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음을 증명하라. 그러면 미친 걸 인정하겠다.”
우리 모두를 미치게 하는 모순적 규정 ‘캐치-22’
조지프 헬러(1923~1999. 미국)가 1961년에 출간한 <캐치-22>(안정효 역, 민음사)는 진짜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풍자와 유머와 위트와 엉뚱함이 모든 등장인물의 행동과 대화에 넘쳐났다. 나온 지 60년이 되어 가는데 <캐치-22>의 웃음코드에는 진부함이 전혀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수시로 웃음이 터지거나, 미소가 입가에서 번진다.. 나보다 바빠서 책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분들이 재미있는 소설을 소개해 달라면 내 나름 이것저것 권해왔는데, 이걸 빼먹은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캐치-22>는 웃기지만 유쾌하지 않으며, 즐겁지만 개운하지 않다. “우릴 보고 웃지만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는 피에로”다. 블랙유머의 고전이며 냉혹한 풍자소설이다.
“네가 미쳤음을 증명하라. 그러면 네가 미쳤음을 인정하겠다.” 이게 말이 되는가? 증명은 증거와 논리로 구성되는데, 자신의 정신상태가 비정상임을 이렇게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을 미쳤다고 할 수 있는가? 비정상적인 사람이 이런 증명을 할 수 있는가? 이런 모순적 지시를 받은 사람은 그 즉시 미쳐버릴 것이다. <캐치-22>의 주인공 ‘요사리안’은 이 지시를 받았다. <캐치-22>는 요사리안이 스스로 미쳤음을 증명하려는, 우습지만 처절한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2차 세계대전 말 이탈리아 남쪽 피아노사 섬의 공군기지에 배치된 미 공군 대위 요사리안은 이탈리아 본토 폭격에 나섰다가 적군이 쏘아올린 대공포에 동료들의 폭격기가 화염에 휩싸인 채 공중폭발하거나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추락하는 무시무시한 장면을 본 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대를 하고야 말겠다고 마음먹는다. 대공포탄에 맞아 죽은 동료들의 시체가 비행기 안에서 이리저리 구르던 기억과, 사지가 찢긴 폭격수들의 비명과 신음이 요사리안의 결심을 굳힌다.
폭격기 조종사와 폭격수 등 승무원들은 일정한 출격 횟수를 채워야만 전역을 할 수 있다. 요사리안은 전역에 필요한 출격 횟수를 일찌감치 채웠으나 사령관은 의무 출격 횟수를 자꾸 늘려왔다. 정상적 절차로는 전역이 불가능하게 된 요사리안은 미친 척한다. 미쳤으니 출격할 수 없다며 전역을 요청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캐치-22’다. 번역자 안정효씨에 따르면 “영어 단어 ‘CATCH’는 이 소설에서 ‘조항(규정)’과 ‘함정’을 동시에 뜻하는 동음이의(同音異義)어다. (헬러가 소설 속에 창조한) ‘규정(CATCH) 22조’ 때문에 미친 사람은 본인이 미쳤음을 증명해야 전역할 수 있다. 요사리안은 이 조항 때문에 함정에 빠진 것이다. 미친 사람이 스스로 미쳤음을 증명해야하는 그 함정에서 요사리안은 절대 빠져나오지 못한다.
요사리안만 그 함정에 빠진 게 아니다. 요사리안의 이야기로만 전개됐다면 <캐치-22>는 20세기 미국 문학에서 당당히 고전의 반열에도 못 올랐을 것이고, ‘세계 100대 소설’ 혹은 ‘5대 반전소설’ 리스트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재미가 넘치는 소설’로도 꼽히지 못했을 것이다.
요사리안 외에 <캐치-22>에 나오는 인물은 다음과 같다.(번역자의 작품 해설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폭격을 해야 할 폭격수는 목표물이 아니라 지상에서 날아오는 포탄 관측에 바쁘다. 가는 곳마다 석유가 쏟아져 나와서 백인들의 석유회사에 쫓겨 다니기만 했던 인디언 추장은 최전방인 피아노사 섬의 공군기지에 와서야 평화를 찾는다. 낙태수술로 큰돈을 벌려다 징집되는 바람에 인생의 ‘빅 픽처’가 망가진 군의관은 자기의 생존을 증명하기 위해 죽으려고 발버둥친다. 출격만 나가면 격추를 당하던 조종사는 탈영을 위해 일부러 추락 연습을 반복한다.”
