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지난 22일 한국 정부는 8월에 취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에 대한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했다고 발표했다. 사실상의 연장 조치이다. 한국과 일본 간에는 이를 두고 자신의 외교적 ‘승리’라며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유치한 언쟁을 벌이고 있다. 외교에 ‘승리’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협상을 통해 이뤄진 타협은 어느 일방의 승리 때문이 아니고 국익에 부합하면 수용 또는 수긍하는 것으로 맺어지는 결론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외교에서 타협은 매우 상대적인 정성적 결과다. 한·일 두 나라는 그러나 타협의 결과를 외교적 ‘승리’로 호도하면서 각자의 외교력을 과시하려 하고 있다. 또한 각자의 청중에게 이를 피력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굴복만을 강조하면서 어렵게 이뤄진 타협을 한·일 양국의 관계 개선과 발전에 호기로 전환하려는 지혜와 성의를 발휘하지 않고 있어 실로 안타깝기 짝이 없다.
‘외교적 승리’라는 선전문구가 국내용임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협상에서 각자가 제시한 사안을 상대방이 어떤 연유로 수용하거나 수긍했는지에 대한 사실관계를 감추려 들기만 하는 데 있다. 현재 한·일 양국 정부의 주장은 모두 일방적이다. 어느 한쪽이 거짓 선전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교에서 협상의 ‘승리’가 존재한다면 어느 일방이 압도적인 이득을 취하는 결과가 따라야 한다. 그러나 한·일 양국이 ‘승리’를 자축할 수 있는 근거는 아직 없다. 당장 취한 이득도 없어 보이고 이는 대신 앞으로의 협상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연장 결정이 ‘조건부’이며 ‘일시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승리’를 얻었다고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그 조건은 우리가 일본의 백색 리스트 제외 건의 WTO 제소를 취하하고 일본 역시 우리의 백색리스트 복원을 전제로 양국 간의 ‘수출관리 정책 대화’에 응하는 것이다. 대화의 위상을 과장급에서 국장급으로 격상시키는 데 일본이 동의한 사실을 승리의 근거로 제시한다. 참으로 유치하다. 그러면서 정부는 대화 기간 동안만 지소미아의 한시적인 유효성을 거론하며 일시적인 연장이라는 입장을 합리화했다.
이런 정부의 해명에도 미심쩍고 개운치 않은 부분들이 있다. 협정의 효력 유지가 ‘조건부’이고 ‘일시적’이라는 설명은 오히려 입장 선회를 합리화하는 데 급급해 보였다. 왜냐면 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선 외교사에서 국제협정의 효력이 ‘조건부’이고 ‘일시적’인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러나 한·일 양국이 각자의 조건을 맞교환했기 때문에 협상 기간 동안이나마 지소미아가 일시적으로 유효하고 조건의 수용 여부에 따라 지소미아의 1년 유효기간이 확정될 것이기에 조건부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문제는 외교사에서 자동연기조항이 포함된 그 어떠한 국제 조약, 협정, 합의서에도 정부가 주장하는 식의 ‘조건부’와 ‘일시적’인 연장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방적인 탈퇴나 파기만 존재한다. 결국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일본이 우리의 요구조건에 불응하면 언제든지 또다시 종료를 통보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일방적인 파기를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파기는 가능하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신뢰를 상실하지 않는 범위와 수준에서 이뤄져야 하고 설득력 있는 명분과 대안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의 행보로 봐서는 이런 준비가 없다는 합리적 의심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여기서 석연치 않은 두 번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일본이 우리 정부의 요구를 거부할 가능성을 배제하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의 일본 백색리스트의 복원문제가 징용배상문제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 결과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는 구조 때문이다. 즉, 이 문제의 해결 없이 일본이 우리의 요구를 수용할 리 만무하다. 일본이 우리 기업의 관리규제기록의 양호성과 같은 정치적인 명분을 내세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다. 관건은 우리 정부가 일본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절충안의 유무 여부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대법원의 판결만 고수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마련이 지지부진한 사실만 놓고 보면 이 문제의 협상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세 번째로 미심쩍은 부분은 우리 정부가 입장 선회의 이유를 미국의 외교적 압박에 따른 결과라는 주장을 부정하는 사실이다. 정부는 일각에서 관측하는 지소미아 종료 철회를 수용함으로써 미국의 급격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폭을 감축하는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는 주장마저도 부인한다. 그러면서 지소미아 문제가 한미동맹과 별개 문제라고 일축했다. 더 나아가 지소미아문제가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 사안이 아님을 강조했다. 맞는 설명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의 양상을 드러냈다.
