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책으로 15. 몽테뉴 『수상록』>
구차한 삶, ‘투생(偸生)’을 경멸한다
죽음을 경멸하라, 자유로워질 것이다
“고조 섬이 터키 군에게 공략 당했을 때, 한 시칠리아 사람은 시집보내게 된 예쁜 딸 둘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그녀들의 죽음에 놀라 달려온 모친도 함께 죽였다. 그런 다음, 그는 활과 화승총을 들고 나가 맨 먼저 자기 집 문간에 접근하는 터키 병사를 쏘아 죽였다. 그러고 나서 칼을 뽑아들고 싸움터로 맹렬하게 뛰어들어 적의 칼에 산산조각이 났다.”
프랑스 저술가 미셀 드 몽테뉴(1553~1592)의 <수상록>을 뒤지다가 백제 계백 장군의 마지막을 연상케 하는 이 이야기를 읽었다. 서기 660년 황산벌 싸움을 앞둔 계백 장군은 이 전투에서 목숨을 버리기로 하고, 처자를 자기 칼로 베어 죽인 후 전장에 나섰다. 가족이 살아남아서 신라군에게 욕을 보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수상록>을 손에 잡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완독이 목표였으나 두 번 다 실패했다. 이번에는 “(일정한 나이에 도달한) 인간이 그 삶에서 앞으로 기대할 것이 없음이 드러난다면 자기 목숨을 처분할 권리가 있다”라는 문구를 찾기 위해 펼쳤다. <수상록>을 집어 들기 직전에 읽은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의 <미래의 나라 브라질>에서 발견한 구절이다. 그 직전에는 츠바이크의 자서전 <어제의 세계>를 읽었다.
브라질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고국을 떠나 영국과 미국을 전전하던 츠바이크가 마지막으로 택했던 나라다. 츠바이크는 <어제의 세계>에서 브라질에는 종족 간 갈등과 편견이 없기 때문에 최후의 정착지로 정했다고 썼다. 1941년 브라질에 도착한 그에겐 여기서도 새로운 삶이 쉽지 않았던 듯, 이듬해 비서였던 두 번째 부인과 함께 목숨을 끊었다. 소설, 전기, 희곡, 오페라 대본 등 문학 작품으로 이름 난 그가 브라질이라는 특정 국가에 대한 책도 썼다는 사실이 내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미래의 나라 브라질>을 읽게 된 것이다.
츠바이크의 유서에는 “60세가 지나서 다시 한번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어려워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됐다”라는 문구가 들어있다. <미래의 나라 브라질>의 역자(김창민 서울대 서반아학과 교수)도 후기에서 츠바이크 부부의 자살 소식을 전하면서 “츠바이크는 인간이 일정한 나이에 도달했을 때, 그 삶에서 앞으로 기대할 것이 없음이 드러난다면 자기 목숨을 처분할 권리가 있다는 몽테뉴의 말을 좋아했다”고 써놓았다. “예순 넘어 새롭게 시작하기가 너무 어려워 먼저 세상을 떠나기로 했다”는 츠바이크의 그 처연한 유언이 사실은 몽테뉴에게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몽테뉴가 왜 이 말을 했을까가 몹시도 궁금해졌다. 이 말을 하기 전후의 맥락은 무엇인가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세 번째 <수상록>에 도전한 것이다. 나는 세 달 전 <책에서 책으로>를 시작할 때 “책이 책을 불렀다”라고 썼는데, <수상록>이 그 대표적 사례가 되겠다 싶어 이 책을 다시 손에 잡게 된 과정을 장황히 설명하게 됐다.
이전에 두 번이나 읽다가 그만둔 것은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베껴두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 몇 줄 옮겨 적다가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야겠다며 덮은 것이다. “황제 된 자는 서서 죽어야 한다”는 로마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말이다. 병석에 누워서도 로마의 형편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고 여러 사무를 본 황제에게 의사들이 건강에 나쁘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한 시골 여인이 송아지 한 마리를 낳았을 때부터 두 팔에 안고 쓰다듬어 주는 버릇이 생겨 이 일을 계속했더니, 그것이 습관이 되어 큰 황소가 된 뒤에도 거뜬히 안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그때 베껴둔 것이다. 세네카 키케로 호라티우스 베르길리우스 루크레티우스 유베르날리우스 등등, 직접 읽지 못한 옛 사람들의 시와 산문도 이 책에서 읽고 꽤 많이 갈무리해놓았다.
다시 펼친 <수상록>에서 츠바이크 유언의 토대가 된 문구는 찾지 못했다. 대신 이 책에 죽음에 대한 언급이 넘친다는 걸 알았다. 몽테뉴 자신이 평생 신장 결석을 앓아서인지 “신장 결석으로 고통 받는 사람은 죽을 권리가 있다”는 자살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수상록>에서 ‘죽음’ 다음으로 자주 언급된 것은 ‘늙음’인 것 같았다. “노년이 되면 얼굴보다 정신에 주름이 더 많이 생긴다.”
어쨌든, 죽음에 대한 몽테뉴의 언급은 전부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를 강조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두 딸과 모친을 자기 칼로 베어 죽이고 적진에 뛰어들어 산산조각이 난 고조 섬의 시칠리아 사람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고조 섬은 지중해 몰타 섬 옆에 붙어 있고, 몰타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섬인 시칠리아에서 멀지 않다.)
몽테뉴는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수집해 <수상록>에 실었다. “적국에 노예로 팔려간 라케데모니아라는 나라의 소년이 궂은일을 시키려는 주인에게 ‘그대가 누구를 샀는가를 보라. 종노릇하는 일은 나의 수치다. 나는 내 손에 자유를 가졌다’라고 말하고 집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라는 이야기도 있다.
“자유로우려면 죽음을 경멸하면 된다”, “탄생에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지만, 죽음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큰 선물을 줬다”라고도 쓴 몽테뉴는 죽음을 경멸해서 자유로워진 여성들 이야기도 소개한다. 그중 하나가 로마 클라우디아누스 황제에게 반항하다 붙잡힌 파에투스의 부인 아리아의 이야기다. 클라우디아누스에게 자결을 명받은 파에투스가 머뭇거리자 아리아는 “당신은 자결하기에 충분히 강하다”고 격려한 후 남편의 허리에서 단도를 뽑아 ‘모범’을 보인다. 몽테뉴 기록을 그대로 옮겨본다.
<그녀는 남편이 가지고 있던 단도를 뽑아들고는 격려의 마지막 말로, “이렇게 해요, 파에투스”라고 말했다. 그리고 동시에 자기 배를 찔러 치명상을 내고는 다시 칼을 뽑아들고 “봐요, 파에투스, 아프지도 않아요”라는 고귀하고 후덕한 영원불멸한 말과 더불어 자기 생명을 거두며 칼을 남편에게 내주었다. 그녀는 이렇게도 아름답게 “봐요, 파에투스, 조금도 아프지 않아요”라는 세 마디 말밖에는 할 여유가 없었다.>
구차하게, 욕되게 살기를 꾀함을 이르는 말인 ‘투생(偸生)’을 삶의 원칙으로 삼은 사람이 많은 듯하다. “죽음을 경멸해야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몽테뉴의 말을 귀에 담아놓아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