“전 세계를 주름잡는 신디케이트를 운영하던 장교는 개당 7센트에 사온 계란을 5센트에 팔아서 목적을 달성하고, 독일군과 계약을 맺어 자기 부대를 폭격한다. 매일 밤 정확한 시간에 악몽을 꾸는 사병은 나체 사진을 찍으려고 여자들을 쫓아다니지만 매번 실패한다. 인간의 무지를 혐오하는 취사병은 고구마에 비누를 짓이겨 넣어 장병들이 식중독에 걸리게 한다. 대령은 하느님이 사병과 장교에게 똑같이 귀를 기울인다는 게 못마땅해 기도회를 취소한다. 하녀를 강간하고 창밖으로 내던진 장교는 수많은 사람이 전쟁에서 죽어 가는 마당에 그까짓 하녀 하나쯤 죽인다고 무슨 관계가 있냐며 죄의식을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
이런 기묘한 사람들이 뒤죽박죽 시간적 순서 없이 서로 섞여서 엮어나가는 줄거리가 재미없을 리 없고, 웃기면서 슬픈 ‘명작’이 안 될 수가 없다. 헬러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공군에 입대, 유럽에서의 전투가 끝난 1945년 6월 이탈리아에서 전역할 때까지 60회 출격했다. “처음에는 무슨 즐거운 놀이를 하는 기분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전우들이 탄 비행기가 격추되는 광경을 본 다음부터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공포에 사로잡히게 됐다. 독일군보다 출격을 독려하는 미군 상관이 더 무서울 때가 있었다.” <캐치-22>는 그 자신이 겪은 실제상황인 것이다.
전역 후 뉴욕의 여러 광고회사와 잡지사에서 광고 일을 하던 그는 1953년부터 8년 동안 준비해 이 소설을 내놓았지만 처음엔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베트남 전쟁에 미국이 더 깊이 개입하게 되고 젊은이들 사이에 반전 풍조가 번지면서 인기를 타기 시작, 오래전에 미국 내 판매부수만 1000만부를 넘어섰다. ‘CATCH-22’는 ‘모순된 규칙이나 상황에 묶인 상태’를 뜻하는 보통명사로 사전에 올랐다.
1970년엔 영화로 만들어졌고 그 이듬해엔 연극무대에도 올랐다. 올해엔 미남이면서 느끼한 표정으로 웃기는 연기도 잘 하는 조지 클루니가 제작·감독한 6부작 미니시리즈가 6월에 방영됐다. ‘TV의 아카데미상’이라는 에미상 후보로 2개 부문에 추천됐으나 상은 못 받았다. 원작이 워낙 뛰어난 게 원인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무렵 한 유료채널이 방영했다.
“법무부는 법무부 일을 하고, 검찰은 검찰 일을 하면 된다”는 말씀과 “조국을 앞세워 검찰을 개혁하자”는 ‘모순스러운’ 구호가 <캐치-22>를 다시 펼치게 했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미친 듯한 혼란을 <캐치-22>의 상황과 같다고 해서 안 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를 미치게 하는 모순적 규정 ‘캐치-22’
“네가 미쳤음을 증명하라. 그러면 네가 미쳤음을 인정하겠다.” 이게 말이 되는가? 증명은 증거와 논리로 구성되는데, 자신의 정신상태가 비정상임을 이렇게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을 미쳤다고 할 수 있는가? 비정상적인 사람이 이런 증명을 할 수 있는가? 이런 모순적 지시를 받은 사람은 그 즉시 미쳐버릴 것이다. <캐치-22>의 주인공 ‘요사리안’은 이 지시를 받았다. <캐치-22>는 요사리안이 스스로 미쳤음을 증명하려는, 우습지만 처절한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2차 세계대전 말 이탈리아 남쪽 피아노사 섬의 공군기지에 배치된 미 공군 대위 요사리안은 이탈리아 본토 폭격에 나섰다가 적군이 쏘아올린 대공포에 동료들의 폭격기가 화염에 휩싸인 채 공중폭발하거나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추락하는 무시무시한 장면을 본 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대를 하고야 말겠다고 마음먹는다. 대공포탄에 맞아 죽은 동료들의 시체가 비행기 안에서 이리저리 구르던 기억과, 사지가 찢긴 폭격수들의 비명과 신음이 요사리안의 결심을 굳힌다.
폭격기 조종사와 폭격수 등 승무원들은 일정한 출격 횟수를 채워야만 전역을 할 수 있다. 요사리안은 전역에 필요한 출격 횟수를 일찌감치 채웠으나 사령관은 의무 출격 횟수를 자꾸 늘려왔다. 정상적 절차로는 전역이 불가능하게 된 요사리안은 미친 척한다. 미쳤으니 출격할 수 없다며 전역을 요청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캐치-22’다. 번역자 안정효씨에 따르면 “영어 단어 ‘CATCH’는 이 소설에서 ‘조항(규정)’과 ‘함정’을 동시에 뜻하는 동음이의(同音異義)어다. (헬러가 소설 속에 창조한) ‘규정(CATCH) 22조’ 때문에 미친 사람은 본인이 미쳤음을 증명해야 전역할 수 있다. 요사리안은 이 조항 때문에 함정에 빠진 것이다. 미친 사람이 스스로 미쳤음을 증명해야하는 그 함정에서 요사리안은 절대 빠져나오지 못한다.
