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 칼럼} 규제 개혁 강조해도 잘 안되는 이유는

2020-01-1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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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하 교수]



2020년 새해와 1년 전 새해와 비교할 때, 2019년 새해는 비교적 낙관적으로 시작되었지만, 2019년 내내 미·중 무역마찰 등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 여파로 2020년에 대한 전망도 그리 밝지는 않다. 최근 세계은행은 2020년의 세계경제 성장률을 2.5%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6월 전망치보다 0.2% 하향 조정한 것이다. 선진국은 –0.1%p 조정된 1.4%, 신흥개도국은 –0.5% 조정된 4.1%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2017년 3분기에 경기 호황의 정점을 찍은 이후, 2018년 2.7%, 2019년 2.0%로 하락 추세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2019년은 투자와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정부의 확장재정을 통한 소비 진작으로 그나마 경제를 유지했던 한 해였다. 이러한 하향 국면이 언제쯤 종식될 것이냐가 중요한데, 아직 그러한 징후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지 않다. 11월 실업률이 3.1%로 낮아지고, 생산관련 지표가 미소하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정부의 확장재정으로 인한 단기 효과일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회복 전망이 있지만, 2018년 이후 경제 침체에 따른 기저효과가 반영된 것일 뿐, 세계 경제가 위축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만 독야청청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인적자본과 실물 투자 촉진, 기술 도입과 혁신을 위한 기업 역량 강화, 성장 친화적 거시경제 및 제도적 환경 조성 등 생산성 향상과, 건전한 부채 관리 시스템 구축, 엄격한 금융 규제 및 감독 등을 주문했다. 생산성 증가가 둔화되고, 성장률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부채에 대한 경고가 담긴 것이다. 최근 증가하고 있는 무역분쟁도 세계 경제가 양적으로는 팽창하고 있지만, 선진국들이 선도하는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기술혁신에 기반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보호무역주의로 흐르고 있다 볼 수 있다.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와 같이 자원이 없는 선도국은 혁신이 없으면 1990년대의 일본과 같이 침체의 늪에 들어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정부는 2020년 연구개발 분야에 24.2조원을 투입하는 등 혁신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지만, 혁신은 정부가 돈을 푼다고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기업이 중심이 되어 더욱 절실하게 혁신해야 그 혁신의 성과도 크고 길게 갈 수 있다. 정부는 기업이 혁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하고, 규제 개혁은 바로 그러한 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그렇게 규제 개혁을 강조하지만 잘 안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실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 규제 개혁을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에 이제 쉽게 해소될 수 있는 규제는 거의 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IT나 바이오(BIO)와 같은 신규 산업이 생겨날 때, 이들 산업에서 사업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행정상 규제나 절차만 완화하거나 간소화 해주면 된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데이터 관련 3법 개정안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수도권 규제, 농지 규제, 토지 및 주택 이용 규제 등과 같이 낡고 오래된 규제, 산업진흥 차원에서 만들어진 사업영역별 보호 규제, 변호사 의사 등과 같은 자격증 규제, 보건 안전 환경 차원에서 만들어져 필요한 규제라고 불리는 것 등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게다가 해마다 부담이 늘고 있는 조세 및 사회보험료도 규제 중의 규제이고, 최저임금 법정퇴직연금, 노동시간 관련 각종 법령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들 규제는 경제·사회개발 과정에서 선진국 제도를 벤치마킹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둘씩 만들어진 한국과 국민을 묶어 놓고 있는 국가 규제 시스템이다. 규제별로 보면, 그 당시에는 모두 필요해서 만든 규제로 이들이 모이고 모여서 안정적이고 견고한 대한민국을 만들었지만, 그 안정성과 견고함의 다른 이름은 경직성과 고착성이 되어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소소하지만 불편한 규제 해소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 되고 대한민국을 이루고 있는 국가 시스템 규제를 미래지향적으로 풀어야 하는데, 이들 규제의 특징은 그 규제 이면에 이익을 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기득권층이라고 불리는 지대(rent) 추구자는 특정 한 집단이라기보다는 모든 국민 각각이 어떤 규제로 이익을 얻고 있고, 나머지 국민은 규제로 피해보는 상황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 각각이 ‘내로남불’이 될 수 있다.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을 뿐 ‘갑과 을’이 언제나 역전될 수 있는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 시스템 전반에 깔려 있는 규제는 전 국민 각각이 ‘역지사지’의 자세로 양보하지 않는 이상 해결되기 어렵다. 국민 각자가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으면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양보한 더 큰 규제 풀림으로 혜택을 볼 수 있지만, 이는 국민 모두가 상호 신뢰하는 사회에서 가능하다. 그러한 신뢰를 선도해야 할 정치권에서 오히려 국민갈등을 부추기는 우리 현실이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2020년은 상호신뢰라는 사회자본을 높이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는 원년이 되었으면 한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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