미국의 외교적 압박 역공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들어 왔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우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예방한 미 국방장관의 면전에서 지소미아의 연장 거부를 밝힌 것이 이의 방증이다. 그런데 미국 내의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사태의 심각성은 지난 21일 미 상원에서 드러났다. 미 상원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지소미아 연장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결의안의 통과로 이제 지소미아의 문제가 관련 부처 간 협상 의제의 수준을 넘어섰음을 알리는 경고였다. 이제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연장 거부 문제가 미 국무부나 백악관과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 우리의 거부 의사가 미국과 미 국민의 의사를 거부하는 행위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는 결의안의 내용 때문이다.
결의안은 한미동맹과 미국의 전략이익 가치에 대한 우리 정부의 존중 의사와 의지를 매우 노골적으로 의심하는 문구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지소미아가 주한미군의 생명을 담보하는 장치로서 가지는 의미와 한미동맹, 한·미·일 군사협력의 전략적 가치와 미국의 지역 전략이익 수호에 가지는 절대적 의미를 극대화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지소미아 파기로 북한, 중국과 러시아가 취할 수 있는 군사전략적 편익을 명시화하면서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극도로 축소시켰다. 정부의 자승자박의 결과다.
이 대목에서 얼마 전 방한한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10월 25일)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11월 16일)의 발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지소미아 폐기의 최대 수혜자이며 가장 기뻐할 나라들이 북한, 중국, 러시아 등 3국이라고 강조했다. 그때 정부는 이들의 주장을 트럼프 정부 내의 특정 당파, 즉 ‘매파’의 것으로만 치부하는 경솔함을 보였다. 그러나 결의안의 통과로 이런 인식이 미국 내에 일반적이라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미 상원의 결의안은 일본에게도 엄중한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일 두 나라는 전례에도 없는 외교적 승리를 운운하고 있다. 진실은 곧 밝혀질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그 진실이 밝혀지면서 어느 나라도 체면을 구겨서는 안 된다. 서로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진솔해져야한다. 협상을 통해 타협한 외교결과를 민족주의로 채색시켜 국내정치의 선전도구로 더 이상 동원해서도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더 이상의 모순적인 발언도 삼가야 한다. 대통령은 지난 19일 취임 후 가진 첫 ‘국민과의 대화’에서 지소미아 연장 문제의 원인 제공을 전적으로 일본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모순에 모순을 거듭하는 발언으로 입장 해명에 일관했다. 그는 일본이 “한국을 안보상으로 신뢰할 수 없다면서 (지소미아를 통해) 군사정보는 공유하자고 한다면 그건 모순되는 태도”라며 일본을 비판했다. 앞서 언급한 문제의 인과관계를 망각한 발언이다. 그러면서도 “지소미아가 종료되더라도 (한·일 간) 안보협력은 해나가겠다”고 밝힌 것은 역지사지가 부족한 사고에서 나온 발언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외교 결과에는 절대적 ‘승리’가 없다. 대신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절충된 전략적 선택의 결실만이 존재한다. 더 이상 국민을 호도하지 말고 진정된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발휘하여 진정한 중견국 외교의 면모를 보여줄 것을 간곡히 촉구한다.
다시 말해, 외교에서 타협은 매우 상대적인 정성적 결과다. 한·일 두 나라는 그러나 타협의 결과를 외교적 ‘승리’로 호도하면서 각자의 외교력을 과시하려 하고 있다. 또한 각자의 청중에게 이를 피력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굴복만을 강조하면서 어렵게 이뤄진 타협을 한·일 양국의 관계 개선과 발전에 호기로 전환하려는 지혜와 성의를 발휘하지 않고 있어 실로 안타깝기 짝이 없다.
