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자의 가수 도전기] ④ 함께 도전하는 친구 '혜월'을 만나다

2020-01-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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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에서 이어집니다. [강 기자의 가수 도전기] ③뮤지션에 도전하는 '회사원 선배들'을 만나다
(https://www.ajunews.com/view/20191220171226158)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사실 "가수도전기 어떻게 돼가냐"는 질문에 매번 "자작곡이 아직···"하고 대답하면서 머리를 긁던 참이었다. 그 모습이 내심 답답했는지, 선배가 "아는 친구가 있다"면서 그녀를 소개해 주었다. 음악을 잘하고, 자작곡도 몇 곡 가지고 있는 친구라고 했다. 그 친구의 곡과 내 곡이 있으면 무대에 오를 수 있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지난주 나의 가수도전기 3편을 본 부장의 첫 반응은 "내가 이 문장(고백할 것이 있다. 이번 주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고백이다)을 보고··· 기획을 계속 진행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했단 말이지"였다. 등에 한 줄기 식은땀이 흘렀다. 만남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음악의 망망대해를 헤매던 나를 구해줄 멘토이자 동료로, 이혜민(20) 씨를 만나게 됐다.

(인터뷰 영상)

26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혜민 씨를 처음 만났다. 혜민 씨는 곡을 직접 만들고,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약속한 카페에 도착한 그녀는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의 가수도전기 1편을 읽었다고 했다. 약간 민망해진 분위기···

"일기장 같죠?"
민망함을 웃음으로 숨기며 던진 물음에 혜민씨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사실···제 일기장 같았어요"

혜민 씨는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었다. 예전에는 걷기도 했고, 계단도 올랐다. 병은 서서히 진행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는 휠체어를 탔다. "남들이 하지 않아도 되는 포기가 나에게는 있었다"라고, 그녀는 개인 유튜브에서 고백했다.

 

버스킹 공연을 하는 이혜민 씨. [사진=독립다큐멘터리 '가리워진 길' 캡처]


그런 그녀에게 음악은 끊임없는 도전이었다. 작곡, 작사, 그리고 공연, 버스킹, 지금 진행 중인 음원 작업까지. 특히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겨내고 섰던 버스킹 무대가 가장 힘든 무대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러한 도전들 덕분인지, 그녀는 "지금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졌어요"라고 고백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도전이 무엇이었냐고 묻자, 그녀는 "팬 미팅에서 아이유에게 자작곡 악보를 건네준 일"이라고 말했다. 평소 아이유를 무척 좋아한다는 혜민 씨는 아이유의 팬 미팅에서 다섯 개의 자작곡 악보를 아이유에게 몽땅 건네준 적이 있다고 했다. 막상 아이유 앞에 가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했다. 복사본을 준 거냐고 묻자 "악보 원본을 다 줘 버렸다. 복사본도 없다. 뭐 악보야 다시 따면 되니까"라고 말하며 웃었다. 아이유의 곡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무릎'이라는 곡이라고 했다. "엄마 무릎에 누워서 듣는 노래 같다"고 그녀는 말했다.
 

혜민 씨가 아이유의 노래 '무릎'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 혜민 씨는 '그대'가 어떤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멜론]


혜민 씨는 음악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입시를 위해 하루 12시간씩 보컬과 피아노를 연습하고 화성학을 공부하는 등 음악에 매진했지만, 이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발전을 위해 자신을 괴롭히는 편"이라는 혜민 씨는 이후 독학으로 영상 편집을 익히고, 영상 분야로 일도 시작했다. 지난해 4월에는 '혜월(HYEWOL)'이란 이름으로 개인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그녀는 채널을 통해 본인의 자작곡과 커버 곡들을 선보이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메이크업 튜토리얼, 브이로그, 장애인으로서의 생활을 이야기하는 '휠체어 Q&A' 등 다양한 콘텐츠도 업로드하고 있다.
 

혜민 씨의 유튜브 혜월(HYEWOL)에 업데이트된 컨텐츠들. 메이크업 튜토리얼(왼쪽), 자작곡(중간), 휠체어 Q&A(오른쪽)[사진=혜월(HYEWOL) 유튜브]

음악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면서도 음악을 꾸준히 해 오고 있는 그녀지만, 캠퍼스가 북적거리는 3월 즈음이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고 했다.

