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걸어온 인생은 위대하다. 우리들은 예술을 통해 타인이 겪은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 연출을 맡은 김재엽은 아버지 고(故) 김태용님 일생을 작품에 담았다. 성난 파도 같은 현대사를 겪은 아버지가 보여준 가족에 대한 사랑은 가슴 뭉클하다.
지난 22일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올에서 끝난 양은주 작가 개인전을 보면서 ‘위대한 인생’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세상 기준으로 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양 작가가 처음 붓을 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국을 좋아하는 친구가 해준 따뜻한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됐다. 용기를 내 붓을 잡았다. 그림을 그리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진정한 자신이 보였다. 인생에서도 내려놓음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찾는 시기였다. 그릴 것이 많았다. 나중에 양 작가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친구가 좋아하는 수국을 그렸다.
양 작가가 그린 작품은 빠르게 주목 받기 시작했다. 지난 5월에 열린 제14회 대한민국 남농미술대전과 지난 7월 열린 제38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차지했다.
첫 번째 개인전에서 양 작가는 모든 작품에 ‘심상’이라는 같은 제목을 붙였다. 양 작가는 “비구상 작품이 좋은 점이 있다. 작가가 생각하는 것과 갤러리 분들이 생각하는 심상이 다를 수 있다. 내 심상도 오늘과 내일이 달라진다”며 “각자가 느끼고 가는 것이다”고 작품명이 갖는 의미를 짚었다.
양 작가는 다양한 사물들을 통해 인생을 화폭 위에 담았다. 4년 전 돌아가진 친정 어머니를 생각한 작품도 그렸다. 양 작가는 “우리 때보다 구속이 많았던 시기를 사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평소 ‘나는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 하시던 어머니를 위해 작품에 노란 나비를 한 마리 그렸다. 그 나비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젊은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그린 수련도 아름다웠다. 그림을 통해 얻은 위안을 남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양 작가는 “수련은 진흙탕 속에서도 아름다운 색채로 찬란하게 피어난다. 젊은 친구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며 “누군가가 내 그림을 보고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함께 나누고 싶다”고 의미를 전했다.
첫 번째 개인전은 말 그대로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50평이나 되는 공간을 채울 자신이 없었다. 양 작가는 “박광숙 갤러리 올 원장님이 많이 도와주셨다”며 “마침 이 곳에서 회의가 열려 많은 선생님들이 제 그림을 보고 가셨다. 너무 신기했고 많이 배웠다”며 환하게 웃었다.
소박한 꿈도 간직하고 있다. 앞으로 그림 작업을 계속하면서 에세이 책 한 권을 쓰는 것이 목표다. 남편에게는 옛날 고향 모습을 그린 그림을 선물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을 요청했다. 어느 그림 앞이 좋겠냐고 묻자 “저를 그린 이 그림이 좋겠다”라며 동백꽃 그림 앞에 섰다.
“동백꽃은 다른 꽃들과 다르게 겨울에 핀다. 여리고 작은 꽃이지만 눈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양 작가와 동백꽃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