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관계 부풀리기 이제 그만

2019-12-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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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은 웃고 있지만 王은 웃지 않았다...笑韓怒中

 

[주재우 교수 ]


[주재우의 프리즘] 

미·중 간 패권경쟁구도가 날로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2019년이 저물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한국 정부는 내년도 중국발 훈풍 기대감에 들떠 있는 분위기인 듯하다. 특히 ‘고고도 미사일 방어시스템(THAAD·사드)’가 한국에 배치된 이후 4년 8개월 만인 지난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방한을 계기로, 한·중 정상회담 개최와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보복성 조치가 해제될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폭풍전야를 방불케 하는 음산한 기운이 우리 앞을 감돌고 있다. 2020년도 한·중관계는 미·중 패권경쟁 속에 폭풍우를 맞을지, 아니면 정부의 기대대로 훈풍을 맞을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현실적으로 미·중관계의 태풍 속에서 한중관계가 ‘훈풍’을 맞을 공산은 매우 낮다. 우리 정부가 현실을 호도한 탓이다. 한·중관계의 눈엣가시, 즉 사드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노력과 성과도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 방문이 내년에 성사될 것이라는 바람을 잔뜩 불어넣고 있다. 더욱이 오는 23~24일 중국 청두에서 개최되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중 간 양국 정상회담 개최도 조율하면서 이런 장밋빛 분위기를 고조시키려 하고 있다. 역대 한·중·일 3국 회의가 중국에서 개최되어도 중국의 국가주석이 친히 우리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년도 한·중관계가 어떠한 모습일지는 곧 주한 중국대사직을 떠나는 추궈훙 대사의 최근 발언에서도 암시되었다. 지난 11월 28일 그의 ‘고별 강연’ 자리를 보도한 우리 언론은 하나같이 왕이의 12월 초 방한 의미로 그가 내밀 중국의 제재 완화 가능성과 한·중관계의 복원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추 대사 강연의 핵심내용은 우리에게 암울한 과거를 상기해주는 경고로 가득 찼다.

그의 경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미국이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탈퇴한 이후 한국과 일본 등에 새로운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한국에 중국을 겨냥하는 전략적인 무기를 배치한다면 어떤 후과(後果·좋지 못한 결과)가 있을지 여러분(한국 청중)들은 충분히 상상하실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정부는 충분한 정치적 지혜를 가지고 있으므로 잘 대응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조롱 섞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과거 사드사태 직전 그의 2014년 발언을 다시 한 번 상기하라는 메시지였다.

이렇게 중국의 일개 대사의 발언이 중요한 이유는 선례 때문이다. 중국 외교에서 대사의 발언은 중국공산당의 입장을 담고 있다. 그래서 대사의 입에서 비롯된 경고는 결국 중국 고위급인사를 거쳐 최고지도자까지 상승하는 사실이 이미 선례에서 입증되었다. 우리 정부가 사드 배치를 고려한다는 설이 나오기 시작하던 2014년도 말에도 중국 측의 경고는 대사에서 시작됐다.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그의 경고 발언은 5년 전인 2014년 11월 27일에 이뤄졌다. 그때 그는 “이런 (사드 배치) 문제들이 중국의 안보이익을 훼손한다면 한·중 양국관계는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다”고 엄중 경고했다. 그러면서 “(관계가 파괴될 경우)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며, (회복하는 데)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우리 정부는 일개 대사의 발언으로 치부하며 설마 하는 안일한 태도로 방관했다.

추 대사의 발언 이후 이듬해 2월부터 중국 정부 고위급 인사들의 경고가 잇따라 전해졌다. 2015년 2월 중국 국방장관의 방한을 시작으로 3월의 외교부장 조리(助理·비서관급 차관인사)의 방한, 그리고 2016년 2월 28일 6자회담의 의장직이었던 우다웨이(武大僞) 중국 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까지 고위급으로 상승했다. 경고의 절정은 역시 그해 3월 시진핑 주석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중국의 경고 패턴을 보면 이번 추 대사의 ‘고별 강연’에서 그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가능성에 대한 경고성 시사발언을 그냥 흘려 넘겨서는 안 된다. 

