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1일 일본 외교안보정책의 사령탑 역할을 하는 국가안전보장국장에 기타무라 시게루 내각정보관이 임명되었다. 내각정보관은 우리의 국가정보원장에 해당해 국내외 정보의 수집과 조사·분석을 총괄하는 자리다. 민주당 정권 때인 2011년 12월부터 8년 가까이 내각정보관을 역임한 기타무라는 2018년에는 두 차례 북한의 통일전선부 김성혜 실장과 비밀접촉했을 만큼 아베 총리의 신임이 두터워 ‘정신안정제’로 불릴 정도다. 국가안전보장국장 취임 후 그의 광폭 외교 행보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기타무라 국장은 지난 9월 17일 일본을 방문했던 파트루셰프 러시아 안보회의 서기를 만났다. 북방영토에서의 경제협력을 지렛대로 러시아와 평화조약을 체결해 영토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목표 실현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9월 1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후임으로 오브라이언 국무부 인질 문제 담당특사를 임명하자 1주일 만인 9월 26일 워싱턴에서 오브라이언을 만났다. 11월 하순에는 인도를 방문해 모디 총리와 도발 국가안보담당 보좌관과 회담했다. 인도는 새로운 일본 외교의 지평을 열겠다는 취지에서 아베 총리가 추진 중인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구상의 파트너로서, 지난달 30일 처음으로 외교·국방 장관회담인 2+2를 뉴델리에서 열어 전시와 평시 양국이 군수물자와 역무를 상호지원하는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의 조기 체결 기대감이 포함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군사 대국화한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일방적인 현상변경을 시도하려 한다는 경계감이 일본 측에 강한 데다 중국 국민의 75.3%와 일본 국민의 57.8%가 상대국을 군사적 위협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일본의 언론NPO와 중국의 국제출판집단의 제15차 공동여론조사). 이렇게 정부와 국민 사이에 인식의 괴리가 존재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양국 정부 사이에는 적어도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며 의사소통과 협력의 강화가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일본 내각 외교안보정책의 사령탑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어떠한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 남북, 한·일 관계가 꽁꽁 얼어붙어 있지만, 이런 상황이 초래된 원인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안일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발상도 구태를 벗지 못한 느낌이다.
지난 8월 정부가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방침을 결정했을 때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한국의 국가적 자존심을 훼손한 일본의 외교적 무례를 책망하고 한·미동맹을 업그레이드할 계기라고 호기롭게 말했건만, 그 뒤 3개월간의 상황을 보면 논란만 증폭시키고 우리 정부의 입지만 좁혀졌을 뿐이다.
전장에서 함께 피 흘리며 맺은 혈맹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몰려 황당한 수준의 주한미군 주둔경비 부담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무역과 기술·금융·홍콩·인권 문제 등을 둘러싸고 전방위적으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의 고위 관료들은 한·미관계의 틈새를 노리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의 조건부 지소미아 종료 정지 결정에 대해 일본 정부는 동아시아 안보 상황을 고려한 한국 정부의 전략적 판단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면서, 양국 관계 악화의 근원인 강제징용문제 해법을 한국 정부가 제시하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외교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태다. 무엇보다 정부가 공들였던 남북관계는 거의 파탄상태다. 남북 정상이 합의했던 금강산관광의 재개는커녕 북한에 의한 한국 측 시설의 일방적 철거 통보와 남북대화의 단절만 가져왔을 뿐이다.
지난 1주일 사이에 박정천 북한군 총참모장,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에 이어 김성 유엔주재 대사까지 가세해 북·미 비핵화 협상의 무의미함과 재선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를 비난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북·미회담의 조기 재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달 하순 예정된 북한의 당중앙위 전원회의 결정과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가 커다란 갈림길이 되겠지만, 북한은 14개 주와 미국령 사모아 예비선거에서 공화·민주 양당의 대통령 후보가 사실상 결정되는 내년 3월 3일까지는 미국 상황을 지켜볼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의 외교안보정책을 계속 고집해서는 안 된다. 국내외 상황변화에 부합한 과감한 인적 쇄신과 정책전환 없이는 다가올 큰 시련에 대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