게 넣어야 하므로, 창작자가 구현하려 했던 맛보다는 떨어질 것이라는 나만의 철학도 있었다. 라지 사이즈 피자가 1만3900~1만6900원이라는 가격도 착했다.
피자를 기다리는 동안 배달주문이 이어졌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전문 앱은 쓰지 않는 듯, 전화벨 소리만 울렸다.
한쪽에 호프 메뉴판이 붙어있어, 고심 끝에 닭똥집도 주문했다. 동서양 맛의 조화를 완성했다. 자리마다 테이블보와 나이프가 놓인 것이, 1990년대 양식집을 연상케 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린 뒤 ‘한국식 피자’가 나왔다. 치즈양은 늘어지도록 풍부했고, 피자 도우 끝은 얇고 바삭했다. 배가 고파서도, 기분 탓도 아니었다.
이 가게의 사장님은 ‘우황청심환’으로 잘 알려진 솔표 조선무약 출신이다. 퇴사하고 10년을 제과제빵에만 매진했다. 노량진 골목에 이 피자집을 낸 것은 그 이후인 2002년부터다. 반죽을 치댄 세월만 30년 가까이다.
◆골목상권도 글로벌 관광명소로···문화사업의 힘
가게 입구에 걸린 현수막에는 ‘칸의 기운을 느껴봐 여기에서! 한국영화 대박! 봉준호 감독 부라보! 우리도 대박! 가즈아~쭈욱’이란 문구가 쓰여 있다. 봉준호 감독의 사인도 있었다.
좁은 노량진 골목과 칸영화제란 문구가 묘하게 어우러져 개성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분위기와 맛에 이끌려 맥주 한잔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영화 ‘기생충’과 함께 국내를 강타한 맥주 ‘테라’를 주문했다. ‘참이슬’과 함께 ‘테슬라(참이슬+테라 폭탄주)’를 만들어 홀짝홀짝 넘길 때, 드디어 사장님이 주섬주섬 방명록을 꺼내 오셨다.
영화 기생충이 각종 시상식을 휩쓸기 시작하면서, 일본과 말레이시아 등 해외 관광객들이 노량진 골목에 숨은 이곳 피자집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관광객들도 피자에 테라 한잔의 맛을 즐길 줄 안단다.
영화감독의 꿈을 안고 여기까지 찾아왔다며 어설픈 한국어로 쓴 일본인의 방명록도 있었다.
올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9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렸다. ‘기생충’은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각본·편집·미술·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까지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지난해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부터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품에 안았다. 미국 4대 조합상인 제작자조합(PGA)·감독조합(DGA)·배우조합(SAG)·작가조합(WGA)상 가운데 SAG 최고상인 앙상블상과 WGA 각본상 2개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