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제 침체와 디플레이션 우려가 이어지면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전통적 통화정책만으로는 눈에 띄는 경기 진작이 힘들어지자, 처음으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지난 16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정책 여력이 더욱 축소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금리 이외 정책수단의 활용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기준금리를 통한 통화정책 여력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효하한은 현재 0.75~1.00% 수준으로 시장은 추산하고 있다. 앞으로 금리를 한두 차례만 더 내리면 이후에는 사실상 금리 인하 효과가 없게 된다는 의미다.
이 총재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금리는 지금도 낮은데 '제로(0)금리'까지 가기에는 조심스러운 문제들이 있다"며 "정책 여력이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 막상 리세션(침체)이 왔을 때 가장 먼저 움직여야 할 중앙은행이 정책 수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가와 경기만 보면 충분히 금리를 낮출 상황이지만 정책 여력 확보와 금융안정, 국가 경제의 득실을 따져볼 때 더 이상 금리 조정만으로는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고심 중인 통화정책 중 하나가 양적완화다. 이는 중앙은행이 은행이 가지고 있는 국채를 매입하고 대신 현금을 내주는 정책이다. 자금을 직접 시장에 공급하는 동시에 장기 시장금리의 하락을 유도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효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한국이 비기축통화국인 만큼 원화의 과도한 약세로 이어지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율 변동은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워 최악의 경우 급격한 자본유출을 초래할 수 있다.
현재 시장에 자금이 부족한 것보다 소비나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게 문제란 점에서 영향이 미미할 것이란 주장도 적지 않다.
이미 양적완화를 시행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일본은행(BOJ), 유럽중앙은행(ECB) 내부에서도 양적완화 효과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갖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통위원들 사이에서도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견해차가 있기 때문에 당장 실행 가능성을 거론하기는 이르다"면서도 "기축통화국에서도 실제 효과로 이어졌는지 평가할 시간이 필요한데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나라가 양적완화 부작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