‘외교적 승리’라는 선전문구가 국내용임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협상에서 각자가 제시한 사안을 상대방이 어떤 연유로 수용하거나 수긍했는지에 대한 사실관계를 감추려 들기만 하는 데 있다. 현재 한·일 양국 정부의 주장은 모두 일방적이다. 어느 한쪽이 거짓 선전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교에서 협상의 ‘승리’가 존재한다면 어느 일방이 압도적인 이득을 취하는 결과가 따라야 한다. 그러나 한·일 양국이 ‘승리’를 자축할 수 있는 근거는 아직 없다. 당장 취한 이득도 없어 보이고 이는 대신 앞으로의 협상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런 정부의 해명에도 미심쩍고 개운치 않은 부분들이 있다. 협정의 효력 유지가 ‘조건부’이고 ‘일시적’이라는 설명은 오히려 입장 선회를 합리화하는 데 급급해 보였다. 왜냐면 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선 외교사에서 국제협정의 효력이 ‘조건부’이고 ‘일시적’인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러나 한·일 양국이 각자의 조건을 맞교환했기 때문에 협상 기간 동안이나마 지소미아가 일시적으로 유효하고 조건의 수용 여부에 따라 지소미아의 1년 유효기간이 확정될 것이기에 조건부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문제는 외교사에서 자동연기조항이 포함된 그 어떠한 국제 조약, 협정, 합의서에도 정부가 주장하는 식의 ‘조건부’와 ‘일시적’인 연장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방적인 탈퇴나 파기만 존재한다. 결국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일본이 우리의 요구조건에 불응하면 언제든지 또다시 종료를 통보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일방적인 파기를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파기는 가능하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신뢰를 상실하지 않는 범위와 수준에서 이뤄져야 하고 설득력 있는 명분과 대안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의 행보로 봐서는 이런 준비가 없다는 합리적 의심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여기서 석연치 않은 두 번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일본이 우리 정부의 요구를 거부할 가능성을 배제하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의 일본 백색리스트의 복원문제가 징용배상문제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 결과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는 구조 때문이다. 즉, 이 문제의 해결 없이 일본이 우리의 요구를 수용할 리 만무하다. 일본이 우리 기업의 관리규제기록의 양호성과 같은 정치적인 명분을 내세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다. 관건은 우리 정부가 일본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절충안의 유무 여부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대법원의 판결만 고수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마련이 지지부진한 사실만 놓고 보면 이 문제의 협상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세 번째로 미심쩍은 부분은 우리 정부가 입장 선회의 이유를 미국의 외교적 압박에 따른 결과라는 주장을 부정하는 사실이다. 정부는 일각에서 관측하는 지소미아 종료 철회를 수용함으로써 미국의 급격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폭을 감축하는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는 주장마저도 부인한다. 그러면서 지소미아 문제가 한미동맹과 별개 문제라고 일축했다. 더 나아가 지소미아문제가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 사안이 아님을 강조했다. 맞는 설명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의 양상을 드러냈다.
미국의 외교적 압박 역공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들어 왔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우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예방한 미 국방장관의 면전에서 지소미아의 연장 거부를 밝힌 것이 이의 방증이다. 그런데 미국 내의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사태의 심각성은 지난 21일 미 상원에서 드러났다. 미 상원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지소미아 연장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결의안의 통과로 이제 지소미아의 문제가 관련 부처 간 협상 의제의 수준을 넘어섰음을 알리는 경고였다. 이제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연장 거부 문제가 미 국무부나 백악관과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 우리의 거부 의사가 미국과 미 국민의 의사를 거부하는 행위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는 결의안의 내용 때문이다.
결의안은 한미동맹과 미국의 전략이익 가치에 대한 우리 정부의 존중 의사와 의지를 매우 노골적으로 의심하는 문구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지소미아가 주한미군의 생명을 담보하는 장치로서 가지는 의미와 한미동맹, 한·미·일 군사협력의 전략적 가치와 미국의 지역 전략이익 수호에 가지는 절대적 의미를 극대화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지소미아 파기로 북한, 중국과 러시아가 취할 수 있는 군사전략적 편익을 명시화하면서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극도로 축소시켰다. 정부의 자승자박의 결과다.
이 대목에서 얼마 전 방한한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10월 25일)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11월 16일)의 발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지소미아 폐기의 최대 수혜자이며 가장 기뻐할 나라들이 북한, 중국, 러시아 등 3국이라고 강조했다. 그때 정부는 이들의 주장을 트럼프 정부 내의 특정 당파, 즉 ‘매파’의 것으로만 치부하는 경솔함을 보였다. 그러나 결의안의 통과로 이런 인식이 미국 내에 일반적이라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미 상원의 결의안은 일본에게도 엄중한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일 두 나라는 전례에도 없는 외교적 승리를 운운하고 있다. 진실은 곧 밝혀질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그 진실이 밝혀지면서 어느 나라도 체면을 구겨서는 안 된다. 서로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진솔해져야한다. 협상을 통해 타협한 외교결과를 민족주의로 채색시켜 국내정치의 선전도구로 더 이상 동원해서도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더 이상의 모순적인 발언도 삼가야 한다. 대통령은 지난 19일 취임 후 가진 첫 ‘국민과의 대화’에서 지소미아 연장 문제의 원인 제공을 전적으로 일본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모순에 모순을 거듭하는 발언으로 입장 해명에 일관했다. 그는 일본이 “한국을 안보상으로 신뢰할 수 없다면서 (지소미아를 통해) 군사정보는 공유하자고 한다면 그건 모순되는 태도”라며 일본을 비판했다. 앞서 언급한 문제의 인과관계를 망각한 발언이다. 그러면서도 “지소미아가 종료되더라도 (한·일 간) 안보협력은 해나가겠다”고 밝힌 것은 역지사지가 부족한 사고에서 나온 발언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외교 결과에는 절대적 ‘승리’가 없다. 대신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절충된 전략적 선택의 결실만이 존재한다. 더 이상 국민을 호도하지 말고 진정된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발휘하여 진정한 중견국 외교의 면모를 보여줄 것을 간곡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