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정치' 반대당에 뇌 이식하면?

2019-10-0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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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초 작가가 조롱한 '소인국 당파싸움' 해결책

 
 
<책에서 책으로 20. 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등>
“두개골 절개, 뇌수술 의사가 많이 필요해”
“분변학(糞便學) 연구자도 데려왔으면 … ”
 
 

[조나단 스위프트]


조나단 스위프트(1667~1745)가 쓴 엄청 맵고 쓴 풍자소설 <걸리버 여행기> 제3장 ‘하늘을 나는 나라’에는 대변을 원래의 음식물로 환원해보려는 분변학(糞便學·Scatology) 연구자가 나온다. 그의 동료는 오이에서 태양광을 추출하려고 8년째 연구 중이다.

영국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성직자가 된 스위프트는 “과학에 인류의 미래가 달렸다”는 18세기 초 일부 영국 과학자들의 비신앙적 자신감과, 이들의 발명과 발견을 오직 돈벌이에만 이용하려던 정치인과 기업인을 조롱하려고 분변학자와 태양광 학자를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시켜 말도 안 되는 일에 매달리게 했다. 얼음에 열을 가하여 화약으로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과학자, 거미처럼 지붕부터 시작해서 차차 아래로 내려와 기초를 만드는 아주 새로운 건축법을 고안하려는 사람도 스위프트의 조롱에 이용된다.

하지만 스위프트의 진짜 조롱 대상은 정치인들이다. 스위프트에게 당시 영국 정치인들은 경멸의 대상이었다. 왕정을 지지하는 토리당과 이에 반대하는 휘그당은 쉴 새 없이 싸웠다. 매일 싸우니 민생은 피폐했다. 그 자신 토리당을 편들다가 휘그당이 득세하는 바람에 정치적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한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정쟁을 그치는 방안을 제시한다면서 정치인들을 야유했다. 그중 세 가지를 소개한다.

(1) 각 정당에서 백 명의 지도자들을 뽑는다. 그리고 머리 크기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짝을 짓게 한다. 그런 다음 외과 의사들에게 이들의 뇌가 거의 절반으로 나누어지도록 머리를 자르게 한다. 다음엔 잘라낸 머리를 반대편 정당 사람의 절반 남은 머리에 붙인다. 이렇게 하면 두 개의 뇌가 하나의 두개골 속에서 논쟁을 벌이고, 곧 서로 이해하게 돼 국민들이 바라는 조화로운 사고와 중용이 생겨나게 된다는 거다.

(2) 두개골 절개를 하기 전에 정치인들이 의견을 발표하거나 변호하도록 한 후에 투표할 때는 자기 의견에 반대표를 던지게 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찬성에 반대하기’로 불러도 되고 ‘반대에 찬성하기’로 불러도 되는 이 방안은 정치인들이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토록 하기 위한 것이다. 자기 주장에 반대하는 쪽에 투표해야 하므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를 판에 상대방에게 모질고 거친 비난이나 야유를 한없이 쏟아 부을 간 큰 정치인은 없다고 본 것이다.

(3) 정치인들이 이렇게 늘 싸우는 것은 기억력이 짧고 무엇이든 쉽게 잊어버리는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인을 만나면 “알아듣기 쉽도록 말은 반드시 짧고 간단하게 하며 물러날 때는 그의 코를 비틀거나 배를 힘껏 걷어차고 양쪽 귀를 잡아당겨 기분을 나쁘게 한 후, 그것도 모자라면 핀으로 다리나 팔을 찔러서 들은 이야기를 잊지 않도록 하게 해야 한다.” 한두 번으로는 고쳐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최대 열 번 정도 이 처방을 계속하면 못된 버릇을 완전히 고칠 수 있다는 게 스위프트의 생각이다.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3), (2), (1) 순으로 ‘정치 수준 제고 방안’을 제시했지만 나는 한국 형편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고 보고 두개골 절개를 앞에 뒀다. 고도의 정확성이 필요한 수술이나, 요즘 한국 의사들 솜씨라면 시도해볼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외국에 나가 있는 솜씨 좋은 한국 외과의 중에서도 조국을 진정으로 살리는 일이니 도와달라면 돌아올 사람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수술이 만에 하나 잘못돼 정치인이 좀 죽더라도 ‘대의(大義)’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해온 사람들이니 의사들에게 책임이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스위프트는 쉰아홉이던 1726년에 <걸리버 여행기>를 냈다. 저자 이름은 ‘걸리버’라는 가명이었다. 구상에 15년, 집필에 5년 걸린 이 작품은 에라스무스(1466~1557, 네덜란드)의 <우신예찬>, 라블레(1494~1557, 프랑스)의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스턴(1713~1768, 영국)의 <신사 트리스트럼 샌디의 생애와 의견> 등과 함께 콕콕 찔러대거나 은근히 웃기거나 어느 쪽이든, 풍자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서 절대 실망하지 않는 책이 됐다. 콕콕 찔러대는 쪽으로는 아마도 최고일 스위프트는 30대 중반이던 1704년에 발표한 <통 이야기>와 <책들의 전쟁>과 같은 에세이에서 이미 그런 면모를 보였다. 종교와 학문이 주제인 <통 이야기>에서도 그는 “회의 중에 조는 것은 인과응보의 원칙에도 딱 들어맞는 것이다. 과거에는 남이 잠든 동안 주절주절 떠들었으니 이제 남이 얘기하는 동안에 오랫동안 잠자는 것이다”와 같은 풍자를 남겼다.

스위프트는 <통 이야기>에서 “풍자가 찬사보다 늘 환영받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풍자에 진력하는 이유를 밝힌다. “찬사는 한 번에 한 사람 또는 몇 명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에, 그 축복을 받지 못한 자가 질투를 일으키고 악담을 하지만 풍자는 모두에게 향한 것이므로 결코 누구도 화내지 않는다. 저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을 세상의 어깨에 실어버린다. 세상의 어깨는 충분히 넓고 무거운 짐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찬사의 소재는 많지 않기에 빨리 바닥난다. 건강은 하나로 늘 똑같지만, 병은 무수하고 매일 새로운 것이 늘어난다”고 썼다. 그렇다면 풍자는 비난보다도 환영받을 것인가? <걸리버 여행기>에서 영감을 받아서 쓴 나의 다음 글은 한 사람을 향한 것인가, 모두를 향한 것인가?

<얼마 전까지는 오이에서 태양광을 추출하려는 사람을 한국에 데려와 연구를 시켰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태양광 발전을 위해 산을 깎고 들판을 메워 흉물스러운 집광판을 설치하느니 오이 농사를 지어 거기서 태양광을 추출해 발전에 쓰는 게 훨씬 친환경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변학자를 먼저 데려오고 싶다. 지금 한국을 뒤집어 놓고 있는 사람의 말을 분변학적으로 분석해보고 싶어서다. 그의 말은 대변처럼 더럽고 악취가 난다. 그는 항상 자기 말을 뒤집는다. 그가 말을 뒤집을 때마다, 아니 말을 할 때마다 악취가 나라를 진동시킨다. 어떤 생각과 경험이 그런 추하고 더러운 말을 생성시키는지가 너무 궁금하다. 그래서 ‘하늘을 나는 나라’에서 이 분변학자를 데려오고 싶은 거다. 분변학적 기법으로 그의 말을 분석하면 그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와 같은 ‘인간’이 세상에 또 출현하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걸리버 여행기 초판본. 왼쪽 인물은 저자로 내세운 ‘걸리버’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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