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렌드라 모디 인도 정부는 소비와 투자 진작을 위해 세제 혜택과 국영은행 통합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 장기적 안목으로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급격한 경제둔화에 '2기 모디노믹스'가 시험대에 올랐다.
◆인도 성장률 곤두박질..증시·루피 추락까지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와 시티그룹이 현 회계연도 인도 성장률 전망치를 6%로 잇따라 하향 조정했다. 종전 전망치에서 각각 0.9%포인트와 1%포인트씩 낮춘 것이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인도 성장률이 6%에 못 미칠 것이라며 가장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경제의 양대 축인 소비와 투자가 일제히 약세를 보이면서 성장률을 갉아먹었다. 이 기간 민간소비는 전년 동기비 3.1% 증가해 2014년 10~12월 이후 최저를 찍었다. 지난해 실업률이 6.1%를 기록, 45년래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리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모디 총리의 제조업 부흥책인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성장률이 0.6%로 정체되고 제조업체 설비투자도 전년비 4% 증가에 머물렀다.
최근 발표되는 경제지표를 보면 2분기(7~9월)도 안심하기 어렵다. 8월 인도의 자동차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9.1%나 급감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10개월째 내리막이다. BBC는 자동차 산업에서 일자리 100만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2일 발표된 인도의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1.4를 기록해 15개월래 가장 낮았다. 수치가 50 이상을 가리키면서 경기 확장세를 이어가긴 했지만 원자재와 반(半)제품에 대한 지출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PMI를 집계한 IHS마킷의 폴리안나 데 리마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제조업체들이 지출을 늘리지 않는 한 의미 있는 경기 회복세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 가파른 경기둔화가 겹악재로 작용하면서 인도 증시와 루피도 약세 흐름이 뚜렷하다. 루피·달러 환율은 3일 72루피를 넘어서면서, 루피 가치가 연중 최저치로 고꾸라졌다. 연초 대비로는 3.5% 떨어졌다. 루피 약세는 외채 상환 부담을 키우고 물가 상승 압력을 높여서 정책당국의 부양책을 꼬이게 만들 수 있다. 금융정보업체 퀵은 미·중 갈등 고조와 달러 강세가 계속되면 작년 10월에 기록한 사상 최저치인 74루피도 가시권에 들어올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인도 증시 간판지수인 BSE센섹스30지수는 3일에만 2% 넘게 추락하며 3만6562포인트로 마감했다. 모디 총리가 5월 총선 승리를 확정한 뒤 기록한 사상 최고치에 비해선 10%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4~6월 상장사 순익이 한 해 전에 비해 5% 넘게 쪼그라들면서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인도 주식 순매수자였던 외국인 투자자도 7월부터는 순매도로 돌아섰다고 인도 경제매체 라이브민트는 전했다. 7~8월에만 인도 주식펀드에서 2200억 루피(약 3조7000억원)가 빠져나간 것으로 집계됐다.
◆팔 걷어붙이는 인도 정부..모디노믹스 시험대
인도 정부는 부랴부랴 투자와 소비 진작을 위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자본시장 투자 활성화를 위해 외국인과 자국 투자자에 대한 주식 양도소득에 대한 증세를 철회하기로 했다. 고소득자 증세도 최소 2022년까지 미루기로 했다. 유동성 확대를 위해 국영은행에 7000억 루피를 투입하고, 자동차 등록세 한시 감면, 정부의 신차 구매를 허용하기로 했다. 중소기업, 스타트업 등에 대한 세제 지원 확대, 기업 활동 관련 규제 완화 대책도 나왔다.
가장 최근엔 국영은행 10곳을 4곳으로 합병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현행 27개 국영은행을 12곳으로 통합하는 게 종국의 목표다. 부실대출 문제를 완화하고 은행 경쟁력을 향상시켜 유동성 경색을 해소하겠다는 구상이다. 인도에서는 부실자산을 떠안은 은행들이 신규 대출을 꺼리는 데다 지난해 인도 최대 인프라 투자회사 IL&FS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 후 인도 신규 대출의 3분의 1을 기여하는 그림자금융의 붕괴가 가속하면서 자금 조달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 돈을 빌릴 수 없는 소비자들이 집이나 자동차 구입을 미루면서 소비와 성장 둔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도중앙은행(RBI)도 경기둔화를 저지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RBI는 지난달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5.75%에서 5.4%로 내렸다. 올해 들어서만 4번째 인하로, 인도의 기준금리는 2010년 이후 가장 낮아졌다. 전문가들은 RBI가 10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추가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골드만삭스는 RBI가 기준금리를 연내 0.5%포인트 더 내릴 수 있다고 본다.
또 RBI는 1조7600억 루피 규모의 배당금을 정부에 수혈하기로 했다. RBI는 해마다 투자와 화폐 발행으로 얻는 수익을 정부에 배당하는데 이번에 RBI가 정부에 제공하는 배당금으로선 역대 최대 규모다.
다만 인도 정부가 장기적 안목을 갖고 근본적 개혁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BBC는 인도 정부가 기업들의 아우성에 세금 혜택이나 대출 인센티브 등의 단기 해결에 급급하기보다, 수십 년 동안 정부의 보호 아래 방만한 경영에 찌든 인도 기업들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떠한 부양책도 실질적인 투자와 소비 진작의 선순환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FT도 2일 '인도 경제는 땜질이 아닌 개혁을 필요로 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모디 정부가 장기 개혁안에 교육에 대한 투자 확충과 기업 지배구조의 총점검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