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사나이는 먼저 떠나겠습니다

2019-08-0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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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광기와 비참함을 그려낸 ‘슬픈’ 자서전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

 
 
 
 

[츠바이크 부부] 


[정숭호의 '책에서 책으로' (11)]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
전쟁의 광기와 비참함을 그려낸 ‘슬픈’ 자서전

TV를 켰더니 '부다페스트 호텔'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몇 년 전 이 영화를 재미나게 본 기억이 나서 채널을 고정시켰다. 이중 삼중으로 얽힌 줄거리, 천박하지 않은 대사, 약간의 과장과 과감한 생략으로 꾸려진 코미디, 요란하지도 잔인하지도 않은 폭력, 좋은 배우들, 멋진 자연, 슬픔 속의 해피엔딩···.

영화가 끝나자 “이 영화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에서 영감을 받아서 제작했다”는 자막이 엔딩크레딧에 붙어 나왔다. 츠바이크가 영감을 줬다고? 처음 봤을 땐 몰랐던 사실이다. 눈 덮인 알프스, 호화로운 호텔, 사치스러운 부자들, 그것을 덮어버리는 군국주의적 분위기 등등이 츠바이크적인 것 같기는 했다. 그가 두 차례 세계대전의 광기에 분노하고 몸서리치다가 좌절하고, 끝내는 태어나고 사랑했던 오스트리아에서 한참 떨어진, 저 멀리 브라질에서 부인과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게 기억났다. 그의 자서전 <어제의 세계>가 다시 읽고 싶어졌다.

원래 이번 '책에서 책으로'는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 1957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의 ‘명구(名句)’를 살짝 바꾼 “지식인들이 반대자들을 괴롭히려 할 때는 자기비판부터 시작한다”를 중심에 놓고 쓰려 했으나, 전쟁이 빚어낸 비참한 이야기가 가득한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가 카뮈를 밀어냈다. 1954년 11월 카뮈의 일기에는 “실존주의: 그들이 자신을 비판하는 것은 남들을 들볶기 위한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반대했던 카뮈가 친공산주의였던 사르트르 등 실존주의자들로부터 혹독한 공격을 받던 때의 일기다.
츠바이크는 1881년 빈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이다. 시 소설 희곡 오페라대본 등 문학의 거의 모든 영역에 손을 댔으며, 모두 성공했다. 인기가 높아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작가였다. 특히 전기(傳記) 작가로 이름이 높다. 꼼꼼한 조사로 그러모은 방대한 자료를 거르고 걸러 아름답고 현란한 문장에 담아 놓은 글들이다.

<어제의 세계>에도 그가 교류했던 20세기의 위대한 예술가들과 정치인 136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중 몇 명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소개되는데, 몇 줄만 읽어도 이들 위대한 인물의 면면을 짐작게 하는 츠바이크 문장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라이나 마리아 릴케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이들 모든 시인 가운데 릴케만큼 소리 없이, 비밀스럽게,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살았던 사람은 없었다. (중략) 그가 이디로 가든, 어디에 있든, 고요함이 그의 주위에서 자라는 듯했다. 그는 모든 소음, 그리고 자신의 명성-언젠가 그가 아름답게 표현했던 것처럼 ‘하나의 이름 주위에 모여 오는 모든 오해의 총계’- 까지도 피했기 때문에, 헛되게 몰려오는 호기심의 큰 파도는 그의 이름만을 침해했지, 그의 인격을 침해하지는 못했다. (중략) 그는 언제나 세계를 뚫고 지나가는 도상에 있었고, 아무도, 그 자신까지도 그가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를 미리 알 수 없었다.”

“그에게서 두 개의 가르침을 받았다. 첫째는, 위대한 사람들은 언제나 친절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위대한 사람들은 그 실생활에서는 언제나 가장 검소하다는 것이다”라는 찬사는 조각가 로댕에게 바친 것이다. 팔순이 넘은, ‘살아 있는 창조자’ 로댕이 문화적 신분이 아직은 훨씬 낮은 자신에게 베푼 친절과 검소함을 그린 츠바이크의 감동 가득한 묘사를 여기 옮기지 못하는 게 아쉽다. <어제의 세계>에는 이밖에도 흉내 내고 싶은 아름다운 표현, 서정적인 문장이 넘친다.

하지만 <어제의 세계>는 비참하고 슬픈 기록이다. 양차 세계대전과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을 지켜본 츠바이크는 전쟁이 어떻게 개인의 자유와 삶을 파멸시키는가를 자기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대로 기록해놓았다. 국가주의와 인종주의와 민족주의와 전체주의가, 선동과 왜곡과 증오와 시기가 어떻게 문명을 후퇴시키고 도덕을 파괴하는가를 정교하고 서글프게 기록했다. 빈곤과 굶주림 앞에서 사람의 자존심, 과거의 영광이라는 게 얼마나 헛되고 값싸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인가도 낱낱이 보여준다.

전쟁의 원인으로 당시 유럽 국가들의 정치 외교 군사적 갈등과 대치 상황을 언급하고는 있으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감정은 언제나 한 인간이나 국가에게 그 힘을 사용하든가 남용하고 싶은 기분을 일으킨다”라는 말에 그 모든 것을 압축했다. 하지만 바로 “전쟁터에서의 무서운 유혈을 겪고 난 뒤 (전쟁을 해야 한다던) 들뜬 열기가 식어가기 시작했다”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감격의 처음 몇 개월 동안 보다 더 냉담하고 엄격한 눈으로 전쟁을 직시하고 있었다. 연대 의식은 풀어지기 시작했다. (중략) 국민 전체를 깊은 골이 갈라놓고 있었다. 나라가 두 개의 각기 다른 세계로 분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전방에는 싸움의 고난 속에 가장 큰 공포에 사로잡힌 병사들이 있었고, 후방에는 (중략), 심지어는 남의 고생 덕분에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었다.”

츠바이크는 <어제의 세계>를 브라질에서 썼다. 영국에서 살아볼 생각도 했으나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병탄되면서 무국적자가 된 그는 보이지 않는 차별, 세계적 지식인이자 작가라는 사실로도 막아지지 않는 차별로 인해 무기력에 빠졌다가 “사람들은 한결 더 평화롭게 어울려 살고 있었고, 서로 다른 종족들 사이의 접촉도 유럽에서보다 더 예의 있게 이뤄지며 적의에 차 있지 않은 브라질”로 옮겼다.

브라질 시민권을 얻은 지 2년도 못된 1942년 2월 22일 그는 부인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어제의 세계> 원고를 출판사로 보낸 바로 다음날 목숨을 끊었다. 둘이 나란히 누워 있던 침대에서는 짧은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60세가 지나서 다시 한번 완전히 새롭게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은 특별한 힘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나의 힘은 고향 없이 떠돌아다닌 오랜 세월 동안 지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제때에, 그리고 확고한 자세로 이 생명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너무나 성급한 사나이는 먼저 떠나가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어제의 세계>만큼 ‘슬픈’ 자서전은 없다고 생각한다. “같이 세상을 떠나자”고 부인을 설득하는 츠바이크의 표정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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