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한·중 갈등, 일본의 경제도발에 따른 한·일갈등 악화, 여기에 더해 한·미 관계도 삐걱 거린다는 비판이 커진 가운데 우리나라 외교가의 중국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이 5일 우리나라 현 외교상황에 대해 이렇게 조언했다.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중국문제 전문 잡지 ‘한중저널’ 출판기념회의 '한·중 관계의 어제와 오늘'이란 제목의 특별 강연을 통해서다.
6년 6개월 재임기간으로 역대 최장수(2001년 10월~2008년 3월) 주중대사로 불리는 김 전 장관은 1992년 한·중수교, 1997년 황장엽 망명, 2003년 북핵 문제를 위한 6자회담 등 한·중 외교사의 주요 역사적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2009년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약 10년 만에 이날 공개석상에서 강연한 김 전 장관은 한·중 관계 발전사를 비롯한 오늘날 우리나라 외교 정세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지도자 교체, 국내외 정세에 따라 좋고 나빠지는 게 한·중 관계인만큼 우리가 초조해 할 필요도 없고, 우리 실력대로 무리하지 말고 당당하게 제 할일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 강화, 한·일관계 개선 등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김 전 장관은 과거 한·중 관계 발전 역사도 회고했다. 과거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중 관계는 급물살을 타듯 빠르게 발전했으며, 특히 무역·투자·인적교류 방면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2년 수교 당시 63억 달러였던 양국간 교역액이 2007년엔 1500억 달러를 돌파했다며 수교 15년 만에 이렇게 양국관계가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김 전 장관은 우선 한·중 수교 이후 중국은 한국의 경제 발전이 자국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특히 한국의 경제발전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1978년 중국 개혁·개방 이후 경제발전·현대화를 추진하던 중국으로선 평화롭고 안정된 주변환경을 매우 필요로 했다며,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김대중·노무현 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하고,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한국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했었다고도 김 전 장관은 말했다.
또 당시 갈등을 겪던 미국에 중국의 입장을 설명해 줄 나라가 필요했는데, 적임자가 바로 한국이었다고도 했다. 미국과 동맹국임과 동시에 중국과 지리적 역사적으로 가까운 나라인 한국의 역할을 중국이 중요시 여겼다는 말이다.
이밖에 중국의 대일 정책에 있어서도 한국은 중요한 나라였다고 김 전 장관은 말했다. 당시 고도의 경제성장을 추구하던 중국은 일본과의 경제통상 협력 확대를 원했지만, 과거사에 따른 반일 감정이 심해서 사실 대일정책에 있어서 운신의 폭이 좁았다는 것. 따라서 중국으로선 한국을 낀 한·중·일 3자 관계를 통해 중·일 양자관계의 한계에서 벗어나고, 중·일 관계 악화하더라도 3자 관계가 최소한 안전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한·중 양국 지도자의 상호 방문을 통해 신뢰와 존중이 두터웠다며 이것이 양국관계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도 말했다.
특히 그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20년생 동갑으로 김 전 대통령이 8개월 먼저 태어났는데, 장 전 주석이 항상 정상회담 때마다 김 전 대통령을 '다거(형님)'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고 했다. 양국 지도자의 두터운 신뢰관계가 한·중관계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했고, 당연히 한·중관계가 좋아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이 같은 양국간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당시 북핵 등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도 우리나라는 중국과 긴밀히 협의했고, 1997년 황장엽 망명 사건이나 탈북자 문제 때도 양국이 물밑 협력을 통해 부드럽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김 전 장관은 자신이 주중대사로 재임했던 2002~2008년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각지 공사에 630여차례에 걸쳐 1700여명의 탈북자가 몰려왔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우리나라는 중국과 조용하게 교섭을 통해 탈북자 문제를 해결했고, 탈북자 중 90% 이상이 한국으로 돌려보내졌다고 했다. 그는 이를 '조용한 외교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물론 2004년 양국 관계가 뜻밖의 장애물을 만났는 데, 바로 중국 고구려사 왜곡 문제였다. 당시 한국에선 반중 감정이 치솟았고, 한·중 관계 근본이 흔들릴 위기였다고 김 전 장관은 말했다.
그는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러시아와도 역사·영토 문제로 갈등을 빚던 중국으로선 한국과의 관계마저 갈등에 휩싸이면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 고구려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다고 했다. 그리하여 중국 공산당 권력서열 4위 자칭린(賈慶林) 정치국 상무위원이 양국간 외교갈등 해소차 한국을 방문해 고구려사 해결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이 문제는 수면 아래로 잠겼다고 했다.
그는 오늘날 한·중 관계가 예전만큼 돈독하지 못한 것과 관련, 한국의 지속적 정권교체, 중국 지도체제 변화, 국내외 정세 변화 등으로 한·중 관계 역시 변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의 경제 발전으로 한·중 경제관계가 상호보완성 관계에서 탈피해 경쟁관계로 바뀌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과 신형대국관계를 제창, 대국을 직접 상대하겠다고 나서면서 미·중 관계에 있어서 한국의 역할이 사실상 필요 없어졌다는 것.
김 전 장관은 이밖에 한국이 일본과 역사분쟁을 겪는 반면, 중국은 일본과 관계 개선에 나서는 등 여러가지 국내외 정세 변화 속에서 사실상 한·중관계에 긴장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이미 조성된 상황이었으며, 때마침 발발한 사드 사태가 양국 관계 불안을 초래한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