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미국은 무력 대응을 시사하면서 2020년 한 해는 우리 대한민국 외교에 적지 않은 시련이 닥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연일 나오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한반도의 봄’이 곧 도래할 것 같았는데 현실은 전혀 다른 모습이라서 그런 듯하다. 지난 12월 한·중정상회담을 개최한 후 중국의 ‘한한령’ 완화와 시진핑 주석의 방한 가능성 보도는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올해에도 북한의 도발 여부 등 여러가지 주요 변수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새로운 전략무기’로 미국에 직접 공격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북한의 실제 도발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미 역사적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 주석의 답방문제도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국과의 갈등으로 무산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중국은 작년 11월 주한중국대사를 통해 갈등의 잠재성을 이미 피력했다. 미·중 양국 간에 비롯된 갈등문제를 두고 두 나라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과거와 같은 대응 책략은 실용성과 유효성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이 우리에게 무역시장의 가치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공식이 설득력을 상실한다는 방증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4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에 각자 재선 켐페인에 나서면서 북측에 도발 자제 요청을 비밀리에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정부 당국은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보내는 김정은 위원장의 생일을 축하하는 친서를 전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튿날인 11일 북한은 이를 미국과의 비밀 경로를 통해 직접 전달 받았다고 반박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우리 정부 당국의 역할 진실 여부가 아니다. 대신 친서의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특히 미 대통령의 재선의 해라는 관점에서 과거 미 대통령이 북한에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전례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유추해 볼 때, 트럼프 대통령 역시 친서에서 김정은의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와 함께 과거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도발을 자제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을 포함시켰을 가능성이 많다.
북한은 2004년과 2012년에 실제로 도발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4년에는 북한의 핵과 장거리 미사일의 개발 수준이 현저하게 낮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대포동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하지 않았다. 2012년에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 유세가 시작되기 전이었던 4월에 장거리 로켓 ‘은하-3호’를 발사했다. 그러나 결과가 실패로 판명된 후 북한은 더 이상의 핵이나 미사일 발사시험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한다. 재선 이후 미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는 변화가 생기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대화에 적극 나서는 전략으로 선회하면서 대북 접촉과 협의가 빈번해지는 유형이 나타났다.
둘째, 올해로 예정되었다는 시진핑 방한은 미·중 양국의 군사적 갈등문제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한·미 양국 간에는 방위비 분담 협상이 올 상반기에 결정되어야한다. 이 과정에서 중거리미사일 배치 문제가 대두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가 거론되면 중국은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이미 작년 11월 28일 국회에서 개최된 회의석상에서 당시 주한중국대사 추궈훙은 “미국이 한국 본토에 중국을 겨냥하는 전략적 무기를 배치한다면 어떤 후과(後果)를 초래할지 여러분들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전했다. 그가 사드배치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와 유사한 경고를 전한 지 딱 5년(2014년 11월 27일) 만에 또다시 같은 상황이 재연되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미·중 간 중거리미사일 배치문제의 갈등이 불거지면 시 주석의 답방은 유보될 공산이 크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대 중국 무역관계 변화로 인해 더 이상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분법적 외교 전략이 그 실효성을 상실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의 대 중국 무역의존도는 높다. 전체 무역에서 대중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25%를 상회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지난해 우리의 대 중국 무역의 흑자규모가 2018년의 556억 달러에서 작년에 257억 달러로 반 토막 난데 있다. 흑자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2007-8) 이후 최저치이다. 사드 사태 후유증으로 2016년에 우리의 대 중국 흑자는 374억 달러로 급감했지만 이후 회복했다. 여기서 우리는 2019년의 흑자규모가 한 해 만에 대폭 감축된 이유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이유를 더 이상 사드문제에 결부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부 분석과 같이 반도체 수출의 감소와 석유제품의 단가 하락 등 시장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현실적으로 공감이 가는 대목은 중국이 4차 산업 혁명의 혁신적인 발전으로 중국 경제가 대전환 시기에 진입한 사실이다. 이런 대전환 속에서 우리의 대 중국 수출 주력산업인 가공업이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한한령’ 제재조치의 완화로 중국 관광객의 방한 규모 회복으로 대 중국 경상수지 구조 개선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뒤떨어진 전략사고라고 할 수 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의 대 미국 흑자규모의 폭도 2016년 이후 4년 연속 감소한 데 있다. 2016년의 232억 달러에서 2019년 109억 달러로 50% 이상의 하락폭을 기록했다. 우리 경제의 무역의존도가 거의 70%에 이르는 사실을 감안하면 무역수지는 우리 경제에 직격탄이다. 우리 무역의 최대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 우리가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와 관련 4차 산업 혁명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우리 정부당국의 안일한 대처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부의 전략적 사고방식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구조적 변화로 더 이상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분법적 외교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보다 현실에 현실에 부응하는 새로운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한·미관계의 변수에서 이제 중국이 서서히 퇴장하고 있다. 한·중 관계의 변수에는 미국만이 존재한다. 최근 서울대에서 발표한 국민의 통일의식 설문결과에서 나타나듯 국민의 82%가 미국의 협력적 동반자의 가치에 동의한다. 국민의 대다수가 인지하는 것을 이젠 정부도 수용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