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한창 근무 중이던 서울 거주 직장인 A씨(38)는 휴대폰으로 전송된 문자메시지를 본 순간 부아가 치밀었다. 두달간 쉼없이 준비한 풀코스 마라톤 대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우려로 전격 취소됐기 때문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로 그의 한 달 스케줄 가운데 절반이 날아갔다. 일정대로 지켜진 약속은 손에 꼽을 정도다.
A씨는 한달 전 퇴근길에 정부가 ‘우한시 원인불명 폐렴 대책반’을 가동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만 해도 지난해 9월 발생했던 흑사병처럼 해외토픽이려니 하고 가볍게 여겼다.
하지만 지난달 20일 보건당국이 감염병 위기 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격상하며 A씨의 불안지수가 올라갔다.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으로 확인된 탓이었다.
나흘 뒤 2~3번째 확진자가 발생하며 길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직장 동료와 점심시간에도 신종 코로나는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됐다. 동료들은 이달 일본 교토 여행 상품을 계획한 A씨에게 취소를 적극 권했다.
5번째 확진자가 나온 지난달 30일 전후로 신종 코로나와 관련한 확인되지 않은 온갖 정보가 카카오톡 메신저를 타고 전해졌다. 특히 “눈만 마주쳐도 전염된다”, “중국산 김치에 바이러스가 포함됐다” 등은 심란함을 더했다. 결국 31일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대해 “엄정 대처하겠다”고 밝혔지만 불안감은 가라앉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여행사에서는 일본 패키지 상품의 취소를 알려왔다. 신종 코로나 여파로 수수료 없이 해당 상품을 취소한다는 메시지였다. 취소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에 안도하면서도, 기대했던 여행을 망친 A씨는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A씨는 마스크를 사려고 퇴근길에 약국 몇 곳과 편의점을 들렀지만 이것 역시 허탕이었다.
지난 1일 저녁에 예정됐던 동창회 모임이 취소됐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지난 연말 송년회를 못 나갔던 터라 한껏 설레었던 모임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로 취소한다는 지인의 전화에 달리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신종 코로나 확진자는 모두 15명으로 늘었다. 특히 12번 확진자 동선이 발표되던 지난 2일 A씨는 부천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이번 주말 내려가겠다는 A씨를 부모님은 “부천에 확진자가 나왔으니 안 오는 게 좋겠다”며 만류했다.
A씨와 같은 사례가 늘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될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미치는 악영향이 내수 소비재 업체들로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성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3일 “한국에서도 확진자 수가 늘면서 신종코로나는 국내 소비심리에도 조금씩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만약 국내 확진자 수가 추가로 증가하거나 사망자가 발생한다면 소비 관련 지표는 예상보다 부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