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영 네 번째 개인전 ‘겹의 언어’

2019-08-0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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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로 위장한, 수상한 신체를 그리다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피할 수 없었던 생명의 유한함에 직면했던 경험을 식물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온 정윤영 작가(32세)의 네 번째 개인전‘겹의 언어’展이 오는 8월 21일(수)부터 8월 27일(화)까지 종로구 팔판동 갤러리 도스 (Gallery DOS)에서 열린다.

정 작가는 순수 회화에 불교미술의 요소를 가미시킨 자신만의 고유한 작업 방식으로 평면 회화 작품 20여 점을 선보인다.

‘겹의 언어’라는 전시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일반적으로 ‘언어’는 ‘생각을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에 쓰는 음성, 문자 따위의 수단. 또는 그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를 의미한다.

그러한 언어가 ‘겹쳐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알 듯 말 듯한 의미가 여러 겹으로 포개어져 위장(僞裝)한 채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몸은 대부분 ‘질병 없는 몸, 고통 없는 몸, 무결한 상태의 몸’이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몸, 불안을 겪는 몸, 질병을 겪는 몸’도 사실은 모두 ‘몸’이다.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건강한 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늘 그것을 염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을까? 또, 완전한 건강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질병은 우리의 염원처럼 제거되고 소거되어야 하는 대상일까?

정 작가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천착하여 작업을 진행하였다. 개인적으로 불완전한 몸에서 비롯된 상실감을 바탕으로 ‘어디까지가 나의 몸일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특히 이번에 선보일 작품에서는‘나만의 정서로 만들어놓은 몸’을 생성과 소멸의 과정으로 바라봤다.

정 작가는 자연에 존재하는 것들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재현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식물은 지속적으로 모티브가 되어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에 등장하는 식물의 이미지는 기존의 탐미적이었던 꽃과는 차별성을 보인다. 특히, 식물로 위장한 것처럼 보이는 신체의 이미지는 숨겨져 있으면서도 드러내고 싶은 것처럼 어딘지 모르게 의심스럽다.

자신의 신체에 새겨진 고통의 기억, 그리고 존재의 연약함을 일상적으로 자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유한함은 정 작가에게 중요한 성찰의 대상이다. 매우 현실적이고 물리적이면서, 동시에 극도로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이기까지 한 모순적인 사고와 감정들이 자아 안에 뒤섞여있다.

정 작가의 작품에는 선명한 색채와 부드러운 생동감을 전해주는 선적인 리듬의 조화가 눈에 띈다.

꽃잎의 수맥을 연상시키는 섬세한 선묘, 율동적으로 흐르는 듯한 굵직한 선적 요소들, 때로는 세밀한 부분들을 대담하게 덮어버리는 붓 터치, 흐르는 물감 등으로 다양한 형태와 색채가 자유롭게 어우러진 화면은 부단한 조형 실험의 흔적이다.

역동적이고 추상적인 화면 위에 제시된 절개된 꽃의 단면, 잎의 줄기, 혹은 장기를 연상시키는 유기적인 형태들은 무한한 자유로움과 어우러진다.

그는 병상의 경험에서 비롯된 덧없는 존재로서 유한한 삶을 영위하는 것에 대한 불안정함, 막연한 느낌, 스치는 생각, 안타까운 기억들을 다소 모호하지만 그것을 매개로 하여 감정을 되살려내어 캔버스에 옮긴다. 미술계 내에서는 작가가 자전적이거나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담는 작업을 하면, 감성적인 ‘일기장 작업’으로 구분짓고 그 가치를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피할 수 없는 병마의 고통에 직면하여 생명의 유한함을 뼈저리게 체험했던 고독한 시간, 생명에 대한 갈망과 애착, 생명의 지속을 위한 노력에 대한 성찰은 사적 영역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기에, 이러한 일련의 사적인 경험에 관한 기억을 중첩이라는 방식으로 구현한 작업으로 함께 나눈다는 점에서 너와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이며 또 다른 형태의 예술이 될 수 있다.

정 작가는 작품에서 모순으로 가득한 현실을 살아가지만 결국 모든 것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것들을 함께 둔다.

결국 이러한 이질성의 공존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혼종을 통한 생명의 연장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염원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 내포된 윤회를 통한 끊임없는 존재의 지속, 죽음 다음에 이어질 다른 차원의 존재에 대한 성찰은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는 가시적인 갈등 요소들이 영속하지 않음을 알고, 없어질 것에 대한 욕망의 허무함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자각하게 한다.

그의 개인적인 기억의 과정을 보여주는 ‘겹의 화면’은 작가의 선별적인 선택을 통해 미학적으로 승화된 깨달음의 기쁨을 공유할 준비를 마쳤다.

◆정윤영 작가
존재와 시간 사이의 관계는 다층적이다.

비록 납작한 평면 그림에 불과할지라도, 얇고 유약한 비단 위에 이전에 남겨진 붓질이 스며들고 다음 것 위에 얹혀져 이어지는 상태는 새로움을 만드는 것이라기 보다 남아있는 상태에 덧붙여지고 또 덧붙여진 채로 지속되고 있는 나의 과거이자 현재 그 자체다.

나의 현재와 현존을 작품으로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감정들이 시시각각 겹쳐진다.

인간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한계에 직면했던 과거의 경험은 현재까지 그 잔영이 남아있다.
- <작가 노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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