중국의 사드 미해결 인식 발언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17년 11월 동아시아정상회의와 아세안+3 회의에서 시 주석과 리커창 총리 모두가 우리 대통령에게 사드의 ‘단계적’ 해결을 위한 노력을 철저히 할 것을 전했다. 지난 6월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이번 정권 출범 후 여섯 번째 가진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시 주석은  한결같이 사드문제의 해결을 두 가지 측면에서 촉구했다. 한편으로는 “한국이 계속 중시해야 하는 문제의 협상 타결”을 강조하면서 미국과의 사드문제를 해결하는 데 노력을 배가할 것을 주문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한 협력이 상호이익으로 ‘윈-윈’하는 것이기에 외부 압력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면서 우리 대통령에게 친절하게 방법까지 일러줬다. 즉, 사드뿐 아니라 올해 불거진 화웨이와 중국산 5G 제품 사용문제, 그리고 미국의 INF조약 폐기로 대두되는 한국의 중장거리 미사일 배치에 관한 미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 우리만의 해법과 입장정리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사드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현재도 중국과 평행선을 걷고 있다. 이는 2017년 10월 외교장관회담과 12월 대통령의 방중에서 이른바 ‘3불(不)’ 약속을 통해 사드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굳건한 믿음에서 비롯됐다. 10월 국회 청문회에서 외교부장관은 ‘3불’에 대해 사드의 추가배치가 없을 것이고, 미국의 미사일방어(MD)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며, 한·미·일 군사협력관계의 강화도 없는 것으로 정의했다.

문제는 ‘3불’ 약속이 엄연한 ‘약속’이라는 사실에 있다. 즉, 미래지향적 함의를 내포한다. 앞으로 이 세 가지 사안의 발생을 불허한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사드의 추가배치는 아직 논할 단계가 아니라는 데 맹점이 있다. 우리 정부는 환경평가를 빌미로 유치한 사드의 ‘실전 배치’를 무기한 연장하는 꼼수를 펴면서 덮어두려 한다. 따라서 추가배치가 없을 것임을 보장할 수 없다. 두 번째 약속으로, 미국의 MD체계에 편입하지 않는다는 선언도 어불성설이다. 사드 배치로 이미 이에 편입한 것이다. 세 번째 약속인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는 발전하지 않을 수 있겠으나 안보협력 강화의 기초인 지소미아의 연장을 지난달에 허용했다. 따라서 중국은 ‘3불’에 대한 우리 정부의 약속을 불신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우리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주 방한한 왕이 외교부장의 노골적인 발언으로 표출됐다. 그는 시 주석의 과거 발언을 재현하면서 한국이 자신의 국익을 고려하는 가운데 더 이상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것을 종용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또한 대통령을 면전에 두고 미국의 ‘횡포’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미국의 70년 동맹국에 미국의 외교를 대놓고 비판한 것이다. 그는 미국의 일방주의, 강권정치, 패권정치, 보호주의와 내정간섭 식의 외교행태를 비판하면서 우리의 정·재계 인사와 대통령에게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기치를 맞들 것을 거듭 촉구했다.

표면적으로 그의 다자주의와 자유무역 수호의 필요성 발언은 지당하게 들린다.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문맥상 행간의 의미를 보면 이런 발언의 의도는 한·미동맹을 이간시키고 격리(decoupling)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3불’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채, 한·중관계가 중거리 미사일 배치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등과 같은 더 많은 엄중한 문제로 더 큰 암초를 만날 가능성에 대한 중국 지도부 내 우려를 전한 것이다. 우리 정부에 대한 중국의 불신이 한 층 더 고조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시 주석의 방한을 기대해도 좋은지 반문하고 싶다. 외교는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성사되는 것이다.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려는 안일한 태도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외교에서 위기의 고비만 넘기고 사태 해결을 회피하려는 사례를 보면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의 가장 비근한 실증사례가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제는 한반도의 모든 이가 이 같은 외교적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니, 한쪽이라도 이런 오명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진정한 수호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진중한 외교를 반드시 선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외교적 입장과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의미와 우리의 안보이익이 무엇인지 상대국에 명확히 각인시켜 주고 이 같은 명제의 범주 내에서 외교적 타협과 해결, 협력과 협조를 모색해야 한다. 그래서야 정부가 호언장담한 ‘정정당당’한 외교의 진면목을 발휘한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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