요사리안만 그 함정에 빠진 게 아니다. 요사리안의 이야기로만 전개됐다면 <캐치-22>는 20세기 미국 문학에서 당당히 고전의 반열에도 못 올랐을 것이고, ‘세계 100대 소설’ 혹은 ‘5대 반전소설’ 리스트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재미가 넘치는 소설’로도 꼽히지 못했을 것이다.
요사리안 외에 <캐치-22>에 나오는 인물은 다음과 같다.(번역자의 작품 해설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폭격을 해야 할 폭격수는 목표물이 아니라 지상에서 날아오는 포탄 관측에 바쁘다. 가는 곳마다 석유가 쏟아져 나와서 백인들의 석유회사에 쫓겨 다니기만 했던 인디언 추장은 최전방인 피아노사 섬의 공군기지에 와서야 평화를 찾는다. 낙태수술로 큰돈을 벌려다 징집되는 바람에 인생의 ‘빅 픽처’가 망가진 군의관은 자기의 생존을 증명하기 위해 죽으려고 발버둥친다. 출격만 나가면 격추를 당하던 조종사는 탈영을 위해 일부러 추락 연습을 반복한다.”
“전 세계를 주름잡는 신디케이트를 운영하던 장교는 개당 7센트에 사온 계란을 5센트에 팔아서 목적을 달성하고, 독일군과 계약을 맺어 자기 부대를 폭격한다. 매일 밤 정확한 시간에 악몽을 꾸는 사병은 나체 사진을 찍으려고 여자들을 쫓아다니지만 매번 실패한다. 인간의 무지를 혐오하는 취사병은 고구마에 비누를 짓이겨 넣어 장병들이 식중독에 걸리게 한다. 대령은 하느님이 사병과 장교에게 똑같이 귀를 기울인다는 게 못마땅해 기도회를 취소한다. 하녀를 강간하고 창밖으로 내던진 장교는 수많은 사람이 전쟁에서 죽어 가는 마당에 그까짓 하녀 하나쯤 죽인다고 무슨 관계가 있냐며 죄의식을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
이런 기묘한 사람들이 뒤죽박죽 시간적 순서 없이 서로 섞여서 엮어나가는 줄거리가 재미없을 리 없고, 웃기면서 슬픈 ‘명작’이 안 될 수가 없다. 헬러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공군에 입대, 유럽에서의 전투가 끝난 1945년 6월 이탈리아에서 전역할 때까지 60회 출격했다. “처음에는 무슨 즐거운 놀이를 하는 기분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전우들이 탄 비행기가 격추되는 광경을 본 다음부터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공포에 사로잡히게 됐다. 독일군보다 출격을 독려하는 미군 상관이 더 무서울 때가 있었다.” <캐치-22>는 그 자신이 겪은 실제상황인 것이다.
전역 후 뉴욕의 여러 광고회사와 잡지사에서 광고 일을 하던 그는 1953년부터 8년 동안 준비해 이 소설을 내놓았지만 처음엔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베트남 전쟁에 미국이 더 깊이 개입하게 되고 젊은이들 사이에 반전 풍조가 번지면서 인기를 타기 시작, 오래전에 미국 내 판매부수만 1000만부를 넘어섰다. ‘CATCH-22’는 ‘모순된 규칙이나 상황에 묶인 상태’를 뜻하는 보통명사로 사전에 올랐다.
1970년엔 영화로 만들어졌고 그 이듬해엔 연극무대에도 올랐다. 올해엔 미남이면서 느끼한 표정으로 웃기는 연기도 잘 하는 조지 클루니가 제작·감독한 6부작 미니시리즈가 6월에 방영됐다. ‘TV의 아카데미상’이라는 에미상 후보로 2개 부문에 추천됐으나 상은 못 받았다. 원작이 워낙 뛰어난 게 원인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무렵 한 유료채널이 방영했다.
“법무부는 법무부 일을 하고, 검찰은 검찰 일을 하면 된다”는 말씀과 “조국을 앞세워 검찰을 개혁하자”는 ‘모순스러운’ 구호가 <캐치-22>를 다시 펼치게 했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미친 듯한 혼란을 <캐치-22>의 상황과 같다고 해서 안 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