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오락 최강 한국'의 텅빈 머리

2019-09-11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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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 없는 와이파이세대를 위한 기념비적 역작”

 
 


<책에서 책으로 16. 닐 포스트먼, 『죽도록 즐기기』>
“성찰 없는 와이파이세대를 위한 기념비적 역작”

 
 

[닐 포스트먼]

 

1985년, 전 세계 대중은 미국 팝가수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에게 열광하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며 한 손은 얼굴에 다른 손은 사타구니에 올려놓고 골반을 튕기거나 문워킹을 하는 마이클 잭슨. 가슴골과 엉덩이의 곡선을 극대화해주는 수영복(처럼 보이는 옷)만 걸친 채 다리를 더욱 늘씬하게 보여주는 뾰족하고 높은 스틸레토 하이힐을 신고 무대를 방방 뛰어다니는 마돈나. 이들의 뇌쇄적인 표정과 몸짓은 막 상업화된 디지털 기술을 타고 세계 구석구석으로 날아가 수많은 대중을 녹이고 있었다.

TV가 보여주는 그런 영상에 녹아나던 대중에는 사우디와 리비아의 사막에서 훈련하던 반미 테러범들도 있었다. 미국을 지구에서, 아니 우주에서 영원히 없애버리고 싶었던 그들도 위성안테나로 수신되는 미국 드라마와 영화,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의 섹시한 노래와 춤에는 저항할 수 없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에서 미제 포르노가 발견된 것도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지구적 차원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미국의 오락물은 그만큼 재미있었고, 말초신경을 콕콕 찔렀으며, 그 속에 빠지면 세상의 어떤 것도 방해하기 어려웠다.

마이클 잭슨이 무대에서 골반을 튕기고 마돈나가 백치미를 풍기며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에 세계의 대중들이 넋을 잃어가고 있던 1985년, 미국 언론학자 닐 포스트먼(1931~2003)이 <죽도록 즐기기>(Amusing Ourselves to Death, 홍윤석 역, 굿인포메이션)를 출간했다. ‘인생을 확실히 즐기는 방법’ 따위로 생각될 제목과는 정반대로 “TV가 사람들을 어떻게 바보로 만들어왔는가, 사람들이 더는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명저(名著)의 필수 요소인, ‘동서고금의 사례와 이론’을 바탕으로 속속들이 파헤친 책이다. 줄여 말한다면, “TV가 사람들의 성찰을 방해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해진다”고 주장한 책이다.
포스트먼은 “TV는 정보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고, 실체를 없애며, 역사성을 제거하고, 전후 맥락을 배제시켜 버린다. 즉 오락이란 형태로 조립, 포장한 상품으로 정보를 제시한다”라고 썼다. TV가 모든 것을 오락화, 유희화한 탓에 사람들이 거기에 죽도록 즐기면서 빠져들게 되었고, 그 결과 사람들은 성찰-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할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됐으며 그저 TV가 전하는 것에만 반응하고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그의 진단과 전망을 더 들어보자. “미국의 TV는 시청자에게 즐길 거리를 쏟아 붓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 성직자와 대통령, 교육자와 뉴스 진행자들은 자기 분야의 훈련보다는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기 위한) 쇼맨십을 갖추는 데 안달이 날 지경이다.” “텔레비전이 차라리 허위정보disinformation라고 부르는 게 나을 새로운 정보유형을 만들어 내면서 '정보화'의 의미를 변질시키고 있다. 허위정보란 잘못된 정보가 아니라 오해하도록 유도하는 정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제로는 엉뚱한 쪽으로 이끌어가는 정보(제 위치를 벗어난 정보, 상황에 맞지 않는 정보, 단편적인 정보, 피상적인 정보)를 뜻한다. 고의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뉴스가 오락물처럼 그럴듯하게 포장될 때 그런 결과는 불가피하다.”

포스트먼이 세상을 떠난 2년 뒤인 2005년 저자의 아들에 의해 나온 <죽도록 즐기기 20주년 기념판>에는 “20세기에 나온 책 중 21세기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책”이라는 서평이 달려있다. 이 책의 분석과 전망은 1985년을 벗어나 21세기에도 적용된다는 뜻이다. 포스트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락성을 추구해온 TV가 사람들의 판단력을 잃게 하고, 성찰을 더욱 방해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죽도록 즐기기>의 예언은 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 대한 예언이며, 그 예언은 모두 맞았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 보급이 세계 최상위 수준인 21세기의 한국이야말로 <죽도록 즐기기>의 예언이 현실화된 세계라고 생각한다. 오락물은 넘쳐나고, 포스트먼이 지적한 ‘허위뉴스(가짜뉴스라고 해도 될 것이다)’의 공급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언제나 스마트폰에 머리를 처박고 이런 오락물과 이런 뉴스에 빠져서 헤어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근무하는 한 유럽 강대국 대사는 “한국말을 몰라도 한국 TV를 볼 수 있다. 너무 재미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한국 TV만큼 재미있는 오락 프로그램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했다. 이토록 재미가 넘치는데, 죽을 만큼 즐길 것이 많은데, 누가 시간을 내서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 할 것인가, 누가 성찰을 자기 발전의 바탕으로 삼으려 할 것인가. 작금의 한국을 “통찰은 부족하고 성찰은 없으니 아래 위 누구나 현찰만 탐하는 사회”라는 비아냥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 것인가?

포스트먼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독서와 교육이다. “활자기반 인식론의 쇠퇴와 맞물려 텔레비전 지배 인식론이 부상하면서 사람들이 시시각각으로 멍청해졌으며 이로 인해 공공생활에 심상치 않은 결과가 도래했다”는 그의 진단은 “TV 때문에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게 되면서 바보가 되었고,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에 바람직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마비시켰다“는 말이다. 성찰하는 사회가 되려면 TV에서 벗어나 책이든 신문이든 활자를 읽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에서도 무료로 와이파이 접속을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지하철의 경우 ‘조국 펀드’라고도 불리는 한 사모펀드에 관련 사업권을 주기로 했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철회했다. 나는 이 계획이 완전히 철회되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오락과 오락화한 뉴스를 더욱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려는 이 정책은 한국인에게 지금도 부족한 성찰의 시간을 완전히 빼앗아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중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정보와 지식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죽도록 즐기기> 표지에 인쇄된 “성찰 없는 미디어세대를 위한 기념비적 역작”이라는 문구를 “성찰 없는 와이파이세대를 위한 기념비적 역작”으로 바꿔야 할 때가 곧 닥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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