"역시 학교를 가는 게 좋지 않았을까? 그러면 음악을 더 할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렇지만 그 길은 그 길이고, 저는 저니까요. 저를 인정하는 기간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함께 공연하고 싶었다. 그러나 혜민 씨의 의사도 물어야 했다. 나는 유튜브를 통해 혜민 씨의 자작곡과 커버곡을 들을 수 있었지만, 혜민 씨는 내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나의 옛 공연 영상 하나, 그리고 미완성 상태에 있는 자작곡 하나를 전송했다. 다행히 혜민 씨는 "보내주신 자작곡 너무 좋다"면서 "제가 좋아하는 목소리"라는 감상평을 보내주었다.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상상했던 곡의 이미지가 있나요?" 혜민 씨가 내 곡을 듣고 처음 던진 질문이었다.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이 곡을 썼는지, 생각해 둔 곡의 냄새, 혹은 사운드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어렵다고 얼버무리자 그녀는 "어려울 것 없다"면서 "브레인스토밍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쉽사리 답을 하지 못하자 그녀는 "저는 이 노래를 듣고 회색, 바람, 방안, 다리, 차가운 밤공기가 떠올랐다"며 예시를 들었다.

 

악보를 그리는 혜민 씨. [사진=독립다큐멘터리 '가리워진 길' 캡처]


실력이 될 때 지원하겠다며 공연 도전을 차일피일 미뤄 왔던 나와 달리, 혜민 씨는 빠르게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제가 연주가 좀 약하다"면서 "기타를 섭외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더니, 말을 끝내자마자 어쿠스틱기타를 치는 친구 한 명을 섭외했다.

무대에서 키보드를 칠 실력은 안 되겠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멜로디언이라도 불겠다"고 하자 혜민 씨는 "꼭 시켜드릴게요"라면서 "옥상달빛이 아니라 '옥탑방별빛'으로 가죠"라고 말했다. "옥탑방별빛!"이라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은근슬쩍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2인조 여성 밴드 '옥상달빛'. [사진=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제공]


이어 혜민 씨는 "공연할 수 있을 정도로 자작곡에 살을 붙여 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던 자작곡의 뒷부분 멜로디를 붙여 봤다며 세 가지 버전의 녹음본을 보내주기도 했다.

혜민 씨에게 "어떤 무대에서 공연하고 싶냐"고 물었다. 혜민 씨는 "버스킹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나를 가차 없이 떨어뜨린 오픈마이크에 못내 미련이 남은 상태. 말투에 미련을 잔뜩 묻힌 채로 "오픈마이크에 지원해 보는 건 어때요"하고 말을 꺼내자 혜민 씨는 오픈마이크 무대에 서 본 적이 없다며 동의했다.

그러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오픈 마이크를 여는 대부분의 공연장이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 지하나 2층에 있다는 것이었다. 휠체어로는 이동하기 힘든 구조였다. 1층에 있는 공연장은 레스토랑과 공연을 함께하는 한 곳뿐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지하 공연장에 다다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리뷰까지 찾아보며 이곳저곳을 알아보았으나, 추려진 곳은 한 곳이 추가된 2곳뿐이었다.

혜민 씨는 이전에도 공연할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공연장 건물 때문에 장벽이 느껴진 적이 많았다고 했다. 같이 음악했던 사람들이 휠체어를 들고, 그녀를 업고 내려가면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이번에 연락을 드린 지하의 한 공연장 관계자는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동을 도와드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혜민 씨는 "휠체어 오르락내리락하는 데 인원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며 "최대한 1층인 곳으로 찾아보자"고 말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은 1층에 있는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혜민 씨와 연습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연습이 됐을 때 영상을 찍어 공연장 쪽에 전달하기로 했다. 혜민 씨는 이를 위해 대강의 일정도 짜서 건네주었다.

"못해도 한 1월 2주 차 정도까지는 스케치 구상 끝내고, 구체적인 악보나 송폼(곡의 형태)이 나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1월 2주 차부터 2월 초까지 합주하고, 2월 중으로 공연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망망대해 속에서, 멘토이자 동료가 생긴 느낌에 든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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